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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예전엔 부산에 신발공장들이 많았다. 나이키, 아디다스 굴지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운동화들의 하청공장들이 부산에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메이드 인 코리아로 찍혀 나온 운동화들. 그 당시는 정작 한국에서 이 운동화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겠지.. 한국의 사람 가격이 쌀 때다. 당시 대부분 신발 공장의 노동자들은 여자들이었다. 어쨋든 몇 수십년이 흘러 부산엔 신발 공장은 이전하던가 거의 없어졌다. 그 이유는 그만큼 한국이 경제 대국이 되었다는 뜻인 것 같다. 

소위 말하는 선진국엔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살아남기 힘들다. 왜냐면 임금을 맞춰줄 수 없기 때문이다. 신발, 옷등에서 부터 메이드 인 코리아는 보기 힘들다. 지금 내가 신고 있는 나이키 신발을 보니 메이드인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등이라고 적혀있구나. 동남아권 나라에서 많이 생산된다. 내가 쓰고 있는 아이폰은 중국에서 만든 것일테지? 내가 어릴적만하더라도 걸어다니면서 컴퓨터못지않은 것들을 들고 다닐거라고 상상이라도 했던가. 또 어릴적엔 옷을 이모집에서 보내주신 소포안에 있었던 옷들을 많이 물려 받아 입었었다. 지금은 SPA브랜드의 등장도 있거니와 옷도 타협만 잘하면 얼마든지 싸게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질이 엄청 좋은 편은 아니기에 색이 바래거나 닳아지면 (예전같으면 기워서 사용하면 되지만) 지금은 버리고 새로 사는게 더 간편하고 가격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지금은 소비의 시대다. 소비할 것이 넘쳐난다. 넘쳐나다 못해 주체를 못해 버려야 새로운 것 사야하는 지경이다. 버리기도 많이 버리는 시대다. 

그렇다면 이렇게 소비에 미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우선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력이 폭증하게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이 근원에는 여성에 대한 '착취'에서부터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베이컨의 과학적 방법론은 여전히 근대 과학의 기초이며, 물질적 힘과 결합된 지식이다. 화약, 향해술, 나침반 등 기술발명의 많은 것이 사실 전쟁, 정복과 연관되어 있다. 이 '전쟁의 기술'은 인쇄술처럼 지식과 결합되어 있다. 따라서 폭력은 신남성이 여성과 자연에 대한 지배를 수립하는 데 사용된 핵심 단어이자 핵심 방법이다. 이런 폭력수단은, '옛날처럼 자연의 작용을 부드럽게 인도하는 것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이 수단들을 자연을 정복하고 종속시킬 힘, 그 뿌리까지 흔들어 놓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p. 201)


경험주의 철학자 베이컨이 주장한 과학적 방법론이란 결국 자연이란 인간이 정복해야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지식의 중요성을 설파했던 베이컨으로 시작된 경험주의 철학은 근대 과학의 기초가 되었고 자연에 대한 인식이 함께 사는 곳이라기 보다 적극적으로 이용해(정복, 파괴등) 인간을 위해 쓰여져야했다. 이는 곧 남성-여성간의 지위에도 적용이 되었다. 인간(Man)은 자연(Nature)을 정복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성에 대한 인식 또한 아이를 출산하는 신성한 존재, 인간(Man)에서 볼 수 없는 생리 현상으로 불가사의한 존재로 여겨지며 이전부터 이미 여성이 자연과 동의어였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또한 동등한 주체가 아닌 정복해야하는 대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마녀사냥은 아프리카에서도 위세를 떨쳤고,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 특히 나이지리아와 남아프리카처럼 노예무역에 한때 연루되었던 나라에서 분열의 핵심수단으로 지속되고 있다. 여기서도 마녀사냥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자원을 둘러싼 강력한 투쟁으로 인한 여성의 지위 하락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캘리번의 마녀』, p. 341)


이런 흐름은 예전에 읽었던 『캘리번의 마녀』에서도 보았듯, 유럽에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에서도 마녀사냥의 형태로 자연에 대한 정복욕구가 끔찍하게 나타났다.


마녀사냥으로 유럽 여성을, 식민지화 과정을 통해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여성을 폭력적으로 종속시킨 '이야기의 다른 측면'은 유럽과, 그리고 나중에는 미국에서 처음 부를 축적한 계급의 여성이 사치품과 부의 소비자와 과시자로 만들어지고, 나중에는 가중주부의 단계로 가는 이야기다.

(p. 227)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서는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화의 과정에서 벌어진 그 대륙들의 여성을 폭력적으로 종속시킨 것또한 예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흐름이 결과적으로 북미나 유럽의 여성의 일자리 상실로 이어지고 그들또한 가정주부화시켜 저임금 혹은 무임금으로 소비만 하는 존재로 종속시켜버렸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가정주부라고하는 이런 신비화는 새로운 국제노동분업의 우연한 부산물이 아니다. 이는 이 노동분업을 순조롭게 기능하게 만드는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이는 세계시장을 위해 착취 혹은 극도의 착취를 당하고 있는 노동력의 상당 부분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가정주부화는 저임금을 정당화한다, 여성이 조직화되지 못하도록 한다. 여성을 개별화한다. 이는 관심을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이미지로, 말하자면 남성의 부양을 받는 '진짜' 가정주부로 쏠리게 만든다. 가정주부화는 대다수 여성에게 실현될 수 ㅇ벗는 일일 뿐아니라,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 파멸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p.261~262)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사실 엄청난 혼란을 느낀다. 결국 나는 그동안 '남성'으로 자라왔기 때문에 전혀 여성에 대한 '착취'를 깊게 고민해본 적이 없고 별 탈없이 지내왔기 때문이다. 먼저 남성으로서 폭력적인 '여성'착취의 과실을 따먹기도 한 존재였고 두번째, 한국인으로선 개발도상국등지의 여성들의 '착취'로 인해 생산되는 값싼 상품들을 소비해온 나로선 이 내용들이 두렵기도 하다. 어디서부터 바꿔야할까. 내가 남성으로서 생각하는 고민과 실제 어떠한 형태로든 '착취'당해온 여성으로서 생각하는 고민의 질은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 벌어지는 코로나 사태는 다른 측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준다.

동아시아권에만 머무를 것만 같았던 전염병 유행이 현재 유럽-미국에서 폭발적으로 번지고 있다. 전지구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질서의 특징으로 비롯된 위기이기도 하다. 지구화된 산업속에 살고 있는 오늘날은 전세계적으로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글로벌한 전 세계 산업네트워크는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으며 또한 금융은 어떤가 현대 자본주의는 금융에 대한 맹신과 폭발적인 팽창과 함께 금융또한 전세계가 전 지구적인 금융사슬로 묶여있다. 코로나 국면이 진정되더라도 기존의 리먼브라더스사태등의 이전의 경제위기와는 또다른 형태로 찾아올 것같다. 새로운 형태의 위기에 사실 정확한 답을 알고 있는 정치가나, 경제학자들은 없는 것 같다. 어쨋든 기존의 자본주의하의 단기적 처방 방법대로 전세계가 돈을 풀기 시작했다. 이 해법이 어느정도 통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이 위기의 근원을 좇아가면 생태 위기로 비롯되어 나타난 것일 수 있다. 위에서 말했던 자연을 인간이 정복해야한다는 대상으로 본 자만으로부터 시작된 것일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누리는 지금은 분명 빛만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착취'가 있었다. 과거에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 기존과 다른 뭔가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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