<한밤중 거실 한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
적응이란 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기는 무자비한 독재자거든요. 난 태어났고, 이제 넌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적응? 웃기고 있네. 어, 혼자 핸드폰 봐? 나 울 거야. 어, 날 내려놨어? 나 운다. 어, 잉, 했는데 바로 안 와? 사이렌 켠다. 어, 눈떴는데 옆에 없어? 어, 배고픈데? 어, 나 기저귀 불쾌한데? 어, 못 보던 건데? 어 들어본 적 없는 건데? 어, 뭔지 몰라도 하여튼 별론데? 난 무조건 울 거야. 네가 알아서 달래하루가 이런 식으로 지나가면, 똑같은 하루가 또 시작됩니다.
그런 식으로 아기는 보호자가 쌓아온 삶을 무시할 수 있는 존재예요. 기자님은 10년 넘게 언론에 종사했다고 하셨죠? 하지만아기 입장에선 그게 뭐? 내 똥이나 치워줘, 이런 식이죠 이 시간동안 보호자는 아기에게 완전히, 특히 물리적으로 완전히 묶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도 강제로요.
그래서 고립감을 더 강렬히 느끼시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생각은 묶이지 않거든요. 이 시간에 남들은 뭐 할까, 난 여기 왜 이러고 있을까, 왜 이렇게 힘들까 왜 안 자지, 왜 안 먹지, 왜 울음을 그치지 않지, 아기는 이렇게 사랑스럽고 예쁜데 난 왜 이렇게 우울하고, 슬프고, 괴로울까...- P31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거기에 더해 엄마가 뭐 하느라 정신 빼놀고 그런 데다 자식을 내돌리느냐는 비난이 들리는 것 같다고 실토하면 예진이가 화낼 것이 분명해 나는 나오려던 말을 얌전히 삼켰다. 이상하게도 이안이를 낳은 후, 나는 그런 비난을 종종 혼자 듣게 되었다.- P64
<비트켄슈타인의 이름으로>
김명수, 광기의 9급 서기보
"구공일 씨를 장옥련 님의 친족으로 기재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명수의 입에서 기적의 논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P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