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승 작가님의 신작인 술래 바꾸기가 낮은산에서 출간되었다. 아무튼 연필부터 짐승일기까지 작가님의 글을 너무나 좋아하던 독자로써 이보다 더 반가운 일이 최근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신이 나서 출간되자마자 허겁지겁 주문을 했다. (우리집 고양이도 좋아하는 술래 바꾸기!)

책은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너무 좋았다. 문장 하나하나가 다 가슴에 들어왔다 나갔고 나간 자리는 이상하게도 허전하지 않았다. 문장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음에도 가슴이 시리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김지승 작가님의 능력이자 매력인 것인가?!
책은 총 15개의 사물에서 시작되거나 혹은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표지에는 이 책의 장르에 대한 분류를 '에세이'로 해두었지만 책은 자주 장르의 이름을 빠져나간다. 늘 여성들에게는 일정한 자리가 없는 것처럼 책도 계속해서 특정 바운더리에서 빠져나가고 흘러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술래 바꾸기를 사랑할 것이리라.)
책의 차례이자 목차가 되어준 15개의 사물은 타자에게 의자를 내어주는 이상한 여자들로부터 시작해 생의 시작과 사라짐이라는 생의 과정을 담은 것 같았다.
조각들이 서로를 의지해 균형을 잡고 외부의 파동에 유연하게 움직이는 원리를 감각하면서, 아이는 다른 여자 아이를 만나는 순간 그 감각을 기억해 낼 것이다. 손을 잡을 수도 있겠지. 못된 말과 시선들이 무자비하게 흔들어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지. 이쪽에서 기울면 저쪽에서 솟아나는 춤을 추듯 살았으면 좋겠다. 딸이라서 자랄수록 더 많은 "좋겠다"의 주문이 필요할 거라고 지금은 조금 아껴 두자 했지만 매일 "좋겠다"가 증식하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p.33
15개의 사물 중 모빌은 생의 시작에 연결되는 사물이라고 할 수 있다. 모빌 챕터와 관련해서 또 작가님이 북토크 등에서 자주 언급하시는 것 중 자주 떠올리는 문장은 "모든 여자는 엄마가 아니지만 모든 여자는 딸"이라는 문장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작은 딸의 탄생을 가장 큰마음으로 축하하며 모빌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딸들을 연결해 주고 나아가 위로와 응원을 마구 건넨다. 그래선인지 나도 어쩌다 태어난 것에 대해 위로도 받고 응원도 받는 것 같아 모빌 챕터에서는 계속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요즘에는 10살 이상 차이 나는, 나보다 늦게 세상에 발을 디딘 여성들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지 방법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퍽 자주 드는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모빌 챕터에서 작게나마 힌트를 얻은 것 같았다. 내 뒤에 올 여성들에게 나도 모빌과 같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 그들에게 매일은 아니더라도 어쩌다 한 번씩이라도 "좋겠다"의 주문을 넣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앞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겁에 질려 있다가 가까스로 기지개를 켜는 밤에 비로소 온전히 느껴지는 '자신'이 또 버거워 서둘러 잠으로 도망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우리는 같이 있지 않아도 알았다. 어쩌다 통화를 할 때면 영어도 독일어도 한국어도 아닌 언어가 오갔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엇다. 어차피 다 비명이었으니까. -p.106
재작년 가까웠던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 들른 적이 있다. 태어나서 유학은 커녕 한 번도 개월 단위의 장기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던 탓에 예전부터 그 일정에 맞춰 2달간의 장기 여행을 계획하고 떠났었다. 모아둔 돈이 많지 않았기에 숙소며 식사며 꽤나 가난한 여행자의 신분으로 돌아다녔다. 재작년의 유럽은 코로나 규제가 풀리기 시작한 시점이었고 그래서 변수가 많았다. 음성 확인서를 제출해야 되었다가 말아도 괜찮았다가, 3차 백신 접송서가 필수였다가 아니었다가. 그런 상황이다 보니 규제가 풀리고 있었음에도 꼭 유럽게 나가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많이 나가지도 않는 타이밍이었다. 그런 타이밍에 동양인 여자 혼자 서양 백인들 사이에 둘러싸이는 일이 여간 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타국에서의 자극적인 시선들, 매일 사리게 되는 몸들. 나는 그곳에서 계속해서 언어가 없었고 어떤 날은 운이 좋아 친절한 백인이 짧게나마 영어 회화 상대가 되어주었음에도 내게는 마치 대화가 아닌 계속해서 짤막하게 내지르는 '비명' 같았다. 이방인이 되는 일, 격렬하게 타인이 되는 일, 국겨의 딱 경계에서 계속 서있는 것 같은 일, 그곳에서 파는 샴푸와 바디샤워를 써도 나만 모르는 냄새가 나는 일. 나는 이 2달간의 경험이 너무도 강렬했다. 실제로는 한 번도 비명을 지른 적이 없음에도 귀국 날에는 '비명'으로 인해 목이 다 쉬어버린 사람같았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어렴풋이, 조금이나마 경계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더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을 얻은 것 같다. 그래서 비누 챕터를 보았을 때도 머리로 하는 이해 말고 이상하게 몸이 반응하는 기분이었다. 귀국날에 느꼈던 그 쉬어버린 목의 느낌. 비누를 읽으며 나는 계속해서 목을 가다듬고 침을 삼켜야 했다.

(홍대의 땡스북스에서 열린 북토크에 다녀온 날. 다정한 사회자님과 작가님의 귀한 질문 그리고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정말이지 여성 노인들은 최고다. 모르면서 다 안다. 다 알면서도 모른다고 한다. 마치 메두사의 또 다른 자매들, 하나의 눈과 치아를 같이 쓰는 세 자매 그라이아이처럼. -p.99
나이 듦은 쇠약하여 말라 떨어지는 일방향의 쇠락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 자유롭고 깨끗해지는 쇄락을 동시에 내재하는 과정이라는 것. -p.181
생의 여러 과정 중 술래 바꾸기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건 나이 듦, 그중에서도 바로 여성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성노인의 이야기를 듣고 들여다볼 수 있었던 점이 정말 좋았다.) 작가님께서 북토크에서도 말씀하셨지만 여성노인의 현실-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작 취약한 계층-의 이미지를 공포정치로만 소비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에 정말 무릎을 탁 쳤다. 우리가 운이 좋아 온전히 나이 들 수 있다면 또 다른 여성노인이 될 것인데 그 이후의 삶을 잘 꾸려나가기 위해 지금의 여성노인들로 부터 배울 점이 분명 많을 것이다. 내게 존재하는 여성노인은 아직 우리 할머니밖에 없는데 술래 바꾸기를 통해 정말 다양하게 살아가는 여성노인을 접할 수 있어 감사했다. 여성노인에 대한 이 기록들이 분명 무수한 다른 여성들에게도 앞으로의 '나이 듦'에 이정표가 될 것 같다. 나에게도 이 책은 이정표이자 등대가 될 것이다.
여성노인에 대한 이야기 못지않게 책에서 정말 중요하게 이야이하는 것은 2가지가 더 있다.
네가 있어 내가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인간의 존재 방식으로 이해했다. 나는 너의 타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평생 물어야 하는. -p.92
1. 타인과 관계 맺기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요즘 특히나 이슈가 되고 있는 여러 사안들에 대해서도 술래 바꾸기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도 소비자 중심주의가 되어 "나와 타인"이라는 쌍방의 관계 맺기가 아닌 "나(로 인해 존재하는 너)"라는 일방의 관계 설정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모든 인간은 홀로 존재할 수 없음에도 마치 나 혼자 독자적 존새가 가능하다는 방식과 생각이 타인과의 관계 맺기가 불가능해지고 결국 그것은 지금의 이런 소비자 중심주의를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까 싶다. 작가님은 관계 맺기를 할 때 오는 취약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취약해짐에도 불구하고 너무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를 갖자고 말씀해 주셨다. 타자에게 기꺼이 연루되는 것, 기꺼이 타자의 술래가 되어주는 것, 기꺼이 타자에게 의자를 내어주는 것. 작가님이 먼저 용기를 내어주신 것을 따라 나도 함께 용기를 내고 싶다.
나는 끝나지 않았는데 모두 끝난 듯이 굴었다. 그래서 나도 다 끝난 척을 해야했다. -p.187
듣는 몸이 되어야 했다. 내가 당신의. 듣고 있어요. 모두가 외면하는 어떤 순간이라면 더욱. 예년에 비해 더 잘 들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그래야 했다고 울 수 있었다. 이제는 어떤 상실이, 비극이, 부재가 먼저인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겹겹의 애도에서 우리는 자주 잊었다.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면 무엇보다 먼저 침묵해야 했다. 그걸 자꾸 잊고 우리는 먼저 울었다고 울었다. -p.195
2. 애도하기 (애도는 슬픔을 지속하는 일)
술래 바꾸기에서 가장 많이 운 챕터를 꼽으라면 당연 설탕과 얼음이다. 이 챕터는 나에게 애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해주었다. 작가님은 설탕과 얼음에서 이태원 참사라 직접적 단어 언급은 없으셨지만 읽는 우리는 모두 알았다. 읽는 내내 어느새 나도 애도를 끝내버린 사람이라는 생각에 슬프고 아팠다. 아직 이야기를 듣지도 못했는데. 작가님은 북토크에서 이태원 참사에서 특히 자식을 읽은 부모님들이 자식들의 유골함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며 "애도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라고 하셨다. 참사가 일어났던 당시, 국가에서 정해준 애도의 기간 선포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나도 다쳤다. 애도를 국가 권력이 통제하는 폭력적 상황에 나도 이 정도인데 유족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으리라 말한다면 거짓일 것이다.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애도 앞에서 우리는 마치 장사가 끝난 가게의 셔터를 내리듯 애도를 차단했고 막았다. 191페이지에 나온 노인의 말인 "같이 괜찮지 않으려고요."가 아닌 우리는 "일단 나부터 괜찮아지려"고 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내가 불편하지 않으며 충분히 허용 가능한 애도의 범위를 들먹거리며 우리는 그렇게 아직 애도를 시작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계속 다치게 했다. 이해하는 것은 듣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애도를 지속할 수 있도록 나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이제 내가 듣고 있습니다.
술래 바꾸기 책이 너무 좋아서 책 리뷰를 처음 써보는 것인데도 엄청 길어졌다. (이것이 김지승 작가님의 마력?!) 다 읽고 나서도 여운이 남아 중간중간을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책이다. 짐승일기 때도 그랬는데 술래 바꾸기에서도 역시나 여러번 읽게 된다. 다만 짐승일기 때와는 다른 점이라면 술래 바꾸기를 읽을 때는 짐승일기를 읽었을 때보다 조금 덜 울었다. 작가님의 유머 포인트가 너무 많이 어떤 부분에서는 깔깔거리기도 했다. 유머와 슬픔이 술래 바꾸기 안에는 동시에 존재하는데 의자(타자를 위한 자리)에서 모빌(탄생)로, 모빌에서 설탕과 얼음(사라짐)의 과정이 나는 잘 모르기도 하고 왠지 알 것도 같은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 안에는 내가 잘 볼 수 없었던 여성노인의 시공간이 있고 내게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대한 지침이 있고 내가 나도 모르게 잊어가던 애도에 대한 상기가 있었다. 이런 점들이 아마 술래 바꾸기가 단순히 책이라는 물질성만 지닌 것이 아닌 경계를 허물거나 경계 위에 놓이며 우리를 여러 자리, 위치, 시공간에 앉히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의 삶에서 눈에 띈 사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슬픔에 할큄 당하지 않고 계속해서 위로받을 수 있었다. 울면서도 안도했고 웃으면서도 불안하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님께 감사하다. 나를 온전히 지키면서 타자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고 또 손을 마주 잡아 볼 수 있었다. 책을 덮고 나니 왠지 손이 따뜻해진 기분이다.

(북토크에서 만난 함께 읽고 쓰는 메두사 동료들과 나의 술래 바꾸기. 우리는 각자 다른 포스트잇으로 아끼고 아껴 붙인 것이 이만큼이나 된다며 함께 웃었다. 술래 바꾸기 덕분에 따뜻한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
조각들이 서로를 의지해 균형을 잡고 외부의 파동에 유연하게 움직이는 원리를 감각하면서, 아이는 다른 여자 아이를 만나는 순간 그 감각을 기억해 낼 것이다. 손을 잡을 수도 있겠지. 못된 말과 시선들이 무자비하게 흔들어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지. 이쪽에서 기울면 저쪽에서 솟아나는 춤을 추듯 살았으면 좋겠다. 딸이라서 자랄수록 더 많은 "좋겠다"의 주문이 필요할 거라고 지금은 조금 아껴 두자 했지만 매일 "좋겠다"가 증식하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P33
아침부터 저녁까지 겁에 질려 있다가 가까스로 기지개를 켜는 밤에 비로소 온전히 느껴지는 ‘자신‘이 또 버거워 서둘러 잠으로 도망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우리는 같이 있지 않아도 알았다. 어쩌다 통화를 할 때면 영어도 독일어도 한국어도 아닌 언어가 오갔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엇다. 어차피 다 비명이었으니까.- P106
정말이지 여성 노인들은 최고다. 모르면서 다 안다. 다 알면서도 모른다고 한다. 마치 메두사의 또 다른 자매들, 하나의 눈과 치아를 같이 쓰는 세 자매 그라이아이처럼.- P99
나이 듦은 쇠약하여 말라 떨어지는 일방향의 쇠락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 자유롭고 깨끗해지는 쇄락을 동시에 내재하는 과정이라는 것.- P181
네가 있어 내가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인간의 존재 방식으로 이해했다. 나는 너의 타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평생 물어야 하는.- P92
나는 끝나지 않았는데 모두 끝난 듯이 굴었다. 그래서 나도 다 끝난 척을 해야했다.- P187
듣는 몸이 되어야 했다. 내가 당신의. 듣고 있어요. 모두가 외면하는 어떤 순간이라면 더욱. 예년에 비해 더 잘 들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야 그래야 했다고 울 수 있었다. 이제는 어떤 상실이, 비극이, 부재가 먼저인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겹겹의 애도에서 우리는 자주 잊었다.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면 무엇보다 먼저 침묵해야 했다. 그걸 자꾸 잊고 우리는 먼저 울었다고 울었다.- P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