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이 긴 이야기를 다 해낸 작가의 인내와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님을 알면서도그 이야기를 읽고 리뷰를 쓰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적은 없었다.한 사람의 소멸, 어둠속에 자신을 방치할 수밖에 없던 시간, 그럼에도 자신을 지켜낸 사람들,구로와 인천과 호찌민 같은 공간들, 영화와 극장과 시네마 키드라는 단어들,책을 읽는 동안 며칠 머물렀던 삿뽀로의 호텔까지.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수많은 설정 탓에, 혹은 덕분에, 읽는 내내 살얼음판을 걸어야 했다.그러다가, 살얼음판도 어차피 내가 만든 것이니 그럴 바에야 지뢰게임으로 만들자 싶었다.처음엔 무작위로, 나중엔 치밀하게 클릭하다가 지뢰가 있는 칸을 터뜨리면다음 판을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 쉬었다 가도 될 테니까.살얼음판을 깨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걷기보다는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그래서 터지는 대로 터져주었다. 여기저기, 빵! 빵!그럴 때마다 멈췄다가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는 얘기다.멈춰선 건 대부분 슬픈 대목이었는데, 김금희가 그리는 슬픈 장면은, 눈물이 치밀어오를 듯해서 아예 체념하고 울기를 선택하면 정작 눈물은 나지 않고 끅끅 소리만 올라오는 이상한 울음을 동반했다.
눈물이라도 펑펑 쏟아졌으면 좋았을걸, 평소엔 울기도 잘 우는 내가 그렇게밖에 울지 못하다니 억울하다 생각하면서다음 문장을 읽으면 작가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태연하게 하던 얘기를 계속하는 것이었다.언제라도 슬퍼질 준비가 되어 있는 얼굴로 웃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의 곁을 떠나지 못하듯, 그렇게 <경애의 마음>을 끝까지 읽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누군가를 걱정하고 살피고 있다.경애와 상수는 은총을, 은총은 경애와 상수를, 경애의 엄마는 경애를, 조선생은 딸 영서를, 헬레나는 동생 에일린을.그렇게 걱정하고 살피는 마음이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 곧 경애의 마음이 된다.
그런 경애의 마음이 내 앞으로 배송되어 온 가제본이라는 종이뭉치에 한가득 들어 있었다.책이 액체나 기체라면 그 마음이 가득 차서 여는 순간 넘쳐 흐를 만큼.다 읽고 나니 그 마음이 훤히 다 보일 것 같아 슬픈 기쁨이 벅차 오를 만큼.
그런데 왜 평소엔 보이지 않을까, 그 마음들은.왜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을까, 왜 꼭꼭 숨어서 어떤 사람들을 절망하게 만들까.왜 늦기 직전에 나타나는 걸까, 혹은 왜 다 늦게, 모든 것이 끝난 뒤에 나타나는 걸까.
마지막 단락을 읽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첫 단락을 읽고 나서,작가가 이 소설을 쓴 이유-라는 걸 특정할 수 있다면-를 감히 알 것도 같았다.김금희는 마치, 그런 마음들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바로 여기에 있다고,'폐기해서도 안 되고 폐기할 수도 없는' 마음들이 분명 있다고, 나는 보았다고, 그런 마음들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까지 써왔고, 앞으로도 계속 쓸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런 작가가 있어 든든하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