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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리앵의 서재
  •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 신경림.다니카와 슌타로
  • 10,800원 (10%600)
  • 2015-03-15
  • : 362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 제목부터가 이미 시의 한 구절 같은 책입니다. 이 책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형식이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두 시인이 대담을 나눈다는 형식이야 흔하게 보아온 것이지만, ‘대시(對詩)’라니요. 저로선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번역가 요시카와 나기의 설명에 따르면 본래 몇 명이 모여 돌아가면서 몇 줄씩 시를 쓰는 ‘연시(連詩)’라는 형식이 있는데, 두 명이 참여했기에 ‘대시’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두 시인이 나눈 대시를 직접 보는 게 낫겠네요.

 

숨 쉴 식(息) 자는 스스로 자(自) 자와 마음 심(心) 자
일본어 ‘이키(息, 숨)’는 ‘이키루(生きる, 살다)’와 같은 음
소리 내지 못하는 말하지 못하는 숨이 막히는 괴로움을
상상력으로조차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괴로움
시 쓸 여지도 없다

 

라고 다니카와 시인이 쓰면,

 

밤새껏 물속에서 허우적대다가
눈을 뜨니 솜이불이 가시덤불처럼 따갑다
아랑곳없이 아침햇살이 눈부신 앞뜰에는
목련이 지고 작약이 피고
이렇게 봄은 가고 있는데

 

라며 신경림 시인이 받는 식입니다.

 

대시를 읽는 묘미는 아마도 연이은 두 시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를 찾아보는 것 같습니다. 특히 두 시인이 대시를 주고받는 기간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는데, 이 사건을 바라보는 두 시인의 심경이 반영된 것 같은 시들이 있었습니다. 방금 예로 들어 드린 두 시도 그런 것 같고요.

 

다니카와 시인에 대해선 <20억 광년의 고독>이란 어마무시한 제목의 시를 지은 분이었다는 사실밖에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니카와 시인에 관해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무엇보다 신경림 시인과의 대담에서 보여주신 모습에서는 참 진솔한 모습이 절로 묻어나더라고요. 일찍부터 어린이를 위한 시나 노래를 많이 써온 이유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다니카와 시인의 답변이 그랬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좋은 시를 들려주고 싶다든가 하는 말도 있을 텐데, “돈 때문이죠. 어린이 책 시장이 크거든요.”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이미 한국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고 하는데, 다니카와 시인은 <우주소년 아톰>의 주제가도 쓰셨다고 하더군요.

 

대담에서 서로의 시에 관한 두 시인의 감상을 읽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신경림 시인이 쓴 <떠도는 자의 노래>를 두고 다니카와 시인은 자신의 <슬픔>이란 시를 떠올렸다고 하는데, 실제로 책에 수록된 두 시를 견줘 보니 그 발상이 많이 닮았더라고요. 신경림 시인의 <낙타>에 관해서 “이거 참 좋은 시입니다.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는 다니카와 시인의 답변을 읽으면서 저도 흐뭇한 마음이 들더군요.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이 내 생각과 비슷한 것을 이미 써 놓은 것을 발견해서 김이 빠질 때가 있”다는 어느 청중의 질문에 대한 다니카와 시인의 겸허한 답변도 제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다니카와 시인은 답변은 이렇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앞지르기를 당했을 때도, 그냥 내가 거기에다 새로운 것을 추가하면 된다고 생각하세요.”

 

책 후반부에 실린 두 시인의 에세이는 기존에 발표된 것들이어서 큰 기대 없이 읽어나갔는데, 이 책 전체와 잘 어울리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신경림 선생의 초등학교 시절 일본인 여선생님에 대한 회고를 통해 좋은 일본인들도 역시 그 시절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1945년 해방이 되던 때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해방 직후 새 학기가 시작되자 모든 과목을 제쳐두고 국어를 가르치느라 학교 전체가 분주했다고 합니다. 다니카와 시인이 시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에 관해 고백하는 에세이도 좋았습니다.

 

이 책의 번역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번역가 요시카와 나기는 한국으로 유학해 대학원에서 현대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하는데, 번역된 문장이 무척 자연스럽더군요. 좋은 편집자가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걸 감안한다고 해도 한국어 구사가 적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신경림 시인 시선집도 몇 년 전 일본어로 번역했다고 하는데, 다니카와 시인이 번역을 칭찬할 정도니 한-일, 일-한 번역에 모두 능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앞으로 한국과 일본을 이어주는 좋은 번역가로 기대해도 될 듯하네요.

 

이 시리즈는 앞으로 계속 출간될 거라고 하는데, 과연 어느 작가들이 포함될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일본에서 특히 인기 있다는 김중혁 작가도 포함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소 논쟁적인 작품을 발표해온 작가들도 이 시리즈의 목록에 이름을 올린다면 더 흥미진진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 특별한 시리즈가 널리 읽혀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얽히고설킨 관계를 푸는 데 일조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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