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어떤 것이 ‘인간답다’는 걸까. 인간의 도리? 인간의 길? 인간이 마땅히 행해야 할 행동의 준칙? 따라야 할 기준?
<유기동물에 관한 슬픈 보고서>는 ‘인간다움’에 대한 인식이 인간종 중심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인식일 수도 있다는 걸 아프도록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아니, 이것은 책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생명을 무책임하게 방치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호소에 가깝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유기동물, 버려진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다. 유기동물보호소에 수용된 동물들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집에 양귀자, 박원순, 임순례, 김정은, 스노우캣, 강경옥 등 저명인사들의 짧은 문장들을 함께 엮었다. 책이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충격적이다. 그저 개와 고양이들의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그들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전달된다. 죽음을 예감한 듯, 텅 비어있는 저 작은 생명들의 눈동자. 차마 정면으로 보기 괴로워 회피하고만 싶어지는 풍경. 안타까움과 좌절, 분노와 실망이 겹치는 와중에도 ‘주인’으로 대표되는 인간에 대한 한줌의 기대감을 간직한 그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다시 가슴을 친다.
얼마 전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한 분이 유독 예뻐하며 기르던 개가 주인을 기다리며 음식을 거부해 끝내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이들에게 폐가 될까 영안실에 함께 가지 못하다, 상태가 끝내 좋아지지 않아 데려간 그곳에서 개는 주인아저씨의 영정을 보고 눈물을 흘렸단다. 수의사 등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간과 오랫동안 살던 동물은 인간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반려동물과 눈빛으로, 쓰다듬과 몸부빔으로 나누는 교감은 인간 사이의 그것만큼 복잡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일방적으로 무시당할 만큼 가벼운 것도 아니다. 아니, 한 번이라도 동물과 교감을 나누어 본 경험이 있다면 존재와 존재간의 소통의 본질은 같은 거라는 사실이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마도 동물애호가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가장 싸늘한 시선을 대변하는 논리는 ‘그 정성으로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돌아보라’는 것일 테다.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휴머니즘 넘치는 언사로 무장하신 분들일수록 실제로는 주변의 고통에 무감각하거나, 입이나 키보드로만 어려운 이들을 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물론, 동물에 대한 ‘투자’가 과하다 싶은 일부 유난스런 사례가 없지 않지만(실제로는 이런 사례들만 자극적으로 다뤄져 왜곡을 조장한다), 동물을 따뜻하게 대할 줄 아는 이들은 사람들에게도 역시 마찬가지로 대할 가능성이 높다. 생명과 존재에 대한 태도는 쉽게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편집자는 후기에서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사냥견, 목양견 등 개의 가치가 생활 속에서 분명하게 자리잡은 데 반해 한국이나 일본은 ‘애완동물’로 유입되어 ‘반려동물’로 진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동물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장난감’ 정도로 여기는 이들로 인해 유기동물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진다는 것이다. 또, 반려동물을 받아들여 기르는 것에 대해 ‘끝까지 책임질 자신이 없으면 포기하는 것’도 동물을 사랑하는 한 방식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책 서문에 인용된 간디의 말을 재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자.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수준을 그 나라에서 동물이 어떠한 취급을 닫는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 자, 우리의 도덕적 수준은 어디까지 와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