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고 기억하며 살아가는 일
빛방울 2025/06/2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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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도감
- 최현진
- 12,150원 (10%↓
670) - 2025-06-12
: 7,617
가장 떠올리기 어려우면서도 가장 삶과 가까운 주제가 있다면, 그건 죽음 아닐까.
그러니 많은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하는 것일 테고.
이야기로 마주하고 또 마주해도 쉬 가까워지지 않겠지만 도처에 깔린 죽음에 이렇게라도 다가가기 위해,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 앞에 자꾸 놓이는 것 아닐까.
어린 강산에게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누나의 죽음은, 아니 그 죽음을 빋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누구에겐들 그러하겠지. 쉽지 않아도 피할 수 없고,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문이다.
산이에게 그 문은 한번에 통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문도 아니며 매 순간 새롭게 불쑥불쑥 솟는 문 같다. 그 문을 하나하나 통과해 가는 사이 강산의 마음에선 무수한 일이 일어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스스로 알아차리기 위해선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마음에서 울리는 자신의 소리와 마음으로 들려오는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돌아가지 않고 통과하기 위한 방법일 테니.
강렬한 외부 자극만 파다한 때, 그 외부 자극으로만 집중을 쏟기 쉬운 시대이기에 마음의 소리에 기울이는 이런 잔잔한 이야기가 더욱 소중하다.
갑작스런 사고로 한 순간에 산이의 인생에서 사라져버린 누나 메아리.
하지만 사라졌다고 지워지지는 않는다는 걸, 이야기는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라졌어도 지워지지 않는, 지울 수 없는 존재와는 계속 함께 살아가는 길밖엔 없다는 걸. 이쳐럼 인생에는 사라지고도 남는 것들이 있다. 흔적, 추억, 기억,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총합인 사람.
산이에겐 누나와 함께할 ‘다음’도, ‘앞으로’나 ‘또’의 시간도 없지만, 여전히 남은 삶을 누나와 함께 살아간다.
어리고 약한 동생 산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누나 메아리가 했던 말, ”우리한테는 서로가 있어“는 그러므로 여전히 유효하다.
산이의 시점에서 쓰였으나 산이뿐 아니라, 딸의 죽음, 베프의 죽음, 같은 반 친구의 죽음을 겪은 이들이 고루 나온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처럼 유독 통과하기 힘든 어둔 터널이라면, 함께 걸어 주는 이가 더없이 소중함을 이야기 속의 연결고리들이 보여준다.
앞서 걷던 누나가 늘 이끌어 주던 길을, 이제 산이는 먼저 간 누나를 대신해 누나가 흘려 놓는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으며 다시 걷는다. 누나가 하고 싶었고 해야 했던 그러나 못다한 일을 하나씩 하나씩 해나간다. 그것이 산이만의 의식이다. 이별하는 방식이고 그럼에도 기억하는 방식이며 그러므로 살아가는 방식이다.
아픔을 아파하기까지
슬픔을 슬퍼하기까지
찬찬히 기다려주는 한없이 따뜻한 동화.
“오랫동안 죽음이라는 것을 완전한 이별로 생각해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랑한 것들은 어떤 형태나 순간으로 꼭 되돌아온다는 것을.” -작가의 말 중.
-서평단 참여로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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