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치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쉽게 읽힌다. 흔히 ‘헐리우드식 기획’이라고
말하는 하이 컨셉트 소설인데다가 전반적으로 문장이 짧고 사유보다는 재치를 소설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축하한다. 독자를 마지막까지 붙들어 놓았다. 그러나 책을 덮고
떠오르는 것은, 강렬하게 오레오를 피우는 이미지 단 하나 뿐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이고 이 책에서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총’에 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정확히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총은
그저 총체적인 총으로서 ‘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등장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총에 관해서 이 소설이 시도하려고 했던
상징과 은유(설계도대로 총을 만들었지만 불발한다, ‘총’이라는 개념 혹은 이데올로기 그 자체가 게임을 주최했고 인간보다 거대한 층위에서 세상을 움직인다)에 관해서 길게 설명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건 이 평을 읽는 다른
독자의 수준을 무시하는 일이 될 것만 같다. 소설에서 총은 박민규가 일련의 단편 소설들을 통해 자본주의를
소비한 것과 정확히 같은 깊이에서 소비된다. 그저 거대하고 나쁜 것.
어째서 총과 같은 폭력적인 기제가 작동하고 거기에 어떤 인간과 인생의 매듭이 얽혀 있는지는 전혀 탐구되지 못한다. 어쩌면 이야말로 한국이 총기 청정국가라는 반증인지도 모르겠다. 강남
한복판에서 총 쏘는 걸 봤어야 알지.
박민규 작가에 관한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김홍 작가는 박민규와 상당히 닮은 스타일을 구사한다. 재치와 패러디를 주무기로 삼는다는 점이나 사건
중심으로 극을 끌어가며 허구인 게 분명한 뻥을 매력적으로 치는 걸 추구한다. 현재 이런 목소리는 문단에서
귀한 편이다. 우리네 작가들은 전반적으로 진지진지 열매라도 먹은 것처럼 글을 쓰고 자꾸만 윤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요즘 많이 목격된다. 장르색을 강하게 끌어안고 나름대로 하이스트 영화와 비슷한 컨셉을 잡은 것도
좋았다. 그러나 섣불리 응원의 말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건
아무래도 ‘총’을 가지고 시도한 전체적인 은유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오레오가 마약의 기제가 되는 이미지가 총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굉장히 마음에 드는 이미지인데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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