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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화로 여는 국어 수업, 동화로 크는 아이들
  • 최은경
  • 14,400원 (10%800)
  • 2014-01-06
  • : 410

읽은 책: <동화로 여는 국어수업, 동화로 크는 아이들>, 최은경, 상상의힘, 2014

동화가 있는 자리

2014.2.26. 우경숙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으면 필독도서 목록이니 추천도서목록이 반짝 주목을 받는다. 학부모나 담임교사가 읽.히.고. 싶어하는 욕망을 내려놓고- 다만 아이와 함께 좋은 책을 독자로 즐긴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한 사람이 읽고 공감하고 감동하고 깨우치는 데엔 ‘닥치고’가 통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잔소리나 성마른 다그침보다는 한 권의 동화책을 함께 읽는 동안 마음이 움직이는 변화가 일어난다. 아이가 처한 상황, 관계 속에서 욕망과 좌절, 바라고 상상하는 바, 관심이 열리는 지점 등이 맞닿았을 때 한 권의 책은 마법을 부린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말과 글을 배운다. 나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도구로 말과 글을 어떻게 부려 쓸 지 배운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공감하고 이해하는 관계를 배운다. 교실 안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서로 공감하고 갈등을 조정해나갈지 배운다. 이 시절에 꼭 아이들 곁에 있어야하는 것은 동화책, 그리고 함께 동화를 읽어주는 어른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은경의 교육실천이 담긴 책을 읽었다. 여러 번 다시 읽고 갈무리하면서 내가 한 수업, 내가 맺은 관계들을 성찰해본다. 연구가로서 동화를 탐구하고,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동화가 만나는 지점을 실천하고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최은경은 이미 하나의 고유명사로 다가온다. 교육은 명백하게 실천학문이어서 현장에서 동화를 통해 아이들을 만나고 줄탁동시를 꾀한다면 가장 좋은 길일 것이다. 그러나 대개 먼저 아는 이의 조급증은 기다리기 보다는 밖에서 대신 깨어주고 싶어 아이들의 배움의 템포를 앞지른다. 많은 이들의 수업사례를 들어보자면 그 교실만의 ‘공기’보다는 교사가 의도가 더 지배적인 경우가 많아 아쉽다.

 

최은경의 사례에서는 유효한 발문은 있지만 교사 개인의 주도에 좌지우지되는 수업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말 탁월하다. 가장 현장의 공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유연하게 하나의 이야기를 툭 열어보임으로서 아이들이 봇물처럼 논하고 찾고 깨우치길 가만히 기다려준다. 그러는 동안 아이들은 말과 글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드러내고 이해하며- 국어교육에서 말하는 통합적 언어사용능력이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

더불어 초등교실의 상황은 첨예한 문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 문제상황을 머리 맞대고 같이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화로 여는 수업을 통해 서로 다름에 대해 인정하기, 감사하는 마음 갖기, 갈등을 다루는 방법 깨우치기, 생각을 말과 글로 드러내기, 이해하고 통찰하는 힘 기르기 등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간의 공감과 이해의 폭을 훌쩍 넓혀놓는다.

 

구성상 저학년- 중학년- 고학년으로 구별 지은 사례들을 살펴보자. 낮은 학년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고 받아안아 즐기며 몸으로 드러내는 모습은 생동감 넘친다. 동화 읽기가 즐거운 놀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험한 아이들은 그 힘으로 꾸준히 책을 찾게 된다. 자고로 책읽기의 기본은 즐거움이다. 함께 즐기고 나눌 친구들이 없다면 <납작이가 된 스탠리>(제프 브라운, 시공사) 이야기 읽기가 이렇게 신날 수 있을까? (57쪽) 자고로 장단이란 메기고 받는 이가 있어야 흥이 사는 법이니.

중학년 아이들은 마음의 결을 살려 인물을 읽고 체험하곤 한다. 이때 책읽기의 즐거움, 배움의 즐거움을 깨치게 해주면 왕성한 의욕으로 책읽기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경계할 것은 강제적 획일적인 독후활동이다. 읽은 후 생각 나누기를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게끔 열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 3학년 아이들이 ‘작가별 책읽기’로 김기정의 동화를 읽고 ‘김기정 동화의 등장인물은 모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해내는 장면(167쪽)은 경탄을 자아낸다.

높은 학년 아이들은 주제가 뚜렷한 단편작품을 함께 읽고, 서로의 생각을 펼쳐보이며 차이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을 보인다. 아이들이 격렬한 변화의 시기를 겪는 고학년 시절, 학교는 가정 탓 가정에선 학교 탓을 하는 게 다반사이다. <독후감 숙제>(박기범, 창비)를 아이들과 함께 나눈 날, 최은경이 저녁 나절 학부모에 먼저 전화해 말하지 않은 마음을 알아주고 힘을 북돋는 말을 건네는 장면(192쪽)을 읽는데 어찌나 뭉클한지. 선생이나 부모나 아이들 잘 길러내려고 애쓰는 ‘같은 편(?)’인데 이렇게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다면 참 좋겠다.

 

연구가로서 최은경의 역량이 눈부시게 발휘된 지점은 마지막 4장이다. 높은 학년 아이들 소그룹으로 문학토론 동아리 ‘책 먹는 두더지’활동을 통해 문학토론과 인물을 중심으로 한 동화비평을 한 것이다. 초코, 미씨, 난다, 두지, 곰탱 이렇게 다섯 아이들이 당당하게 서로 다른 결을 펼쳐낸다. 생각을 키우고 펼쳐보이는 배움을 쌓아왔기에 자기 의견, 자기 입장을 담백하게 밝힐 수 있는 아이들로 성장했으리라.

특히나 단편 ‘해룡이’(<사과나무 밭 달님>, 권정생, 창비)를 읽고 미씨가 쓴 글(301쪽)은 문학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에서 힘을 북돋우는 귀한 것인가 다시금 절감하게 한다. 또 아이들이 비평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독자란 새로운 창작물을 자신의 삶의 결에 비추어 저마다의 상을 만들어낸다. ‘할아버지 숙제’(<멀쩡한 이유정>, 유은실, 푸른숲주니어)를 읽고 아이들이 저마다 할아버지 이야기(327쪽)를 하며 자신의 삶과 자연스레 연결 짓는다. 그 모습은 마치 명절 날 둘러앉은 가족들의 대화마냥 느껴져 훈훈하기까지 하다.

 

교사 최은경의 교육실천을 읽으니 동화수업의 가치로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최고의 책이 될 수 있는 책은 이 세상에 없다. 단, 내 앞에 내 이야기를 딱 내 맘같이 잘 들어주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좋은 책이 아닐까. 지금은 올해 아이들과의 만남 일 년 살이를 앞 둔 시간이다. 듣는 즐거움, 읽는 즐거움, 공감하는 즐거움을 위해 한껏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한다. 동화가 있는 자리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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