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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호님의 서재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장 지글러
  • 8,820원 (10%490)
  • 2007-03-12
  • : 41,005

전대미문의 사건, 9.11 동시다발 테러를 모르는 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2001년 세계무역센터를 강타한 9.11이 아닌 1973년 칠레에서 일어난 9.11을 알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합법선거를 통해 칠레 대통령이 된 최초의 사회주의자 아옌데는 1973년 9월 11일 대통령궁에서 직접 총을 들고 쿠데타 군과 싸우다 죽음을 맞았다. 미국 CIA의 지원을 받은 저 유명한 독재자 피노체트의 쿠데타 군은 대통령 궁을 탱크로 둘러싸고 공군 폭격기로 미사일을 퍼부었다.

기아 문제를 이야기하는 책 소개에 웬 쿠데타냐고? 칠레의 9.11은 기아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옌데가 선거에서 내건 제1공약은 ‘15세 이하 어린이들에게 하루 0.5리터 분유 무상급식’이었다. 소아과 의사 출신이었던 아옌데가 당시 칠레 아이들의 심각한 영양실조 실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칠레에서 관련 산업을 독점하며 분유와 유아식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있던 다국적 기업 네슬레는 칠레정부와의 협력을 거부했다. 당연히 칠레정부는 제값을 치르고 분유를 사려했지만, 네슬레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기에는 미국의 입김도 작용했다. 아옌데의 개혁프로그램대로 칠레경제가 자립성을 높여 '사회정의'를 실현하면 자국의 국제기업들이 칠레에서 얻는 이익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결과였다. 결국 아옌데의 개혁프로그램은 실패하고, 칠레정부는 전복된다.

놀라운 일 아닌가? 자기 나라의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제값을 주고 우유를 먹이는 일조차 미국과 다국적 기업들이 반대하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에는 이처럼 놀라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유엔 인권위원회의 식량특별조사관인 장 지글러는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살벌한 세계의 이면을 들추어낸다.

사실,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지구 전체로 보자면 세계인구가 모두 소비하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 아니, 지구는 현재보다 두 배의 인구를 부양할 수도 있다. 이미 1984년 FAO(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는 당시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지구는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고 계산한 바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열 살 미만의 아이가 7초마다 한명씩 기아로 목숨을 잃고 있고, 6분에 한 명씩 비타민 A의 부족 혹은 썩은 물과 접촉함으로써 시력을 잃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선 늘어만 가는 음식물 쓰레기를 고민하고, 과도하게 축적된 칼로리를 제거하기 위해 다이어트에 골몰한다. 수치로 볼까?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을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 즉 만성적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은 세계적으로 8억 5천만명에 달한다. 선진국에서는 비슷한 숫자의 사람들이 과체중과 비만에 시달린다. 이렇게 지독한 부조리와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문제는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거나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4분의 1은 사람이 아닌 소가 먹어치운다. 세계 곡물시장은 먹을 것이 없어 당장 굶어죽을 사람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식량으로 투기하는 이들의 이해에 따라 인위적으로 가격이 부풀려진다. 앞서 언급한 칠레의 아옌데처럼 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개혁프로그램을 가동시키려던 저개발국가의 정치인들은 기득권과 국제자본에 의해 쫓겨나거나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기아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비극’이라는 이야기다.

학교에서는 저개발 국가들의 가난에 대해 반쪽짜리 진실만을 가르치기 일쑤다. 선진국들과 다국적기업들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가난한 나라를 착취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학교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쉽게 이야기되기 않는다. ‘돈을 벌 권리’는 인정되는데 ‘굶어죽지 않을 권리’는 인정이 안 되는 꼴이다.

얼핏 복잡하고 머리 아픈 얘기일 것 같지만 장 지글러는 자기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기아에 대한 진실을 조곤조곤 알려준다. 책을 읽고 나면 기아와 가난이 경제발전과 세계화의 ‘부작용’ 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대로 진행됐음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 모로 세계에 대한 인식의 균형을 잡아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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