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mini74 2022/10/3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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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움
- 아니 에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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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0) - 2019-04-26
: 3,589
“6월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
너무나 강력한 첫 문장이었다.
이 날을 기점으로 작가의 삶은 나뉜다.
부끄럽고 복기하고 싶지 않은 기억, 그 기억들을 영원히 박제함으로서 스스로 홀가분해지고 치유받으려 한다.
원초적 공간에 대한 기억.
내가 어렸던 시절, 계급의 언어는 훨씬 직설적이었다.
학기 초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의 유무, 자동차가 있는지, 피아노가 있는지에 대한 조사부터 시작됐었다.
마지막까지 그리고 가장 손을 많이 든 아이들이 주로 반장이 되고 부반장이 되었다.
간혹 자기집이라고 손을 든 아이옆에서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린다.
‘야 너네 집 아니잖아.’
아이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자신의 거짓말을 까발리는 같은 동네 아이.
그 여자아이의 부끄러움을 보며 마음을 쓸어내린다.
그 부끄러움이 그 민망함이 내 것이 아니라서.
내 탓이 아니다. 내가 원인인 것도 아님에도 마치 내 탓인 듯 어쩔 줄 몰라하는 일들이 어린시절엔 많았다.
부모의 불화, 폭력, 주눅드는 말들, 우울하게 하는 언어들.
발가벗겨져 집 앞 대문에서 벌을 서던 우리 반 남자아이, 놀라서 외면했지만 슬펐다. 저 아이 얼마나 부끄러울까.
하필 종아리가 퍼렇게 멍든 날, 반바지 체육복을 입어야 해서 기어이 겨울 체육복 몰래 챙겨 입었던 기억.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무서운 말들,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가하는 폭력.
나이가 들어도 떠나지 않고 마음 한켠에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말들.
그 말들을 적고 또 적어 떠나보낸다.
가슴 한켠의 이야기들을 꾹꾹 눌러적고 그렇게 떠나보낸다.
가장 부끄럽다 생각한 일들을 적어나가면서 이젠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내 탓이 아님을 어린 내가 어찌할 수 없었던 일임을 써내려간다.
“글쓰기는 분열된 세상과 끝장을 보기 위한 것이며 계급 체계에 등을 돌림으로써 건드릴 수 없는 것들을 건드리기 위한 것이다.” 작은 파티 드레스 중에서
(떨리는 손으로 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는 그 몇 초 동안 얼마나 마음 졸이고 떨었던가. 그 날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그런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을까. 이젠 받을 수 없는 전화에 어떤 마음이었을지 헤아릴 수도 없다. 지금의 20대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엄마, 재미있게 잘 놀다 올게..란 아이들을 또 지켜주지 못했다.
이럴땐 호밀밭을 뛰어노는 아이들을 지켜주고 싶다던 호올든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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