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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w2700님의 서재
  • 생가
  • 신재민
  • 16,200원 (10%900)
  • 2026-07-07
  • : 2,460
누군가는 불타 버린 집을 복원하려 하고, 누군가는 이를 목숨을 걸고 막으려 합니다. 그런데 읽어 갈수록 알게 됩니다. 여기서 되살리려는 대상은 한 채의 한옥만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생가>는 전직 대통령의 생가 복원이라는 현실적 소재에 수목 신앙, 한옥 건축, 대물림되는 가족의 비밀, 대한민국 현대사의 어두운 기억을 결합한 한국형 오컬트 호러입니다.
제13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대상 수상작으로, 영화감독 출신인 작가가 시나리오로 구상했던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인지 문장을 읽다가 영상을 그릴 때가 자주 있었어요.

2017년, 독재로 권력을 유지했던 전 대통령 이운암의 생가가 화재로 불탑니다. 이 집을 지었던 도편수 지범근은 아들 재헌에게 “생가…… 절대 복원하지 마라”는 말을 남기고 의문의 죽음을 맞습니다. 아버지와 오래 절연하고 독일에서 살던 재헌은 이운암의 손자 건승으로부터 복원을 제안받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하려 하였으나 경제적 이유 때문에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왕 시작하려 마음먹은 재헌은 이 일은 평생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넘어설 기회이자, 유언에 맞서는 복수로 여깁니다.

그런데 조사차 생가에 들어간 그는 곧 깨닫습니다. “이건 집이 아니거든요.” 건물의 구조와 동선은 무언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를 가두거나 불러들이기 위해 설계된 거대한 장치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소설의 목차는 한옥을 짓는 순서(파가, 개기, 열초, 선목, 벌목, 입주, 상량, 생가)를 따르는데, 여기서 집이 완성되어 간다는 것은 안전한 공간이 만들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공사가 진전될수록 땅속에 묻혀 있던 기억과 원한도 함께 형태를 갖춥니다. ‘복원’은 잠들어 있던 악을 다시 깨우는 일이 됩니다.

생가에 쓸 소나무를 베는 장면은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 줍니다. 재헌은 수백 년 된 소나무를 베어 운반하지만, 이후 가지에서 붉은 명주 조각과 밧줄에 쓸린 흔적을 발견합니다. “베지 말아야 할 걸 베고 말았다.”
붉은 명주와 고목, 도편수와 대들보처럼 한국인에게 익숙한 것들에서 시작되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생가>는 한편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재헌은 아버지의 금기를 깨고 생가를 완공하려 하고, 건승은 할아버지의 명성을 다시 세우려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윗세대가 남긴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재헌은 아버지를 증오한다고 생각하지만, 생가 깊숙이 내려갈수록 점차 아버지를 닮아 갑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선택으로 심연 속에 몸을 던져야 합니다.
소설은 사람이 자신이 태어난 집과 가족, 역사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지, 아버지의 죄와 권력이 자식에게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를 집을 매개로 묻습니다.

이운암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국가폭력을 남긴 인물이 시간이 지나며 영웅으로 미화되고 생가가 성역처럼 보존되는 모습은 우리 현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생가를 다시 짓는다는 것은 그가 상징하는 권력과 숭배의 질서까지 다시 세우는 일입니다. 귀신보다 두려운 것은 잘못된 역사를 잊고 죽은 권력을 계속 불러내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또 다른 주인공 시록은 무병을 피해 트럭을 몰며 살아가는 여성으로, 생가에 쓸 소나무를 운반하며 재헌과 얽힙니다. 위계와 규칙에 굴복하지 않는 그녀의 성격은 권력과 가부장적 질서에 사로잡힌 인물들과 대비를 이루며, 이야기에 생동감을 더합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한옥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조화와 안식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죄악을 감추고 죽은 권력이 되살아나기를 기다리는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서사도 영화적입니다. 흩어진 단서들이 중반부터 빠르게 결합하고, 후반에는 반전이 이어지며 의미가 계속 달라집니다. <파묘>나 <곡성>처럼 전통신앙과 역사적 기억을 결합한 오컬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만족할 만합니다.


집은 사람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기억을 감추기도 합니다. 죄악으로 세워진 집을 복원하는 일은 역사를 보존하는 일일까요, 끝났어야 할 과거를 다시 불러들이는 일일까요.

<생가>는 그 질문에서 출발해 집과 가족, 권력과 역사가 뒤엉킨 심연으로 독자를 끌고 갑니다.
그래서일까요? 책을 읽고 악몽을 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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