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사막과 숲 사이
  • 진주
  • 장혜령
  • 13,500원 (10%750)
  • 2019-12-27
  • : 866

*

여기,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


가둘 수 없는 것의 안부를 묻는 삶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아이가 어릴 적부터 수배중이거나 투옥 중이었으므로 늘 부재중이었다. 아버지의 동지들은 형제라는 이름으로 함께였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의 동지였다. 그녀는 남편의 부재 속에서 옷을 고치거나 지으며 홀로 아이를 키웠다. 아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아버지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족은 빛과 바람을 빼앗긴 삶을 살아야 했다. 아버지는 감옥에서, 어머니와 아이는 단칸셋방에서. “빛은 잘 들어옵니까/바람은 불어옵니까/ (……) //언제나 이상한 일이었습니다./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우리가 죄수에게 묻는 질문이 동일하다는 것은./우리가 가둘 수 없는 것의 안부를 묻는 일은. (『진주』, 267쪽)”


빛과 바람을 빼앗긴 대신 가족이 얻은 것은 비밀과 가난과 불안이었다. 가난과 불안은 비밀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것과 아이의 것은 달랐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비밀은 ‘우리’가 함께 지켜야 하는 것이었지만 아이의 비밀은 오직 혼자서 간직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계에서는 진실과 거짓을 나눌 수 있었지만 아이의 세계에서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었다. 학기 초 가정환경조사서에 적힌 항목을 발표하는 시간. 아이는 아버지가 나라를 위한 봉사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진실이자 거짓이며 진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아이들의 소란에 선생님은 나중에 말해주겠다고 말한 뒤 그 사실을 잊는다.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불 꺼진 텅 빈 교실. 창밖에는 “새들이 일제히 열을 지어 날아가고 있다. (……) 가장 느리고 어린 새 한 마리가 대열을 벗어나 날고 있다. 어린 새는, 무리로 합류하기 위해 서두른다.”(160쪽) 어린 새는 그 후 몇 십 년 동안 그곳에 앉아 누군가가 진실을 말해주기를, 자신이 그 비밀을 말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린 새에게는 비밀조차 적지 못하는 수첩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선물했으나 돌려받은 것이었다. 경찰에게 붙잡혔을 때 “아버지가 한꺼번에 삼켜버릴”(93쪽) 수 없는 수첩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돌려받은 “수첩 안에 글자를 적고 또 적는다(94쪽).” “한 번 놓치면 그 장면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 두렵기”(93쪽) 때문에 “문자 속에서 그 시간 그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날 때까지” 적는다. 경찰이 갑자기 들이닥쳐 “그 수첩을 읽는다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울 것”(94쪽)이므로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94쪽).” 그래서 아이는 수첩을 숨길 상자를 만든다. 상자를 하나 만들고 두 개를 만든다. 세 개, 네 개, …… 아홉 개, 열 개를 만든다. 그렇게 꼭꼭 숨겨놓아도 마지막 상자는 언젠가는 열릴 것이고 수첩을 빼앗기기 전에 삼켜버릴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때부터 그 수첩에는 “어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만”(96쪽)이 적힌다. 아이가 불 꺼진 텅 빈 교실에서 운동장으로 나오기까지, 눈 쌓인 나뭇가지에 멈춰 있던 어린 새가 공중으로 날아오르기까지, “비밀은 당신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증거입니다”(87쪽)라고 선언하듯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수첩에도 적히지 못한 비밀은 마치 유령의 혼불처럼 아이의 몸속에 살아 있었다.


비로소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시간은 멈춰 있었다. 적어도 딸에게는 그랬다. 아버지는 딸에게 공집합을 가르치지만 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 수의 세계에”(12쪽) 있었다. 그에게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시간”(17쪽)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간이 끝나고 동지들은 제각각 자신들의 갈 길을 찾을 때 아버지는 처음으로 “개인적인 삶”(48쪽)으로 내던져진다. 그는 이제부터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평생 한 번도 그런 삶을 살아본 적이 없는 그는 집에 돌아왔어도 돌아온 적이 없다. 여전히 그날의 골목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딸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절대로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42쪽)고 아버지는 여전히 뒷모습으로 말한다. 정권 교체 후 대법원이 긴급조치를 위헌으로 선고하면서 잇따라 관련 사건에 대한 무죄판결이 나왔지만 몇 년 간 달라진 것은 없다. 어느 날, 딸은 자신이 국민학교 때부터 쓰던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외국어 문장을 공부하던 한 남자의 뒷모습에서 아버지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172쪽)는 것을 본다. 그래서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176쪽)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사라져, 다시 돌이킬 수 없기 전에(176쪽).”


딸은 어릴 적 수감된 아버지를 만나러 갔던 도시, 진주를 다시 찾는다. 그 여행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시간의 이동이다. 과거로의 여행. 딸의 미래는 아버지의 과거라는 역을 거쳐야만 당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여행은 아버지를 찾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딸의 현재를 찾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진주에서, 딸은 수감 중이던 아버지를 만난 날을 회상하지만 어디에서도 그날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이상하게도 고향이라는 단어를 생각”(207쪽)한다. 그녀는 그곳을 다시 찾겠다고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그곳에 닿을 것임을, 닿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219쪽)으면서도 교도소로 가는 버스에 타고 있는 그 순간에도, 버스에서 내려 정문 옆 접견대기실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언제든 다시 발길을 돌릴 수 있음을 상기시키려 애쓴다. 결국 “그곳에 닿을 것임을” 알았던 것처럼 그녀는 그것이 “처음부터 불가능한 여행”(223쪽)이었음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새로운 발견까지 예감하지는 못했다. 첫 번째 발견은 “감옥이 있는 작은 도시”(213쪽)로서 “특별한 것 없는”(213쪽) 곳으로서 진주를 보게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그녀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발견은 “시장 안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시가를 빠져나와” 어느 동네를 걷고 있을 때였다. “밥 먹으러 들어온나”(224쪽) 하고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에 “숨차게 골목길을 달려 (……) 사라져가는 조그마한 여자아이”(224쪽)를 본 것이었다.


여자아이는 수십 년 전 서울 외곽의 어느 동네 골목길을 달리고 있었다. “막다른 골목의 끝까지 눈을 감고도 달렸”(226쪽)다. 더 이상 여자아이가 아닌 여자아이는 진주의 한 골목에서, 재개발로 하나둘씩 철거되는 집들 사이 “마지막까지 동네를 떠나지 못하고 남은 몇 가구 중 하나”(227쪽)인 자신의 옛집을 발견한다. 그리고 아직도 부서져가는 집 안에 있을 여자아이가 급하게 벗어놓고 들어간 신발을 발견한다. 자신에게 비밀을 안겨준, 특별할 것 없는 작은 도시에서. 아이는 다시 달린다. “부서져가고 있”지만 “두려운 것이 있지만”(227쪽) 그래도 최소한 달릴 수는 있다.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들은 이제 꿈속 운동회에서 달리지 않아도 된다. 아이는 어둠속에서도 눈을 뜨고 달릴 수 있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아이는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매일같이 깨어나고 있었다. 비로소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빛과 바람과 목소리의 공간


“당신 뒤에 딸도 받아쓰기를 했습니다”(123쪽)라고, 어른이 된 아이는 쓴다. 어릴 적 살던 이모네 집까지 찾아와 감시하던 사복경찰. “어느새 가족처럼 익숙해진 그 남자”(148쪽)는 “이 순간 이 시간을 살아 이겨내기 위해 공부를 하는”(147쪽) 아이의 등뒤에 서서 문장들을 불러준다. 아이는 경찰이 밉고 싫다. 공책을 덮자 다행히 개들이 짖고 사촌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남자는 돌아간다. 이것이 딸이 경험한 최초의 받아쓰기였는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작가는 이것을 외부로부터 강제된 고문과 회유와 협박에서 비롯된 아버지의, 아버지들의 받아쓰기에 대항하는 경험으로 쓰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딸의 받아쓰기는 이 책의 원고를 쓰며 시작되었다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허깨비처럼” “유령처럼” “관성처럼”(279쪽) 살고 있던 그녀 안의 “누군가가 어느 날부터 그러한 삶을 거부하기 시작했”(279쪽)고 그 사람은 진주로 가자고 한다. 진주에 다녀온 뒤로 그녀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 글쓰기는 자기 안의 “그 사람이 정신 나간 듯 시종 뭔가를 중얼거리는”(280쪽) 목소리를 받아쓰는 일이다. <작가의 말>에서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그 사람은 삼십여 년 넘는 시간 동안, 누구에게도 꺼낼 수 없었던 이야기를 꺼내고자 했다.”(280쪽)


어떤 사람이 자기 내부에서 들리는 목소리와 연결될 때, 그 목소리가 외부를 향해 발신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 사람만의 이야기,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 이상 외면할 수도 없었고 외면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두렵지만 더는 두려움에 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우연처럼 “그 사람의 긴 이야기를 견뎌줄 조용한 장소”(280쪽)가 작업실이라는 형태로 눈앞에 나타나자, 보이지 않는 곳에 “두려움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기 위해 필요한” “하나의 운동장“(280쪽)을 만들었다. 그곳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일어나며 앞으로 나아가며 원고를 완성했다. 이로써 그녀는 다시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빛이 내려오는 공간을 갖게 됐다. 그곳에서는 바람이 불어오고 자신의 목소리가 온전히 울린다. 빛은 시간의 일이고 바람은 공간의 일이며 소리는 시간과 공간의 협업으로 비로소 들리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글이 “가닿기 위해” 쓰였다고 말한다. 원고가 책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이 이야기가 책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을 더 믿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고도 했다. 이 글이 읽히고 있는 지금, 그녀의 믿음대로 읽는 사람의 수만큼 새로운 장場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곳은 매우 개인적인 동시에 타자의 존재를 믿는 공간일 것이다. 나는 그 공간에 잠시 머물며 “내가 걷는 길을 누군가 앞서 걸었다는 생각에 미치면 이상하게도 위로받는 마음이었고, 그 힘으로 견디며 조금씩 써나갈 수 있”(293쪽)을 것이라 믿게 되었다. 오래 전부터 내 안에도 약간은 정신 나간 듯이 쉬지 않고 중얼거리는 여자아이가 살고 있으므로.


『진주』를 읽기 전 나는 이미 파편이 되어버린 과거의 흔적을 하나로 꿰어야만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증명이라도 하듯이 나의 이야기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럴 때마다 연결되었다 믿었던 내부의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다시 그 목소리가 찾아와주기를 기다렸다. 기다림 끝에 다시 그가 찾아오면 또 같은 잘못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과거의 기억은 그녀의 말처럼 “도처에 있기에”(17쪽) 아예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녀가 자신이 더듬은 기억의 흔적을 책에 그대로 싣기로 한 결정은 나에게 놀라우면서도 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졌다. 아버지들이 썼을 대자보, 가정환경조사서의 항목들, 분신한 어느 40대 남자에 관한 인터뷰 녹취록, 어린 그녀가 사인펜으로 그린 파리행 열차티켓과 어머니와 함께 그렸을 하얀 종이 위 손과 발의 윤곽. 어쩌면 수집물로 남았을 흔적들을 역사의 기록물로 확고히 위치시킨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진주』 속에서 그녀는 자기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끊임없이 말해주었다. 그래서 나만의 불가능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 리뷰로나마 작은 응답을 보내고 싶었다. 나 역시 언젠가 나의 이야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닿으리라 믿으며.


“진심으로 말한다는 것은 그만큼의 강도로 누군가 듣고 있음을 믿음으로써 가능하다. 진심으로 믿는다는 것 역시 그와 같은 강도로 상대가 말하고 있음을 믿음으로써 가능하다. 화자는 청자를 향해 말함으로써, 청자는 화자를 향해 귀를 기울임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나타나게 한다. 장場은 그렇게 생겨나며 그때 표현은 표현으로서 성립된다.”(287~288쪽)


“나의 이야기는 당신을 향해 쓰이고, 당신에게 가닿음으로써 비로소 나의 이야기가 된다. 이제 그것을 알 것 같다.”(294쪽)

 


*** 


전동차 안 출입문 가까이

한 남자가 뒷모습을 보이며 서 있다


머리 위

쏟아지는 오렌지의 빛깔


덜컹,

시간이 출발해

아득한

철교 아래로


흐른다

골목들로

단칸방으로

교회로

감옥과

테이블 위와

바다로


바다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며 파도가 묻는다.


“아버지.

나의 피는

검게 수직으로 고동칩니까.”


뒷모습은 여전히 말이 없고


창밖

가지 위에서

상공으로

흰 새는 날아오른다


태초의 날갯짓처럼

태초의 소리처럼


나뭇가지에 쌓인 눈 떨어지면

새들은 농담처럼 지저귀고

아버지는 뒤돌아 휘파람을 분다


그사이

새시 문 안의 어두운 방들

어머니

어머니들


걷는 발이 지나는 골목마다

달리는 발이 지나는 길 위에

자라나는 손발이 뻗어나가는 순간에


기도하는 손과

밥을 짓는 손과

옷을 짓는 손이 있었다


마침내 눈 쌓인 운동장


걸을 수 있는 발이 있었으나

달리는 것은 본래 아이들의 일임을 알았기에

그들은 말없이


커버린 손바닥 발바닥 자국을 듣고

바람을 가르는 웃음소리를 보고

겨울눈 자라는 모습을

가만가만 만진다


어머니,

지금 내 이마에 내리는

이 빛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


여기,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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