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읽고 이름을 검색해봤다. 장철문. 시인이자 아동문학가. 쉬이 얼굴을 보기 힘든 사내였지만, 내가 찾은 사진 속 그의 모습은 짐작한 대로 포근한 웃음을 지닌 사내였다. 둥근 달처럼.
글을 읽다보면 왠지 글쓴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의 얼굴이 궁금해지게 된 결정적인 시가 바로 <유홍준은 나쁜 놈이다>. 이른바 유홍준이 얼마나 나쁜 놈인가를 시인이 꼬지르는 시인데, 글을 읽다보면 거뭇거뭇 수염이 난 어린 소년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웃음이 흘러나온다.
유홍준이 멧돼지를 잡았다 맨손으로 돌팍을 던져서 잡았다 다람쥐무늬가 있는 놈이다 연둣빛 칡덤불 밑에서 아장아장 걸어나온 놈을 잡았다 / 나쁜 놈! // (...) 쫓아나볼 요량으로 인사로 돌팍을 던졌는데 그만 즉사했노라고, 박박 우겼다 한 번만 말해도 될 것을, 말하고 또 말하고 오래 말했다 옆집 누나의 젖꼭지를 스친 사춘기의 손가락처럼 / 나쁜 놈! /
(...)
나중에 유홍준이 파파할아버지가 되도록 살아서 장성한 손자의 임종을 받고 갈 때 그 다람쥐무늬 멧돼지 새끼가 구불구불 저승길에 따라붙을 거다 쫄랑쫄랑 따라붙어서 그때 좀 과하지 않았느냐고 짧은 꼬리를 흔들 거다 내 입때껏 예서 기다렸노라고 꿀꿀거릴 거다 (...) _<유홍준은 나쁜 놈이다>에서
얼굴을 그리게 된 시인의 시를 다시 천천히 읽는다. 흰머리를 가리는 아이 옆에서 다시 어린 아이가 되어 어릴 적 아버지 수염을 만지던 시절로 돌아간 그가 보인다. 아버지가 엄마의 머리채를 잡던 밤마다 귓구멍을 틀어막고 싶었던 열두 살 어린 그의 얼굴이, “달이 참 좋다”라고 하는 그의 웃음이.
시인의 말에 그는 이 시집이 “길가에 내놓은 의자”라고 했다. 나는 그 의자에 앉아 그의 얼굴을,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들여다본다.
그러고 보니 표지 색이 멧돼지 새끼의 털 색이네.
유홍준 나쁜 놈!
벼 알갱이 속으로 가을볕의 맨몸이 들어가던 그 아침
숙취의 시적지근한 냄새를 풍기며
섬돌 곁의 장화를 신는 아버지의
웃자란 수염을
금기의 영역에 발을 밀어놓듯 쓰다듬던 때가 있었다
- 아빠, 아빠들은 다 수염이 나?
꺼칠한 감각에 흠칫 물러서던 때가 있었다
- 어른이 되면 철문이도 나지
인자 아랫도리도 꺼끌꺼끌해질걸
아버지의 그 꺼칠한 수염의 감각이
손금처럼 남아 있다
엷어지는 가을볕 속에서
한 생이 가고 있다 _<초가을 볕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