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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w2700님의 서재
  •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6
  • 박솔뫼 외
  • 15,300원 (10%↓850)
  • 2026-08-18
  • : 6,725
#도서협찬 #박솔뫼 #이효석문학상수상작품집 #사과 #북다방1기


함께 있다는 말의 무게

박솔뫼의 <사과>를 읽으며 오래 남은 것은 사건보다 창밖을 바라보는 애리의 자리였다. 차는 어딘가로 향하지만 애리는 그 풍경 속을 직접 걷는 자신을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선호와 가까워지는 동안에도 둘은 같은 것을 같은 모습으로 보지 않는다. 선호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애리의 감각을, 애리가 끝내 설명하거나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잠시 나란히 있을 수 있고, 그 시간이 끝난 뒤에도 함께 있었던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어 실린 <비둘기 옮기기>는 이 책을 읽는 방법까지 돌아보게 한다. 화자는 비둘기를 고양이로 바꾸지 못한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비둘기를 아주 조금 다르게 본다.

여섯 편을 읽고 난 뒤 내게도 그런 변화가 남았다. 익숙한 말로 분류하던 사람과의 관계가 전처럼 보이지 않았다.

성혜령의 <하악>에서 자인은 장애가 있는 동생 태인을 돌본다. 가족이라면 기꺼이 책임져야 한다는 믿음은 너무도 당연시되기에 거절하기도 어렵다. 자인이 느끼는 피로와 분리되고 싶은 마음을 읽으며, 누군가를 돌봐야 한다는 말 앞에서 정작 돌보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자주 지워지는지 생각해본다. 자인을 쉽게 비난할 수 없는 것은 그가 타인을 구분하고 배제하는 방식을 알아보면서도 자신 역시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임솔아의 <나의 빈 묘에>에서는 묘가 누구를 위한 자리인지 묻게 된다. 지윤과 윤미는 반려견 조아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갈 수 있는 따뜻한 곳에 묻어주고 싶어 한다. 묘는 죽은 뒤의 자리를 미리 정하는 공간만은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누구와 삶을 나누고, 누가 나를 기억하며 찾아올 것인지에 관한 자리이기도 하다. 조아에게도 그런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두 사람의 마음이 전해졌다.

장희원의 <영주>는 훨씬 불편한 방식으로 '곁에 있음'을 요구한다. 영주는 과거 자신의 고통을 지켜봤던 우진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목격해 달라고 한다. 우진이 끝내 말을 잃고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끼는 결말은 단순한 복수의 성공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을 보고도 지나쳤던 사람이 뒤늦게 그 고통을 자신의 문장으로 다룰 수 있는가. 이 소설은 목격과 책임 사이에 놓인 긴 시간을 독자가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정기현의 <그거 점 된다>는 몸에 생긴 점과 허물을 통해 남들이 정한 모습대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을 기묘하고도 경쾌하게 뒤집는다. 희정이 점을 없애려 애쓸 때와 그것을 다르게 받아들이게 될 때, 같은 몸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황시운의 <일일업무 보고서>에서는 그 몸의 문제가 다시 일상의 구체적인 시간으로 돌아온다. 세진에게 먹고 일하고 몸을 돌보는 일은 매일의 판단과 노동이다. 도움을 받는 일에도 나중에 치를 값이 있을 수 있다는 세진의 생각은 그의 독립심을 추상적인 미덕이 아니라 살아온 경험으로 이해하게 한다. 아무 마음도 갖지 않겠다는 다짐과 달리, 내일을 생각하게 되는 세진의 마음 또한 오래 남는다.

이 작품집의 인물들은 저마다 누군가와 가까워지고, 멀어지고, 돌보고, 기억하고, 목격한다.
그러나 어느 관계도 '우리'라는 말 하나로 간단히 묶이지 않는다. 함께 있는 동안에도 서로 다른 풍경을 보고, 사랑과 돌봄 안에서도 각자의 삶은 저마다의 무게를 가진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비둘기가 아주 조금 고양이처럼 보였다는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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