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히 오래 된 밀란 쿤데라의 책 가운데서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이라는 책을 뽑아 들었고, 첫 장에서 이 드니 디드로의 작품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해석과 감상을 읽게 되었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의 오마주인 듯 보이는 작품에 대한 궁금증으로 찾아 읽게 되었고, 이에 대한 밀란 쿤데라의 해석을 『소설의 기술』에서도 접했다. 그리고 드니 디드로에 대한 오마주라고 했던 밀란 쿤데라의 『자크와 그의 주인』을 읽었다. 우연히 연결 독서를 하게 되었고 예기치 않은 기쁨을 맛보았다.
밀란 쿤데라가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처음 읽었을 때, “성찰이 일화와 나란히 펼쳐지고, 한 이야기가 다른 한 이야기를 감싸는, 대담하게 규칙을 벗어나는 그 풍요로움에 매료되어, 사건의 일치라는 규칙을 조소하는 작문의 그 자유에 매료되어” 그는 이렇게 자문해 보았다고 한다. “이 멋진 무질서는 정교하게 계산된, 훌륭한 구성 덕택일까, 아니면 순수한 즉흥의 도취 덕택일까?” 그리고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여기서 우세한 것은 즉흥이다.”라고 말한다. 이 “완벽하게 계산되고, 헤아려지고 미리 계획되었을 어떤 구성의 가능성이 이 도취된 즉흥 속에 내포되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쟈크와 그의 주인』은 『돈 키호테』의 변주다. 『돈 키호테』에서 주로 돈 키호테가 말을 많이 하고, 고난을 당하는 쪽은 산초 판사다. 기사 문학을 많이 읽은 돈 키호테는 현실과 문학을 구분하지 못하고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며 환상 속에 산다. 산초 판사는 어리숙하고 무식한 농부이며, 그가 목숨이 위험한 상황 가운데 빠지면서도 돈 키호테를 따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하게 만든다. 우스꽝스런 그들의 모험 이야기 배후에는 세르반테스의 비판의식이 담겨 있다.
16~~17세기 ‘레콩키스타(국토회복운동)’이 끝나고 종교재판소의 수도사들은 무슬림이나 이단을 적발하고 처벌했다. 더 나아가 민간의 풍속과 사상과 도덕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파밀리아레스(Familiares)'라 불리는 평신도 밀고자와 비밀 정보원들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했으며, 수도원은 이 거대한 감시망의 중심에 있었다. 돈 키호테가 소장하고 있던 책(기사문학)을 신부가 분류해 없애는 장면도 그런 현실을 풍자하는 것이다.
돈키호테의 방랑 중 만나는 베네딕토 수도사들은 당시 스페인 독자들에게 종교재판소를 떠올리게 했다. 그 수도사들에게 광기를 보이는 돈 키호테의 모습은 신랄한 풍자로 다가왔을 것이다. 한편, 산초 판사가 돈키호테의 요구에 거부 없이 따라나서는 모습이나, 돈 키호테의 광기로 인해 고초를 겪는 모습에서 당시 신분 사회의 권력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미치광이 귀족이지만 산초는 그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고, 주인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보호를 하려 하지만 주도적으로 무엇을 할 수는 없다. 그 대신 놀림감이 되고 부상을 당한다.
드니 디드로의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은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비틈이고 변주다. 자크의 믿는 바에 따르면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운명이다. 자크의 표현대로 하자면 “저기 높은 곳에 쓰인대로”이다. 표면적으로 “저기 높은 곳에 쓰인 대로” 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희곡 대본을 의미한다. 이 희곡의 많은 부분에서 작가의 말이 등장한다. 이 희곡에서 권력은 작가에게 있다. 작가의 글에 의해 그들의 운명이 정해진다. 자크는 어떤 사건의 단계(발단……결말)에서 “저기 높은 곳에 쓰인대로” 된 일이라고 말한다.
여러 층위의 이야기가 병행되는데 자크와 주인의 방랑, 그들과 그들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회상 혹은 소문), 그리고 작가의 말이다. 『돈 키호테』에서와 달리 자크는 그의 주인보다 말을 많이 한다. 그리고 게으르고 어리석은 주인을 대신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주인은 자크에게 감사를 표하지는 않는다. 자크는 자신이 주인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알고 있지만 어차피 그것도 “저기 높은 곳에 쓰여진 대로” 된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크는 그렇게 운명, 작가의 권력에 순응하는 듯하지만, 많은 경우 주도적인 행동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주인과의 관계에서도 주인에게 “제가 나리께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저기 높은 곳에 씌어 있는 한, 또 나리께서 저 없이 지낼 수 없다는 걸 제가 알고 느끼는 한, 필요할 때는 언제나 이 이점을 남용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주인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이다. 그는 주인과 종이라는 불평등하고 억압적 관계임에도 결단하고 행동하는 데 자유롭다. 사회 구조와 달리 실천적 자유를 누림으로 그 구조(계급)를 전복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높은 곳에 있는 작가의 권력도 뛰어넘는다. 많은 분량을 할애하며 작가는 사이사이 말을 하며 개입한다. 자크에 대한 평을 하기도 하고, 인물들의 말과 행동, 감정을 설명한다. 말로는 작가의 권력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자크는 그 권력관계를 전복시킨다. 작가는 그의 글 역시 자크에게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처럼 표현한다.
“독자여, 내가 여기서 하는 이야기는 모두 자크에게 들은 것이다.(259p)”
자크는 말하기를 좋아한다.
작가는 말하기를 그와 같은 자들이 비천함에서 끌려나와 연단에 서기만 하면 갑자기 흥미로운 사람으로 변모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자크가 말한 것을 작가가 인용하며 전한다.
“민중은 전혀 비인간적이지 않다. 민중은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이 모여든 사형대에서 그 불행한 사람을 법의 손아귀로부터 끄집어내려 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목격한 장면을 파리 교외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이야기하려고 그레브 광장으로 가는 것이다. 그 장면이 어떤가는 별로 중요치 않다. 다만 그가 하나의 역할을 하기만 하면 된다. 즉 이웃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자신의 말을 듣게 하기만 하면 된다. 거리에 재미있는 축제를 열어 봐라. 그러면 당신은 처형 장소가 텅 빈 것을 볼 테니. 민중은 구경거리에 열광하며 몰려든다. 그들은 그걸 즐기는 동안 재미있어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하는 이야기에 더욱 재미있어 한다. 민중이 분노하면 무섭지만 그 분노는 오래가지 않는다. 그들의 비참한 생활이 그들을 관대하게 만든 것이다. 구경거리를 보러가서 끔찍한 장면이 나오면 눈을 돌리고 마음이 울적해져 집에 돌아올 때는 모두 눈물을 흘린다. 독자여, 내가 여기서 하는 이야기는 모두 자크에게 들은 것이다.(258~259p)”
이렇게 보면, 자크는 철학자다. 자신을 지배하려고 하는 모든 권력을 거부하고 전복시키려 한다. 그의 자유로움은 자연스럽게 몸에 체화되어 있는 듯 보인다. 작가의 권력으로부터 등장인물과 독자를 해방시키려하는 시도를 한다. 작가와 인물들 간의 갈등은 플롯, 정해진 기법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당신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호라티우스, 비다, 르 보쉬의 규칙을 위반했소.(230P)”
이들은 시학이나 서사시에 대한 글을 쓴 사람들이다. 희곡의 규칙을 벗어난 인물의 행동에 대해 논하는 두 인물의 대화에서 엿볼 수 있다.
밀란 쿤데라의 변주 『자크와 그의 주인』에 이르면 훨씬 간결해지고 말 수가 적어진다. 드니 디드로에게 바치는 3막짜리 오마주라고 부제가 달려 있다. 드니 디드로의 작품에서 나타난 구조는 3개의 무대로 그려진다. 작가와 자크 그리고 그의 주인과의 사회적 구조는 높은 무대와 중간 그리고 낮은 무대로 이루어지며, 이들의 대사와 연기는 교차로 병행하며 진행된다. 시각정으로 그려진 그들의 권력 관계는 대사에서는 이미 그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물들은 그 무대를 내려오기도 오르기도 한다. 대사나 이야기의 진행 역시 간결하고 명료한 것처럼 보인다. 드니 디드로의 작품에서 통쾌한 복수가 있는 여관 여주인의 후작의 사랑 이야기는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서는 자크의 사랑이야기와 주인의 사랑이야기가 뒤섞여들어간다. 누가 선하고 누가 비난 받을 사람인지 판단 할 수 없게 한다.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 위계, 옳음의 문제를 각자의 생각에 맡긴다. 메시지를 전하는 중요한 대화가 3막 6장에 등장한다.
“주인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아느냐?
자크: 누구도 알지 못하죠
……
자크: 인류가 태곳적부터 알아 온 계략이죠. 어느 쪽으로 가도 앞입니다.(135P)“
17세기에서 18세기로 그리고 20세기로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철학의 관심과 주제는 달라져 왔다. 스페인의 인문주의 시대로부터 계몽주의 시대로 이데올로기 시대의 허무주의로 변화했다. 주제는 개인의 존재 문제로 좁혀지고 판단과 선택의 옳음은 개인에게 맡겨진다. 문학도 형식과 내용의 변화와 함께 그 시대사조를 반영하는 메시지 역시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