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감사해
csw2700 2025/04/24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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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움가트너
- 폴 오스터
- 16,020원 (10%↓
890) - 2025-04-30
: 36,250
#바움가트너 #폴오스터 #열린책들 #영미문학 #가제본서평단
먼훗날 생을 회상하며 글을 쓰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장난처럼 아내가 말한다. 나 죽고 나면 장례까지 다 치르고 오라고. 그러면 나는 말한다. 내가 먼저 갈 거라고. 아내는 울분을 토하면서 지금까지 뒤치닥거리한 것만도 족하니 마지막은 니가 챙기라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넘겼는데, 그게 현실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상상해본다.
여기 한 노인이 있다. '바움가트너'가 그의 이름. 정원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몸이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게 된지 오래.
인생의 동반자가 먼저 떠난 집에 혼자 남은지 10년.
노인은 아내가 남긴 글을 하나 하나 읽어낸다.
아내는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쓰는 것을 싫어했다.
육필 원고. 그녀에게 깊은 상실감을 새겨놓은 첫사랑에 대한 추억담(자원입대 후 사고로 목숨을 잃은 그와 달리 그녀와 그에 대한 추억을 공유한 노인이 승자)을 읽고 그녀가 다른 이들이 쓴 작품을 번역한 작업물과 끝내 서랍 깊숙히 넣어둔 미발표 시를 정리한다.
아내가 남긴 글에서 그의 지난 삶의 조각들을 발견한다.
생은 계속 된다. 새로운 사람도 만났다.
아내 '애나' 이외의 여성과 진지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해본다. 그 여성의 이름은 '주디스'.
사별한 그와 달리, 주디스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다. 정서적으로 억압했던 전남편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기까지의 과정이 아직 기억에 선명하기 때문이다.
애나와 주디스의 결정적인 차이는 '엄마'로서 자녀를 양육해 본 경험에 있는 것 같다고 노인은 생각한다.
새로운 시작은 혼자 할 수 없다.
아내의 작품에 대한 논문을 쓰겠다는 젊은 여성이 노인을 찾는다. 기존에 발표된 작품이 너무 적어서 지도교수로부터 더 많은 작품을 토대로 쓰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아내의 작품을 몇 개 더 찾아내어 보여준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가 있다는 것. 삶은 그런 사소한 변화만으로 계속할 동력을 얻기도 한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는다. 얼마가지 못해 추돌하고 에어백이 터지지만 그래도 괜찮다. 인생의 마지막 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마침표를 찍기에 아직은 이르다.
오랜 세월 살아남아 다시 최근에 주목받는 작품 <스토너>가 떠올랐다. 폴 오스터의 유작이 삶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라니. 그는 바움가트너의 마지막장이 시작임을 알렸으나 정작 현실에서의 그의 삶은 종료되고 말았다.
담담하게 써내려간 이 책에서 그간 써왔던 그의 작품들과 다른 면을 찾았다. 거장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진화 중이었다. 젊은 작가. 폴 오스터. 오래 기억할게요. 그대. 폭싹 속았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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