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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의 책방
  • 십만왕국
  • N. K. 제미신
  • 18,000원 (10%1,000)
  • 2024-10-18
  • : 235


2.십만왕국-N.K. 제미신



제게는 순정만화하면 잊을 수 없는 제목들이 있습니다. '들장미 소년 캔디'라거나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이 이름들이 떠오르면 동시에 함께 어떤 노래들이 떠오릅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와 '장미, 장미는 화사하게 피고 장미장미는 순결하게 지내~~' 같은 노래들. 캔디든 베르사이유의 장미든, 저에게는 순정만화의 대표작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나요? 제가 왜 갑자기 순정만화 이야기를 꺼내는지? 차근차근 제가 생각하는 바를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작가 이야기부터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N.K. 제미신 하면 떠오르는 건 '부서진 대지' 3부작입니다. 저에게 이 작품들은 세밀하고 정교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야기의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세 작품으로 3년 연속 휴고상을 수상하는 신화를 이룩했다는 찬사는 곁가지에 불과했고요. 조금 더 단순하게 말하면 '부서진 대지' 3부작의 서사는, 저에게 모녀가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모녀의 서사에 '세계의 구원'을 덧붙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뒤에 읽은 '위대한 도시들' 2부작은 현대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인들의 서사를 SF 판타지로 재구성한 느낌이었습니다. 미국을 구성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함을 판타지적인 다양함으로 보여주고 거기에 현대적인 빌런을 더한 서사로서. 

다시 <십만왕국>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아 근데 또다른 이야기를 해야할 거 같군요.^^;; N.K. 제미신의 데뷔작인 <십만왕국>이 나온 건 2011년입니다. <별에서 온 그대>가 나온 건, 2013년입니다. <도깨비>의 방영이 시작된 건 2016년이고요. 도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냐구요? ㅋㅋㅋ 일단 들어보세요. <별에서 온 그대>는 신적인 힘을 가진 외계인이 여성을 사랑하는 이야기입니다. <도깨비>는 신적인 존재인 도깨비의 사랑을 받는 여성이야기입니다. 이쯤 이야기하면 제가 왜 <십만왕국>을 썼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네, <십만왕국>은 신의 사랑을 받는 여성이야기입니다. <별에서 온 그대>나 <도깨비> 이전에,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진짜 신에게 사랑을 받는 여성이야기가 있었던 겁니다. <십만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십만왕국>을 읽으면서 저는 '부서진 대지' 3부작이나 '우리들의 도시' 2부작과는 다른 서사의 힘을 기시감처럼 느꼈습니다. 그 서사의 힘을 순정만화식 여성서사의 힘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이런 서사에는 삼각관계가 자석처럼 딸려오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늘도시의 하늘궁전에 와서, 역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아라메리 가문의 후계자를 둘러싼 다툼에 말려든 주인공 예이네를 삼각관계의 중심축인 사랑받는 여인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일종의 캔디 역할이죠. 다른 한축에는, 여인 옆에서 든든하게 버티면서 끊임없이 사랑을 베풀어주는 남성 역할이 있습니다. 일종의 안소니라고 할 수 있는 이 역할을 <십만왕국>에서는 '시에'가 맡습니다. 주신이자 빛의 신인 이템퍼스에게 패한 뒤에 이템퍼스를 믿는 아라메리 가문의 노예가 된 신들 중에서,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장난을 치는 신 시에는 예이네의 곁에서 꾸준히 버티며 사랑을 해주는 존재입니다. 반대편에는 매력 넘치지만 어딘가 위험한 풍모의 남성 역할이 있습니다. 테리우스 역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나하도스가 그 역할을 맡습니다. 이템퍼스와 함께 가장 강한 세신 중 한명인 나하도스는 밤의 군주이자 어둠의 신으로서 주신 이템퍼스에게 패한 뒤에 아라메리 가문의 노예로서 인간 형상을 한 채 하늘궁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강력한 매력을 뿜어내는 나하도스는 진짜 위험한 존재입니다. 매력적이고 사랑스럽지만 진짜 사랑을 하게 된다면 그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존재. 나하도스의 매력적이자만 위험한 면모는 소설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예이네는 나하도스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그를 사랑하면 죽을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피할 수 없죠. 결국 예이네는 죽음을 각오하고 나하도스와의 사랑을 하게 됩니다. 이 정도니까 제가 순정만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하지만 순정만화의 서사로만 이 소설이 이루어진 건 아닙니다. 다른 복잡한 여러 요소들이 어우러지며 이 소설을 구성합니다. 저는 단지 이 서사의 핵심축을 두 신과 한 여성의 삼각관계로 본 겁니다. 그리고 순정만화식 삼각관계에 덧붙여 또하나 중요한 요소가 더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인 예이네의 '각성'이라는 부분입니다. 소설이 시작할 때 예이네는 평범한 여성입니다. 소설의 이야기를 겪고 끝날 때 예이네는 각성한 존재가 됩니다. 저는 각성을 통한 성장이 순정만화식 연애와 함께 <십만왕국>의 가장 중요한 두 축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저에게 <십만왕국>은 순정만화식 연애소설과 각성을 통한 성장소설이라는 두 가지 서사 스타일을 판타지로서 합성해서 만들어낸 소설인 셈이죠.

읽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읽기 시작했으니 이제 멈출수가 없습니다. 저의 독서는 <무너진 왕국>과 <신들의 왕국>으로 이어질 예정입니다. 순정만화이든 성장서사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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