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강의”를 약 7일간에 걸쳐서 보았다면 “새로운 정신분석강의”는 2일만에 모두 보았습니다. 이 책은 “정신분석강의”의 속편에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프로이드가 자신이 15년 전에 행했던 “정신분석강의”예서 펼쳐놓은 지평을 넓히고 모호했던 부분은 명확히 하고 그 스스로 오류라고 판단한 부분을 과감히 수정한 것입니다. 이 책은 어찌보면 프로이트 이론의 최종 결정판이라고 보아도 관계없을 듯 합니다. 또한 마지막 강의에서는 심리학자로서만이 아니라 사상가, 철학자로서의 면모가 돋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종교에 관한 그의 언급에서 그와 같은 면모를 강하게 풍깁니다. 놀라운 것은 이 책을 저술할 당시의 프로이트의 나이가 76세라는 것입니다. 그 나이에 자신의 이론을 수정하고 사실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보인다는 것은 평범한 학자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비관주의적 이성주의자로서의 면모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주요 수정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기존의 “정신분석강의”에서는 ‘억압이 불안을 낳는다’고 주장했습니다만 이 책에서는 ‘불안이 억업을 낳는다’는 것으로 수정됩니다.
2.정신영역의 주요 영역, 지역이었던 의식과 무의식의 대립이라는 부분이 정신의 주요 구성요소로서 이드, 자아, 초자아의 구분으로 변경됩니다. 이는 자아와 초자아의 상당부분이 그 원천을 무의식속에 가지고 있다는 언명에서도 드러납니다.
우리가 프로이드에 대하여 찬성을 하든 반대를 하든 20세기 이후 사상과 지식을 언급할 때 프로이드를 제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인간장신의 무의식 측면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그것을 인문학의 각 분야로 확대시킨 위대한 학자입니다. 또한 인간 정신의 본성에 대하여 우려하고 회의적이나 그러나 인간이 의지할 것은 그래도 이성과 과학 뿐이라는 결론을 내린 비관적인 이성주의자이자 계몽주의자였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주요 이론이 나온지 이제 어언 100년입니다. 그동안 물질문명은 엄청난 변화 혹은 발전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정신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프로이드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철학자의 말대로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 몇 사람이 있습니다. 헤겔, 마르크스, 프로이드 등 입니다.
문명의 발달에 있어 정신과 물질이 동반되지 못할 때 인간정신은 프로이드식의 ‘퇴행’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