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SNS를 통해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가 끌려서 주문을 하고, 예전에 읽었던 그의 책들을 훑어보았더. <향수>,<좀머씨 이야기>, <콘트라베이스>, <비둘기>. 4권을 읽었다. 아마, <좀머씨 이야기>를 가장 먼저 만났던 것같다. <향수>를 읽고 같은 작가의 작품이 맞아싶었으니까. <비둘기>를 읽고 썼던 리뷰가 다른 온라인 서점에 있었다. 다시 읽으면 어떤 리뷰를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옮겨보면서 그때의 감동을 떠올려봤다.
2018.1.15 (지금은 절판된 책으로 읽었다)
<콘트라베이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쥐스킨트의 글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한 사람의 심리와 행동을 이렇게 세밀하게 묘사해낼 수 있다니. 주인공과 함께 긴장하고, 분노하고, 그의 감정에 동조하면서 읽어내려가는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 책장을 덮기도 전에 다른 소설도 찾아봐야지라는 생각을 하게될 정도로. 힘들게 쌓아올린 누군가의 평화로운 삶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래서, 주인공이 큰 산을 만났을때 제발 굴복하지 말기를, 잘 극복해나가기를 바라게 되는데, 조나단 노엘을 만난 순간 딱 그랬다.
유년기에 부모를 잃었으며, 먼 친척 아저씨에 의해 3년동안의 군생활을 했으며, 동생과도 헤어졌다. 아저씨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도 했지만, 그녀는 딴 남자랑 떠나버렸다. 그는 사람들을 절대로 믿을 수 없고, 그들을 멀리 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난생 처음으로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게 되었다. 저금해 두었던 돈을 찾아서 파리로 떠났던 것. 다행이 은행의 경비원으로도 취직이 되었고, <코딱지만한 방> 하나도 얻었다. 그 이후로 30여년을 무탈하게 살아왔다. 1984년 8월 어느 금요일 아침에 방 문을 연 순간 복도에 있던 비둘기를 만나기 전까지는······ 비둘기가 왜 그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설명이 되지 않는 공포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것 아닐까? 하지만, 그러한 공포스러운 감정을 주는 대상을 만나는 것이 덕이 될지 실이 될지는 모른다.
비둘기는 그의 일생에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을만한 공간이기에 단 한순간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던 방을 버리고, 짐을 챙겨서 나올만큼 커다란 공포를 안겨주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는 동안, 책장을 덮은 다음에는 확실하게 비둘기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의 1박 2일을 한번 따라가보자. 평소 건물내에서 누군가와도 부딫히고 싶어하지 않던 그는 간단한 인사만 하고 지내던 집 청소와 관리를 하던 로카르 부인과 대화를 나눈다. 항상 감시하는 눈초리를 보내는 그녀에게 솟아나는 분노를 표출하기 위함이었는데, 가까이 마주한 순간 주택관리 규정과 함께 비둘기가 있음을 알리고 청소를 부탁한거였다. 평소라면 전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멀리서만 보던 그녀를 가까이에서 봄으로써 그녀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된거였는데, 좀더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사람 자체를 믿지 않았고, 자신의 일상이 깨어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그에게는 커다란 일탈이었던 셈이다.
비둘기를 만난 휴유증은 은행에 출근한 후에도 평소의 그답지 않은 실수를 하게 하고, 그 실수로 인하여 직장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닌지, 공원에서 만난 거지와 같은 상황에 처해지지는 않을지 끊임없이 두려워한다. 실수로 바지에 구멍이 나기도 했는데, 당장 수선이 어려워 스카치테이프로 붙이고 오후 근무를 한다. 스카치테이프를 가리려하다보니 평소에 자신이 경멸하던 경비원들처럼 무뚝뚝한 표정이 되어버렸고, 그것은 자신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 일으켰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분노가 끓어 넘쳤다. 30여년 동안 그는 누군가와 제대로 대화를 해본 적도,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해본 적도 없이 살아왔던 것 같았다. 그랬던 그였기에 비록, 그 대상들에게 대놓고 표현하지는 않았고, 마음 속으로만 분노한 것이었을지라도, 그 장면들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였다.
퇴근을 하고 집으로는 가지 못한채 호텔로 간다. 관처럼 생긴 호텔방에서 정성들여 식사를 하고 [내일 자살해야지] 생각하면서 잠이 들었다. 조나단은 어둠이 가득찬 방에서 그가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말을 내뱉으려던 순간 두드림의 소리를 들었다. 빗소리였다. 빗소리를 한참 듣던 그는 호텔 밖으로 나갔다. 비둘기가 뜻하지 않게 공포를 안겨주어 자신을 들여다보게 했다면, 빗소리는 그를 세상 속으로 다시 끌어내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유 속으로 걸어 나갔다. (중략) 그는 젖은 평평한 신발을 가차없이 철벅거렸고, 물이 한쪽은 가게의 쇼윈도로 또 한쪽은 주차된 자동차로 튀었으며, 입고 있던 바짓가랑이로도 튀었다. 정말 신나는 짓이었다. 그는 어린아이들이 하는 그런 지저분한 유희를 다시 되찾은 대단한 자유라도 된다는 듯이 즐겼다. 플랑슈 가에 도착하여 집의 대문을 들어서고, 잠겨 있는 로카르 부인의 숙소를 잽사게 지나 뒷마당을 가로지르고, 좁다른 뒤 계단을 올라갈 때도 그는 여전히 활기찼고 행복했다. -p 107
복도는 완전히 비어 있었다. 비둘기는 흔적도 없었다. 바닥의 오물도 다 치워져 있었다. 깃털도 없었다. 붉은 색 타일 위에서 바들바들 떨리던 작은 깃털도 보이지 않았다. - p 109
로카르 부인이 아무것도 처리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깔끔하게 치워두었다. 공포를 안겨줬던 비둘기는 사라졌고, 인간에 대한 신뢰는 다시금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자신의 일상을 뒤흔들어 놓을 공포로 다가왔던 비둘기는 조나단에게 남아 있는 날들에 선물같이 날아든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비둘기의 등장으로 조마조마했던 내 마음은 '어느덧, 비둘기야 고마워!' 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나단 , 무너지지 않고 더 밝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다행이야'라는 말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