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로이스 로리의 『The Giver(기억전달자)』를 원서로 읽고 영어로 토론할 때의 일이다. 소설의 내용 중 각 가정에 잘 맞는 아기를 배정해주고, 재능에 따라 직업을 정해주는 것에 대해, 어떤 회원이 convenient라는 단어를 써가며 편리하고 이상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인생에서 선택의 순간마다 확신 없었던 때와 혈육이라 해도 항상 관계가 좋은 것은 아닌 경우를 예로 들며, 차라리 완벽한 시스템이 있다면 가족과 직업 같은 것들을 정해주는 것도 좋겠다고 말했었다. 그때는 웃으면서 지나갔는데, 돌이켜 보면 동의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그렇게 정해진 것들이 나에게 완벽하게 잘 맞는다 하더라도 불완전한 인간이 거기에 만족하며 살까? 만족할 수 없기에 나쁜 기억이나 욕망을 잠재우는 약을 복용해야만 할 것이다. 그 소설에서 그려지는 사회는 결코 유토피아라고 말할 수 없음을 우리는 동의한다. 순간순간 스치듯, 희미한 수치심과 부러움을 느끼는 인물들과 강요당한 희생으로부터 도망치는 주인공에게서 잠재울 수 없는 인간 존재의 욕망을 발견한다. 충돌하는 공동체와 개인, 개인과 개인의 욕망은 그 어떤 사회에서도 모두를 만족시키는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욕망은 원래 증식하고” 충돌하기에.
『이끼숲』을 읽으며 『기억 전달자』를 떠올렸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를 상상하며 디스토피아를 생각하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이끼숲』은 막내가 올해 읽은 소설들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추천한 작품이다. 작가 천선란은 딸들이 좋아해서 소장하는데 나는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다. 그동안 “엄마, 읽어봤어?”하고 물어보는 딸에게 “아직!” 이라는 대답을 하곤 했었다. 지하철에서 문득 생각이 나서 폰을 열고 구독형 전자책으로 읽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는 기운을 느끼고 종이책으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주문했다. 마음이나 정서를 전하는 표현이 탁월하게 아름다웠다. 동시에 아포리즘처럼 가슴을 두드리는 문장들도 있었다. 작가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 안에 이미 있는 어둠이다. 현실을 Si-Fi로 표현했을 뿐, 현실과 소설이 다르지 않다.
지상의 식물들이 사라지고 미래의 지구인들은 지하에 도시를 건설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마르코, 은희, 의주, 유오, 소마, 치유키, 톨가 는 청년들이다. 그들의 직업은 학업 성적에 따라 선택의 범위가 정해져 있었다. 경비원, 기계실 정비공, 건설사 직원, 통신국 직원, 의사, 씨앗 저장고 지킴이. 그들의 욕망과 통증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지상의 풍경을 인공으로 조성해놓은 세계에서 지상에서 누릴 수 있던 즐거움이 모두에게 허락되지는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미식은 관계없는 이야기다. 한때 “인간이 지상에 살던 시절” 음식이 인간에게 최고의 사치품이었던 시절을 이야기할 뿐이다. 지하 도시에서 음식은 그들에게 생명 유지를 위한 연료일 뿐이다. ‘VA2X’는 빼먹지 않고 매일 먹어야 하는데, 복용을 중단하게 되면 환각, 정신분열, 우울증 따위의 정신질환과 뼈가 삭는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마도 햇빛을 볼 수 없는 환경과 관련 있는 듯하다. 그런 증상을 앓는 자들은 정신재활원으로 실려 간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
마르코는 ‘클론’ 제작실 건물 경비 일을 하고 있다. 그가 은희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녀의 목소리와 노래 때문이었다. 마르코는 우연히 아바타에게 목소리를 파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비싼 값에 목소리를 완전히 넘기고 발성기관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불안감과 긴장감을 전한다. 지문과 같은 목소리는 한 개인의 유일성을 나타낸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매매되는 장기(臟器)와 목소리 중 어떤 것이 더 존재에 타격을 줄까?
“세상에 하나뿐인 아바타한테는 세상에 하나뿐인 목소리가 필요하니까, 목소리는 전부 다 다르잖아. 그러니까 원하는 목소리를 돈을 주고 빼는 거지.(32p)”
가상세계에서도 “현실의 본인처럼, 목소리도, 외모도 세상에 하나뿐이기를 원하는(33p)” 사람들이 그 수요자다. 그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사람들과 목소리를 팔아야 할 만큼 위기에 몰린 사람들이 있다. 이 세계 역시 자본이 가르는 계급이 존재함을 시사한다.
경비원 일을 하면서 여가시간에 B45에 있는 재즈바에서 노래하는 은희의 삶은 녹녹치 않다. 그 재즈바에서 마르코에게 은희가 시켜준 음료의 이름은 ‘바다눈’이다. 바다에 눈이 내리는 것은 생물의 사체에서 나오는 미생물이 눈처럼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음료에 이런 이름을 붙이는 지하도시 사람들은 유미주의와 허무주의적 감수성을 갖고 있다. 내일이 없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다음에 올 시간을 기다리며 설레게 하는 것은 사랑뿐이다. 결말이 어떻든지 그 순간이 아름다운 것은 시대불문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 주거 지역, 직업, 출입할 수 있는 장소 등의 규칙과 질서는 자본과 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인구 정책 때문에 존재가 없는 의조와 같은 사람들도 있다. 의조는 의주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의주가 선택되면서 유기되어 환기구 안쪽에서만 살아간다.
마르코, 의주, 치유키, 유오, 소마, 치유키, 톨가.
엇갈림과 상실의 어둠 속에서 이들의 사랑은 가슴 뻐근하게 아프고 벅차오르게 아름답다.
“나는 그걸 먼발치에서 바라봤는데도 마치 아주 가까이서 지켜본 것처럼, 너와 나란히 서서 꽃이 쓰러지지 않길 빠랐던 것처럼 떠올라. 그럼 나는 기억을 주무르게 돼.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랑한다고 끌어안아.(138p)”
유오는 나무에 대한 특별한 관심 때문에 지상탐사대에 들어가길 원하지만 좌절되자 땅속으로 뻗은 뿌리라도 만나기 위해 위험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택한다. 지하에서 하는 작업이므로 폭발의 위험과 상해와 죽음의 위험이 있다. 혹시 사고로 잃어버릴지도 모를 신체부위를 대체하기 위해 클론을 생산한다. 아이러니 하다. 지상으로 오르려는 욕망을 대신해서 땅을 파내려가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신체 훼손, 절단, 괴사 등의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의 클론을 준비하는 것이. 클론은 예방할 수 없는 사고의 사후대책에 불과하다. 다른 몸이 필요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8월 17일 13시 11분 23초경 T7-033구역 지반 붕괴로 노동자 한 명 사망. 그 줄에는 그 애의 이름도, 그 애의 삶도, 그 애가 알고 있던 식물에 관한 지식도, 그 애의 그날 저녁 약속도 담기지 않는다. 그런 것의 집합이 그 애이지만 죽음은 간략하고 명료하다. 멀리서 보면, 별것 아닌 한 줄이 된다. 그 애를 사랑했던 사람만이 그 한 줄을 뜯어 먹고 살 것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 선과 선 사이에 촘촘히 박힌 삶을 그리워하면서.(230p)”
폭파사고로 인한 유오의 죽음, 몸의 상실은 소마에게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가져왔다. 유오의 클론이 폐기될 것이란 소식을 듣고 제작실에서 ‘그것’을 꺼내 업고 지상으로 도망간다. 소마(σῶμα, soma)는 ‘몸(육체)’을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몸(소마)’이 ‘몸(유오의 클론)’을 업고 있는 이미지에서 작가는 어떤 의미를 전하려 했을까? ‘몸은 어떻게 존재가 되는가?’라는 질문을 하고 있을까? “지금 우리의 삶은 예전 문명으로부터 떨어진 꽃처럼 느껴진다.(147p)”고 했던 소마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소마는 지하세계의 입구가 있는 유리돔(온실)까지 무사히 도착한다. 의외로 그 마지막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냥 손잡이만 돌려서 열고 나오면 된다. 소마에게는 문을 열고 나가면 죽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나와 소마가 마주한 지상 세계는 이끼로 덮여 있었다. 이끼는 맑고 깨끗한 공기가 존재하는 것을 알리는 지표식물 아니었던가! 그 이끼가 끝나는 곳에 숲이 이어지고! 어쩌면 인간이 없는 지상의 세계에서는 식물 생태계의 천이가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 ‘몸(클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끼가 묻은 그 몸에 대해 짧은 장면으로 결말을 보여주지만 내게는 열린 결말로 다가왔다.
지하세계를 지배하는 권력과 시스템은 두려움과 자본이다. 그 세계를 벗어나 지상으로 나가면 죽음뿐이라는 두려움은 그들을 권력의 지시에 순응하게 한다.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은 정신개조를 받거나 지워진 존재가 된다. 그것이 그들이 아는 최후다. 그 세계를 벗어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는 오늘날 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스템과 권력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려지는 미래 세계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밖에 없다. 작가가 그리는 소설 속 세상은 현재의 세상에 존재하는 어두운 현실이 있다. 그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부조리와 비극을 미래의 판타지로 그렸을 뿐이다. 인공해변, 인조식물, 인공하늘인 ‘스페이스 스카이’가 있는, 실재의 모형에 불과한 것들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들은 지상을 상상하지만 그곳으로 갈 꿈은 꾸지 않는다. 그들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은 죽음뿐이기에.
국가 시스템은 인식론적(epistemological)이다. 지식의 제도화, 정보의 독점과 검증, 과학ㆍ기술 정책, 담론의 규제를 통해 국가는 지식을 구성하고 검증하고 통용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를 지배한다. 교육과 정보를 통해 개인은 지배 시스템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고 지배당한다. 세계로 범위를 넓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지배의 고갈되지 않는 에너지는 두려움이다. 다른 시스템, 다른 세계로의 탈주를 상상하지 못한다. 혹시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여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