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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오늘 밤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와 카타르의 평가전이 열린다.

며칠 전엔 멕시코와 평가전이 있었고 이 두 경기을 위해 남자축구대표팀은 멀리 오스트리아로 날아갔다. 왜 멕시코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고 제 3국에서 경기를 하나 싶지만 코로나의 사정으로 이렇게 이루어진 듯하다. 그런데 오스트리아가 코로나로 심각한 상황이였다. 그럼에도 이전부터 잡아논 일정이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오스트리아로 간 것이다.

결국 우려한대로 뉴스를 본 사람들은 알지만 한국 남자 대표팀선수 5명이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그럼 왜 이런 세계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외국에 모여 축구경기를 할까? 좀 쉬면 안되나? 

축구뿐만 아니라 스포츠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전체적으로 커다란 산업화가 이루어져 이제는 비지니스차원으로 움직인다. 

하기 싫어도 마냥 미룰 수만 없는 사정도 있다. 그래서 그 인기있다는 유럽의 축구시장도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서유럽의 코로나 유행이 다시 일어나는 와중에도 (예를 들면 영국의 경우 봉쇄령이 내려졌음에도 리그는 지속되고 있다.)리그가 열리고 있고 A매치(국가간 경기)도 무관중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마 스폰서와 중계권을 맺은 방송사와의 계약내용을 이행해야되는 조건들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의 경우엔 올해 초 나이키와 12년 장기 계약을 체결을 맺었는데 전문가들이 하는 말엔 1달만 늦었으면(코로나 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런 대형계약을 체결하지 못했을 거라고 하였다. 

그만큼 코로나19로 인해 스포츠에 끼친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선수들 연봉에도 분명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한국 축구남자대표팀이 있는 곳이 오스트리아라고 하니 마침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주인공이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사람이다.(우연?)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마침 프로이트도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스포츠가 인간 안의 공격적인 욕구가 신체적으로 드러난 것일 수도 있는데 이는 곧 사회적으로 타나토스적 에너지(인간의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면)를 방출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시대에 스포츠의 역할이 꼭 비지니스 산업으로 보지 않더라도 타나토스 에너지를 간접적으로 해소시켜 주는 역할으로서도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프로이트라는 사람은.. 그의 만행(?)에 대해서 책을 통해 보기만 봤지 그의 생애나 그가 남긴 책을 읽은적은 없었다.

프로이트가 말한 남근선망-거세공포로 인해 꾸준히 읽고 있는 여성주의 책 안에선 당연히 프로이트를 좋게보지 않는데 이 입문서를 읽으면서 프로이트 당신이 뭔데?! 라며 읽으려고 했었다. 깔땐 까더라도 알고나 까려고..


프로이트의 이론, 곧 정신분석학은 사랑·증오·유년기·가족 관계·문명·종교·성욕·판타지 등 우리의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여러 상반되는 감정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했다. 오늘날 우리는 혁신적인, 그렇지만 논쟁의 여지가 있는 프로이트 개념들의 그늘 아래 살고 있다. 프로이트의 글은, 그것이 포괄하는 범위나 이후 그것이 끼친 영향의 측면에서 본다면, 한 이론가의 생각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개념과 그 개념의 정수를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P.19)


생각해보니 지금까지도 좋든 싫든 프로이트의 그늘 아래 살고 있는 것인가..


프로이트는 1856년 오스트리아(지금은 체코)의 모라비아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7남매의 장자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터 총명했던 프로이트는 어려운 집안사정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아들의 교육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 있던 두 개의 방중 하나를 그에게 공부방으로 내어줄 정도였다. 이렇게 부모로부터 받은 높은 기대가 훗날 그의 정서에 어느정도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리고 나이가 들었을 때는 1차 세계대전시기의 일어난 반유대주의 사상으로 인해 인간의 사회적 특성을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실제 프로이트는 완벽과 정확성을 추구하는 강박적인 성격으로 자기얘기를 잘 하지않는 사람이었다. 호감을 사는 사람이 아니여서 자신의 이론을 수용하지 못한 사람들(아들러, 융)과 결국 결별하기도 했다. 

그만큼 고집스러운 성격이 지금의 프로이트를 만든 것일 수도 있겠다.


사회 이론으로서의 정신분석학은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것처럼 보인다. 프로이트는 공산주의가 약속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 유토피아에 대해서는 별다른 믿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간 본성과 관련해서 염세적이고 회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경제적 요인들의 변화가 인류의 기본적인 본성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사회규범들을 받아들이기는 하면서도 그것들이 돌에 씌어져 있는 것도, 자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에게 사회규범들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정신 분석학은 개인이나 사회의 변형에 대한 이론이라기보다 현재 상태를 인정 및 옹호하는 이론이다. 인간 본성(이드)이 함축하는 욕망들은 제어될 수 없다.

(p. 210)


입문서이긴 했지만, 이 책과 생애를 다룬 논문을 읽으보며 느낀건 프로이트는 천재는 맞는 것 같다.

프로이트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깊은 통찰을 갖게된 것은 분명하다.

정신분석에 대한 체계화된 이론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으로 당시에 프로이트가 제시한 설명들은 너무 획기적이였고 지금 봐도 납득가능한 타당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프로이트 본인이 19세기 백인 유대계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인간보편적으로 보는 것은 실패하였다. 남성이었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관찰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었고..시대의 한계일 수도 있고. 


또, 마르크스가 제시했던 사회문화적 측면을 간과한 것도 한계라고 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섹슈얼리티, 성욕이라고 대표되는 어떤 인간의 욕구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했고 인간은 결정되는 존재로서 바라보았다. 즉, 과거에 의해 결정되어버린 존재로..

하지만 인간이 정말 그런 존재일까? 인간이 성욕으로 전부 설명될 수있을까? 


프로이트의 용어들을 약간만 바꾸면 '여성들이 어떻게 성차를 상실이나 결핍으로 경험하게 되는가?'라는 문제와 관련한 그의 분석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상실은 어떤 신체 기관의 상실이 아니라 지위(사실상 여성이 결코 점유할 수 없는 지위)의 상실이다.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것은 사실 구체적인 신체 부위가 아니라 권위나 확신, 존경이며, 사회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이런 종류의 권력들, 그러니까 자아를 형성하는 사회적 권력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프로이트가 젠더 간의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원인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옳았다고 잘못된 주장을 했지만, 젠더 간의 불평등 구조에 대한 견해에서는 옳았다고 할 수 있게 된다. 

(p. 240~241)


한계도 분명한 학자임에도 현재에도 왜 여러분야의 책에서 프로이트가 소환이되고 그럴까? 인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든 '통찰'을 발견하게 된 최초의 사람으로 가지는 위상은 대단한 것이다. 이 프로이트의 이론들을 통해 그가 가진 한계들을 보완해나가면서 사람을 더 잘 이해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후세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몫이다.  


욕할려고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정도 프로이트에 대해 알고 나니 그를 아주.. 약간 이해한 것 같지만..여기서 멈추자. 너무 이해하면 안된다고.. ㅋㅋㅋ

그것보다 잠시만.... 프로이트 책을 다 읽고 나니.. 주위에 아무도 없는게 느껴진다..;;; 다들 푸코에 가 있겠지..ㅠㅠ(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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