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 후 독립한 헝가리는 혁명과 반혁명의 혼란을 겪어왔다. 독일 점령 시절은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역사에서 비극적 사건들로 이루어져있다.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1956년 헝가리 혁명은 유혈사태를 가져왔고,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독재와 혁명과 다시 반혁명으로의 부침이 많았던 역사의 경험 속에서 1980년대 말, 동구 공산권의 붕괴 위기는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켰을까? 체제 붕괴의 분위기와 국경 개방이라는 물리적 조치 등은 멀리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희망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체제의 몰락과 함께 무질서와 혼란이 점점 확산되고, 사람들은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작가 역시 불안하지 않았을까? 무질서와 혼란과 폭동이 잠잠해지고 차갑고 잔인한 질서로 회귀했던 역사의 망령이 그를 사로잡고 공포스럽게 했을지도 모른다.
연착되는 기차, 쓰레기로 쌓여가는 거리, 지독한 추위, 물자 부족, 무질서는 도시(국가)의 기능 상실과 피로감을 시사하고 있다. ‘붕괴의 증상들은 알아차릴 수 있더라도 그 원인은 도저히 불가해한 일로 남았기에(12P)’ 사람들은 일상을 살면서 무질서에 가담하고, 아직 실제적 위협이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생존을 위해 득달같고 악착같은 몸부림을 친다. 들려오는 참사들과 사고들, 비행(卑行)의 소문들은 플라우프 부인이 기차에서 모르는 남자로부터 당한 위협과 더불어 다가올 대재앙, 어떤 거대한 파국, 혹은 종말이 다가온다는 불길한 예감을 갖게 한다. 이것은 곧 붕괴하게 될 구체제의 종말을 앞둔 동유럽인들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한다. 작가는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 어느 도시인지를 밝히지 않고 모호하게 쓰고 있다. 불온한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온 플라우프 부인은 집을 정돈하고 최대한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 위한 대비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이 하게 되는 대응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상황을 인식하고 방법을 찾는 데 있어 차이를 보인다. 에스테르의 경우가 철학자 혹은 예술가의 것이라면, 에스테르 부인은 정치적인 방법으로 상황에 대응한다. 반면 벌루시카의 경우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갖지 못합니다. 자신이 추종하는 에스테르와 천체에 관심을 둘 뿐이다. 그는 우체부로서 그가 다녀할 길을 걷고 달리며 하루일과가 끝나면 태양과 달과 지구의 운동을 퍼포먼스로 사색한다. 과학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플라우프 부인, 에스테르, 에스테르 부인, 벌루시커 등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삶의 영역을 지키려하고 자신이 가치라 여기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그들의 결말은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은 그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두문불출하며 음악의 순정율을 연구하던 에스테르는 밖에서 시시각각으로 들려오는 소문을 들으면서 ‘우리는 끝장이 났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 행동, 상상력에 실패했어. 심지어 우리가 왜 실패했는지 이해하려는 안쓰러운 시도조차 실패했어.(173p)’라고 하며. 그가 순정률에 천착하고 회복시키려고 하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온 원래 주어진 질서가 망해가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에스테르는 평균율을 비판하며 자연으로부터 오는 순수한 진리를 가리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순정율을 따라 조율하고 우리의 귀에는 익숙하지 않은 화성을 연주한다. 그러나 폭동의 기운이 가득한 바깥으로 외출 후, 그의 생각은 변한다. 산책 수 돌아와 창문을 판자로 가리고 바리케이트를 치는 모습은 플라우프 부인과 비슷하다. 그러나 외부로부터 소음이 들려오고 도시가 폭동에 휩싸였다는 소문을 듣고 그는 자신의 생각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벌루시커의 존재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생각하며, 그를 찾기 위해 나갔던 그는 돌아와 판자를 뜯어내고 창문을 열고, 스타인웨이 앞에 앉는다. 연주 전 베르크마이스터 화성계로 다시 재조율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에게 얼마나 편안한를 느낀다. 그가 평균율에 맞춰 스타인웨이를 연주하는 것과 자신의 시계를 종탑에 맞추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는 실패한 것인가?
“이는 그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거나 지금까지 생각해낸 것들을 물린다는 게 아니라 돌림노래 같은 자기-지식적인 사변의 탐닉에서 자유로워졌다.(320p)”라고 생각한다. 이성이 세계의 균열의 메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이 맹신했던 “지성과 합리성은 세계의 고통스러운 빈틈이라기보다 부분으로 속한, 세상의 그림자라고 이해했다.(320p)” 결국 지성이란 것도 세상에 대한 반영, “들쑤시는 대화 속에 우리의 존재를 조종하는 반사작용들과 동조하여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가 평균율이라는 음악의 착각을 빠져 나오듯, 그는 지성이라는 것 자신의 연구가 그저 맴을 도는 탐닉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유로워졌다. 판자를 뜯어내고 창을 통해 보이는 종탑 시계를 보며 시계를 맞추는 행위는 그 의미의 상징이다.
“그 주위의 모든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그들의 원래 의미를 되찾았다. 창문은 다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이 되었고, 난롯불은 다시 온기를 전달하는 난롯불이 되었고, 거실은 모든 흥밋거리를 앗긴 대대적인 손상에서 피난처 구실을 하기를 그만 두었고 바깥세상은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고문’의 현장이 아니었다.(3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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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도시에 들어와 있는 서커스단은 수상하고 불온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고래를 전시하는 서커스단 주위로 군중들은 몰려들고 이 군중을 위험스럽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 서커스단의 ‘대공’이라 불리는 인물은 그 소문의 중심이 된다. 단장은 대공에게 상업적 차원에서 그 칭호를 부여했으나, 기형적으로 작은 키에 평범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그의 모호한 실체는 ‘대공(The Prince)’이라는 이름과 함께 더욱 비밀스럽고 공포감을 조성한다. 서커스단이 거쳐온 도시마다 그의 선동에 동조해서 따르는 추종자들이 생겨났다. 모여든 군중 안에는 이들도 섞여 있다. 전체주의나 파시즘이 태동할 때, 군중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폭력성을 끄집어내는 '광기의 목소리'를 상징한다. 왜인지 히틀러가 떠오른다.
에스테르 부인은 도시의 이 혼돈과 폭동을 이용해서 짧은 시간에 권력을 쟁취하는 인물이다. ‘청결운동 위원회’를 조직하고 외부로부터 도시로 군대를 끌어들여 혼란을 수습한다. 이 과정에서 중령과의 관계는 그녀의 성적 욕망이 권력에 대한 욕망과 다르지 않은 것을 엿보게 된다. ‘청결운동’은 더럽고 불온한 것들을 깨끗하고 질서있게 순정한 것으로 바꾸자는 운동이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하나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것들은 제거해버리는 파시즘의 방법이다. 위원회는 폭도를 처형하고, 또한 에스테르 부인은 자신이 잡은 권력에 위해가 되는 자들을 제거할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대공’은 폭력으로서 권력을 상징하며, 에스테르 부인은 혼란 뒤에 되풀이 되었던 전체주의 독재의 역사를 상기시킨다.
벌루시커는 마음속에서 여러 번의 저항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위원회와 주방장, 너더반과 그의 친구들과 달리 벌루시커는 서커스단 주위에 모여 있는 군중들을 그이 위험하게 보지 않는다. 의심하는 자들은 강박을 전염병처럼 공유하고 있고, 그것은 그들 내부에 불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미스터리는 고래 이상은 없다.(258p)” 그들은 단지 고래라는 생물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화를 몰래 엿들은 그는 ‘대공’의 의도를 알게 된다. 그가 그 대화를 듣고서야 알게 된 것은 저항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방어했고 직감을 억눌러 “서커스와 함께 도착한 그 군중과 지역민의 불길한 예감 사이의 피할 수 없는 연결(265p)”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군중들은 원래부터 폭도였을까? 그들이 폭도가 되도록 한 힘과 계기는 응집된 분노와 불안감에 선동이라는 불을 지핀 것일까? 벌루시커의 저항은 에스테르의 우울감과 다른 것일까?
중요한 시기에 실패한 듯 보이고 뒷걸음치는 듯 보이는 역사가 반복될 때, 또 격변의 시기가 찾아오면 사람들은 우울함과 무기력증을 보인다. 저항의 한 모습이다. 에스테르가 창을 닫고 자신의 연구에 집중하는 것, 플라우프 부인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 벌루시커가 심적인 저항감을 느끼는 것 모두가 그런 모습이라 생각된다. 상충하는 감정인 듯 보이지만 내 속을 들여다보면 분노나 이런 저항감이 우울감과 함께 존재하는 것을 보게 된다. 세계의 부조리와 파멸을 보며 ‘멜랑콜리’는 지식인이 갖게 되는 정서이자 저항의 모습이기 쉽다. 과연 그것만이 유일한 저항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플라우프 부인의 공포로 시작하여 그녀의 장례식과 시신의 부패로 끝을 맺는 이 소설에서 작가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했을까를 생각한다. 격변과 혼란과 불온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했던 그녀의 시도는 무화 되었다. 그 누구도 자신이 속한 사회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살 수 없다. 격변의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추운 날씨에 시신은 동면의 시간을 거쳐 이내 부패를 시작하고, 그 몸에는 폭동과 같은 혼란이 시작된다. 많은 단계를 거쳐 부패가 끝나면 죽음이후 진짜 죽음과 같은 고요가 찾아온다. 그러나 그 혼돈처럼 보이는 부패에도 질서가 존재한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소멸의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은 헤아릴 수 없는 명령으로 이루어진다. 이 마지막 부분이 우리에게 희망적 메시지를 주는 것인지 멜랑콜리 그 자체만 전하고 마는 것인지 각자에게 맡겨진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그래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얻는다. 우울의 감정은 역사의 부조리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그것이 언젠가는 다른 형태의 감정인 분노가 되고 역사를 다시 앞으로 가게 할 동력이 되게 할 것이다.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이 번역의 문제일까 생각했다. 물론 단어 선택에 있어 아쉬운 점은 있다. 그러나 원래 문장 구조를 잘 살려야만 하는 작품이기에 훼손하지 않는 것이 번역의 첫 번째 원칙이 되어야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만연체이고 호흡이 긴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고, 콤마(,)로 이어진 여러 개의 절은 주어가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중첩된다. 긴 문장에 삽입구는 마치 지문들처럼 보이기도 하고,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 혹은 확대시킨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다층적 의미를 생산한다. 영화로 본다면 몽타주 기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식 속에 흐르는 생각과 함께 사건이나 확대 이미지가 병행된다.
예를 들자면
“그런 뒤 이번 주, 두 번째 주를 맞아-그녀는 등 뒤에서 우드득 손가랄 관절을 꺾었다- 깔끔한 정원, 말끔한 가정 운동은 들끓는 열의로 조직, 착수되었고, 그래서 ‘끔찍한 폭동’이 일어난 지 닷새가 못되어, 가게들은 문을 열고 그 안의 선반들은 ‘상업적 활동의 징후’를 내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487P)”
와 같은 문장이다. 청결운동을 주도해가는 에스테르 부인의 권력과 욕망을 손가락을 우두둑 꺾는 소리와 이미지로 더 강하게 설득한다. 서로 대립되는 의식과 장면들이 한 문장 안에 배치함으로 공포, 긴장감, 기괴함의 효과를 낸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우울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우울하지만 계속 관심을 갖게 되는 것과 그것이 희망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