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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정도전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공산당 선언 첫 구절)
조선의 정치 시스템을 설계하고 만든 이는 '정도전'이라는 사상가입니다. 그는 왕권을 인정했지만, 왕권을 제한하고 왕이 아닌 신하가 중심이 되어 정치적 책임을 지는 정치 시스템을 만들었고, 조선에 도입하려고 했습니다. 왕이 총재라는 재상을 임명하고 총재가 정치를 총괄하여 정치적 책임을 지는 식으로. 정도전의 총재 정치는 조선 태조 이성계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성계는 막내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여 정도전의 구상이 실현되도록 도왔습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죠. 훗날 태종이 되는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었습니다. 결국은 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은 이방원의 손에 살해되고, 총재 정치 구상은 조선에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방원의 정도전의 흔적 지우기가 얼마나 철저한지, 지금까지도 정도전의 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정도전의 신원(명예) 복구가 정도전 사후 약 470년이 지난 고종 때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중종 때 기묘사화로 목숨을 잃은 조광조가 30여 년이 지난 뒤인 선조 때 신원이 복구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도전의 신원 복구가 얼마나 기나긴 시간이 걸린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고종 때의 권력자로 경복궁 중건을 위해서 정도전 신원 복구를 추진한 흥선대원군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정도전의 신원 복구는 조선 시대 내에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도전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정도전의 흔적은 조선 시대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정도전 자신이 마든 궁궐과 전각의 이름에, 한양의 사대문 이름에, 재상의 지위와 역할이 강조되고 왕권 국가이지만 비교적 대신들의 힘이 크고 언관의 활동이 폭넓게 보장된 정치 시스템 속에, 두 차례의 반정으로 임금을 몰아낸 반정 속에서 언뜻언뜻 내비치는 책임정치의 그림자 속에서. 정도전이라는 유령이 조선 시대를 계속 맴돌고 있었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