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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
  • 황세원
  • 14,400원 (10%800)
  • 2020-07-31
  • : 199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을 하며 살아간다. 생계를 위해서든 일을 통해 삶의 의지를 느끼기 위해서든.

누가 '나쁜'일을 하고 싶어할까? '나쁜'일인지 '좋은'일인지 주관적일수도 있지만 한국이 한창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대(70~80년대)엔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흔히 생각하는 '나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박봉에 노동환경이 나빴더라도 경제성장을 피부로 느꼈기도 했고 성장에 대한 믿음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 본인들이 느꼈을 노동을 하며 열악한 노동환경과 사회적인 평가가 자식에게 만큼은 이런 일 안시켜야지 하는 의지도 강했으리라.  

반대로 그 당시 '좋은' 일이라고 하는 것은 판-검사등의 큰 일(?)하는 사람들이나 의사라던가 대기업의 사무직 노동자등이 하는 일일 것이다. 그 '좋은' 일이란게 그 일을 함으로써 보람되는 일이기때문에 '좋은'일이 된지는 의문이다. 주위의 평판일 수도 있고 급료의 차이일 수도 있고 덜 육체적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비정규직 일자리가 본격적으로 양산된 IMF시대를 거쳐 사람들 마음 속에 조금씩 '좋은 일'이라는 개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일자리 즉, 정규직이라도 하는 것을 원했다. 그런 생각도 이제 20년이 넘게 흘렀다. 지금의 '좋은 일'은 뭘까? 대기업, 정규직의 일자리일까?


이런 물음으로 부터 출발한 이 책은 변화하고 있는 '좋은 일'에 대한 기준을 살펴보는 책이다. 

제목인 말랑말랑한 노동? 말랑말랑과 노동은 뭔가 쉽게 매치가 되지 않는다. 무슨 뜻일까? 표지에도 곰돌이 젤리가 보이고..

저자인 황세원대표는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을 오피스 노동이라고 칭하며 딱딱한(경직적인) 노동이라고 하였고, 흔히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노동(예를 들면 돌봄노동, 택배노동, 학습지교사등)을 동네노동이라고 칭하며 이 경우엔 흐물흐물한(흘러내리는) 노동이라고 구분지었다. 


 저자가 보기엔 우리가 흔히 좋은 일자리라고 알려진 오피스노동도 너무 경직되어서는 문제가 생길것이고 동네노동의 흘러내리는 수준이 커진다면 그것 또한 문제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노동이 경직되는 것도 아닌 흘러내리는 것도 아닌 말랑말랑한 정도로 양쪽을 맞출 수는 없을까라는 의문에서 이 책을 시작한다. 당연히 그렇게 되면 좋은 건 누구나 안다. 그렇다면 왜 실제론 안될까? 저자는 한국사회에 여러 걸림돌이 있다고 보았다.


먼저 '공부지상주의'가 한국에서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른나라또한 없는 것은 아닐테지만 한국은 특히 더 심하다는 것인데 한국을 사회진입직전까지 청소년기에 한줄로 서 있는 사회라고 보았다. 그럼 한 줄로 줄 세운(누가 앞에 있고 누가 뒤에 있는) 근거는 뭘까? 당연하게도 성적이다. 특히 대학입시 성적인 경우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이 줄세우기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고..  


이제 우리, 고3 때까지 공부 잘했냐 아니냐는 최대로 치더라도 한 5년 정도만 인정해 주는 게 어떨까? 그다음에는 서로 어느 대학 나왔는지 묻지도 말고, 알려고 하지도 말았으면, 그런 얘기 꺼내는 사람은 ‘완전 구리다’고 여겨졌으면 좋겠다. 현재 하는 일과 지향에 따라서 자기를 들어내고 서로 이해하는 사람들끼리 잘사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p. 206)


단순화시켜 한국을 사람들이 한 줄로 100명이 서 있는 사회라고 가정해보자. 앞의 10~15명정도의 사람들이 들어가게 되는 일터는 흔히 말하는 큰조직의 정규직이고 평균 이상의 복지, 사내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좋은 일자리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앞 몇명만 들어가게 된다. 나머지의 사람들은 좋은 기업의 비정규직으로 들어가거나 중, 소기업혹은 동네노동에 종사할 확률이 높다. 이 동네노동은 사회적 차별도 있고 저임금에 무시와 하대도 있을 수도 있고 4대보험이 안되며 상대적 위험한 노동환경인 일자리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그룹이 들어가는 일자리의 질이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가만히 있었을까? 아니, 정부도 나름 정책을 펼치고 대책을 만들었다. 위의 모델을 통해 설명하자면 좋은 일자리에 10~15명 갈 수 있었던 것을 5명더 추가해 20명정도가 갈 수 있게 만들어 준 식이었다. 물론 5명 정도 더 들어가게 만들어주는 것 또한 의미있는 것 아니냐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맞다. 하지만 단지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조금 더 넗혀준 것으로 정부의 역할을 다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이제는 다른 식의 해법을 사회가 함께 고민해봐야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로 '불필요한 노동력을 줄이는' 식의 구조조정이 기업의 체질을 고치고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정부 및 공공기관조차도 필수 인력을 최대한 적게 잡고, 가능하면 외주화하거나 임시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및 조직들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개입으로 장기근속(지속고용) 일자리들을 늘리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 데다가 공기업, 대기업, 금융기관과 같은 조직들일수록 '공채'문화가 강하기 떄문에 인위적으로 채용 규모를 늘린다고 해도 이와 구분되는 직군이거나 임시 계약직일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0년, 초회복의 시작』, p.72~73)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에 가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 중엔 그럼 공무원 공부해야겠다라는 방향이 생긴다. 공무원시험은 나이제한도 없고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공정'하다고 남아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이런 흐름에서 이제는 복병이 생겼다. 최근에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팬더믹이라던지 기술변화, 산업의 변화로 좋은 일자리로 가는 문(정부가 조금이라도 늘리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은 오히려 더 줄어드는 상황이다. 


세계 곳곳 뿐만아니라 한국도 이미 저성장시대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코로나 팬더믹으로 이러한 흐름은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을 기존의 방식대로 유지하는 것이 괜찮은 걸까? 저자의 말대로 이제는 기존의 딱딱한 노동시장을 다양한 선택지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노동시장으로 변화해야 되지는 않을까? 사회전체로 봤을 때도 효율적측면에서도 좋은 방향일 지도 모른다. 이런 주장을 하면 노동계에선 발끈할 것이다. 아니! 그럼 쉬운 해고를 하는 사회가 되어야하냐고.. 이해는 간다. IMF시절 큰 사회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경영계에서 주장하는 유연한 노동시장을 떠올릴 수도 있고. 당연하게도 이런 변화의 전제조건은 노동의 질이 어느정도 비슷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노동의 최저선을 올려야 할 것이고 어떤 형태로 일하든 큰 차이없는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의 모든 구성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두번째의 걸림돌은 정규직의 개념의 모호성이라고 하였다. 


정부는 대체로 정규직 전환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형태로 전환해 주는 것으로 여기는 반면 일반적인 인식 가운데는 '임금을 포함해서 일자리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을 높인다'는 뜻과 '직장 안의 차별적인 제도와 관행을 적극적으로 시정한다'는 의미가 존재한다.

(p. 89~90)


통계청에서 발표해서 분석하는 것으로는 우리나라의 정규직 비율을 보통 63~65%정도로 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그렇게 느끼질 못한다. 정규직의 개념이 정부에서 보는 것과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괴리가 있다. 이런 괴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올해 떠들썩했던 인천국제공항의 정규직 전환 갈등이었다. 아무리 정부가 선한 의지로 움직였을지라도 이 정도의 사회적 문제가 일어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청년세대들의 공정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물론 문제가 있었다고 보지만 정부쪽에서 보다 더 세심하게 접근을 하지 못한 정책 실책의 탓도 크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는 열악한 일자리에서 힘겨워하는 사람들, 심지어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일자리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진작 노력해서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에 들어갔어야지'하는 식으로 개인 탓을 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사람들은 죽도록 노력해서 정규직이 되는 데, 비정규직들이 아무 노력 없이 그 희소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코로나 0년, 초회복의 시작』, p.74~75)


이 책에서 나오듯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정도로 다시 정규직 비율을 추정해보면 7~10%정도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볼때 정규직 사회로의 이행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 가능할까? 오히려 위에 썼던 것처럼 노동의 최저선을 올리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이젠 IMF이전 호시절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렵다. 오히려 단기 근속사회로 도래하고 있는 시대인데 우리 대부분이 장기근속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꼭 하나의 직업만이, 정규직만이 아니더라도 좋은 일일 수 있다. 


우리에게 일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삶 전체는 아니다. 우리 삶에서 일이 큰 부분을 차지하므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할 뿐이다.

(p.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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