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열지 말 것 <열람 엄금>
csw2700 2026/06/23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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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람 엄금
- 치넨 미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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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 - 2026-06-12
: 8,220
#북다방1기 #열람엄금 #치넨미키토 #북다 #도서협찬
‘읽지 말라’는 경고만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말이 또 있을까. 치넨 미키토의 <열람엄금: 엽기 살인범의 정신감정 보고서>는 바로 그 금지된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소설이다. 제목부터 불온하다. 열람해서는 안 되는 기록, 그것도 엽기 살인범의 정신감정 보고서라니. 독자는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단순한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공개되어서는 안 될 기밀 파일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형식에 있다.
일반적인 서사 소설처럼 사건을 차례로 풀어내기보다, 대량 살인 사건의 범인을 정신감정한 의사의 기록과 인터뷰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른바 ‘모큐멘터리’적 구성이다. 허구임을 알면서도 진짜 보고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방식은 작품 전체에 기묘한 현실감을 부여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도쿄 교외에서 벌어진 잔혹한 대량 살인 사건이 있다. 범인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반복하고, 자신을 지켜보는 ‘무언가’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호소한다. 정신감정 전문의 우에하라는 그와의 면담을 통해 사건의 이면에 숨은 괴이한 존재, ‘도메키’의 흔적을 추적해 나간다.
처음에는 살인범의 망상처럼 보였던 말들이 하나둘씩 현실의 단서와 맞물리면서, 독자는 어느 순간부터 묻게 된다. 과연 이것은 정신질환의 기록인가, 저주의 기록인가, 아니면 더 거대한 감시 시스템의 흔적인가.
흥미로운 점은 무서운 괴담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작품 속 공포는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감각에서 비롯된다. 현대인에게 매우 익숙한 불안이다. 거리의 CCTV, 스마트폰, 위치 정보, SNS, 알고리즘, 데이터 수집. 우리는 편리함을 얻는 대가로 일상의 상당 부분을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내어주고 있다.
작품은 이 막연한 불안을 ‘도메키’라는 형상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의 공포는 초자연적이면서도 동시에 매우 현실적이다. 요괴의 눈이든, 카메라의 렌즈든, AI의 분석 화면이든, 중요한 것은 인간이 ‘항상 지켜보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정신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작가 치넨 미키토가 실제 의사라는 점도 작품의 설득력을 높인다. 정신감정, 임상적 관찰, 이상행동에 대한 묘사에는 의료 현장을 아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생생함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문장이 어렵거나 딱딱한 것은 아니다. 대화와 기록을 오가는 구성, 중간중간 삽입된 일러스트와 단서, 평면도와 자료 이미지 덕분에 책장은 빠르게 넘어간다. 300페이지 안팎의 분량이지만 체감상 훨씬 짧게 느껴진다. 평소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독자도 부담 없이 빠져들 수 있는 구조다.
또 하나의 장점은 공포에서 미스터리로 넘어가는 흐름이다. 초반부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불안과 감시당하는 감각이 강하다. 눈을 감는 것조차 꺼려질 만큼 기분 나쁜 공포가 독자를 압박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사건의 조각들이 맞춰지고, 공포는 점차 추리의 쾌감으로 바뀐다. 특히 후반부에는 독자가 예상한 방향을 여러 번 배신하는 반전이 이어진다. 단순히 무섭게 만들고 끝나는 소설이 아니라, 장치와 복선, 형식과 반전을 치밀하게 엮어낸 미스터리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전작 <스와이프 엄금>을 읽은 독자라면 더욱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열람엄금>은 전작의 세계관과 이어지는 요소를 품고 있으며, ‘도메키’라는 존재의 정체에 한층 깊이 접근한다. 물론 이 작품만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전작을 알고 있다면 더 많은 연결고리와 충격을 발견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매체적 감각을 활용했던 <스와이프 엄금>이 새로운 독서 경험을 보여주었다면, <열람엄금>은 보고서와 기록, 감시와 정신감정이라는 형식을 통해 한 단계 더 음산하고 입체적인 공포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사생활이 보호받는 삶을 살고 있는가. 누군가 지켜보는 시선의 존재를 알게 된 인간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가. 이 소설은 금지된 기록을 읽는다는 자극적인 설정을 넘어, 감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안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서도 묘하게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이 작품의 진짜 공포는 책 속 도메키가 아니라, 책을 덮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시선의 감각’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절대 열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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