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오쩌둥이 이끈 정풍운동은 '학풍'(學風), '당풍'(黨風), '문풍'(文風)의 삼풍정돈(三風整頓)을 말한다. 이 중 문풍, 문예정풍은 작가들의 글쓰기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이었다. 마오쩌둥은 1942년 5월 ‘옌안 문예좌담회’ 문예활동에 가이드를 마련한다. 문화대혁명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1942년부터 문화대혁명이 있기 전까지 있었던 문예정풍에 딩링을 비롯한 옌안의 작가들은 저항했다.
“…… 루쉰은 죽었다. 우리는 그의 뒤를 잇기 위해 이러저러한 일을 해야 한다고 습관적으로 말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파헤치는 그의 용기를 충분히 배우지 못했다. 우리가 진리에 의연히 대처하는 루쉰의 자세와 대담성을 따라갈 수만 있다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는 저버릴 수 없는 무기인 잡문을 원한다. 일으켜 세우자. 잡문은 결코 죽지 않았다.”(『천안문』 조너선 D. 스펜스, 309p)
그들은 땅속에 묻혀 녹슬고 있는 루쉰의 ‘보도(寶刀)’를 파내 다시 예리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아, 아! 사람아』에서 허 징푸의 책 ‘마르크스 주의와 휴머니즘’ 출판을 막으려는 C대학 당위원회에서 한 교수는 “42년 옌안의 정풍을 이래”라는 말로 자신의 주장을 시작한다. 그는 공석에서 항상 이 말 “옌안의 정풍”으로 말을 시작한다. 그에게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한 교수들 모두에게 문예정풍에서 문화대혁명에 이르는 시절은 각인되어 있는 역경과 고통의 기억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있었던 전쟁과 독재와 탄압이 많은 사람들의 공적인 연설이나 글의 서두가 되는 것과 같은 결이다.
문화대혁명의 시대가 끝나고 4인방이 숙청된 후에 대학으로 돌아온 쑤웨와 허징푸의 삶을 중심으로 그 시절을 보낸 지식인들의 깨어진 삶과 관계와 신념을 상실한 혼돈을 그리고 있다. 허 징푸가 말하듯 마르크시즘은 휴머니즘을 품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들의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며 시작된 혁명은 그들에게서 그것을 앗아갔다. 쑤웨는 혁명의 과정에서 일기장이 공개되는 수모를 겪고 지방으로 추방되었고, 그 와중에 남편에게 배신당했었다. 주변인의 배신과 이혼이라는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은 것보다 더욱 힘든 일은 자신이 이제까지 믿어왔던 사상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녀는 ”정신적인 지주, 대들보를 뽑혀 버리고 만 것 같아“ 고통스러워 한다. 그런 그녀에게 허징푸는 “맹목적인 것과 확고하다는 것을 혼동하지 말 것과 ”회의와 신념“은 서로 양립할 수 있다고 위로한다.(『사람아, 아! 사람아』「제2장 마음이 머물 곳을 찾아서」 허 징푸 편)
허 징푸는 지극히 평범하고 작은 존재였던 그의 아버지가 치른 거대한 희생을 기억하며 그 희생은 역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고 질문을 던진다. 그의 아버지는 ‘인민 대중’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역사는 그 인민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의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의 휴머니즘적인 희생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기근 속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양식을 포기한 그의 아버지의 죽음이야말로 기려야 할 인민의 희생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를 기념하고 추도한다. 추도사는 그의 원고,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이다.
허 징푸의 출판을 막기 위한 시류와 C대학 위원회의 교수들을 보며 쑨웨는 습관의 권력에 대해 생각한다. “습관보다도 무섭고 권위가 있는 것이 있을까” 하고, 위를 보고 사람의 지위에 따라 말의 경중을 재는 습관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허징푸 역시 자신의 책 출판을 막는 내막과 공명정대하지 못함에 대해 생각한다.
“내막이 있을 수 없는 일에 ‘내막’이 생기는 것은 자기의 행위가 공명정대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물에 ‘내막’이 생기면 곧 이유도 없이 갖가지 마찰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 중국인의 정력은 모두 내막의 제조와 내막의 탐색에 낭비되게 된다.”(『사람아, 아! 사람아』「제4장 동녘은 해, 서녘은 비」 허 징푸 편)
작가 다이 허우잉은 “마르크스주의와 휴머니즘은 서로 통하거나 또는 일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중요한 사상적 전환은 “마르크스의 인간 소외”에 대한 이론 인식에 서 일어났다고 한다. 노동으로 만들어지는 물건과 자본으로부터 인간 소외 문제를 해결하고자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났지만 그 혁명은 인간을 대상화하는 자본주의와 같은 오류를 범한 것이다. 사상 혹은 철학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순간 인간은 소외된다. 그것은 도구이고, 목적은 인간의 행복이어야 한다.
허징푸는 조용히 쑤웨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쑤웨는 그런 허징푸에게 결국 마음을 연다. 당원으로 정치에 몸담았던 쑤웨는 공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부상을 입었다. 등장하는 대부분의 가정과 관계가 깨지고 무너졌다. 혁명이후 그들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인간성 회복 없이 불가능하다. 여전히 문화대혁명 시기의 처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 간다.
허징푸와 쑤웨가 새로운 관계로 발전하고 쑤웨와 그녀의 전남편 자오 전환이 서로 편지로 사과하고 용서하고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결말은 단지 사랑과 가정의 회복이라는 표면적 의미를 넘어, 당시 중국인들이 혁명이후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자세에 대한 메시지다. 문화대혁명 당시 있었던 반인륜적 잘못들에 대해 민중은 어떤 자세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제안이다. 옳고 그름을 밝히고 사과와 뉘우침이 있어야 함에도 사람들은 모진 역사 속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태도를 보인다. 여전히 권력 다툼과 복수에 몰두하는 부류도 있었다.
사단칠정(四端七情)에서 사단 중 사단四端(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 중 옳고 그름을 가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휴머니즘의 출발은 이 시비지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시비를 가린 후에야 타인의 불행을 아파하고,은 부끄럽게 여기고, 타인에게 양보하는 마음이 빛이 나고 진실된 것이 된다. 잘못을 알고 부끄러워하고 사죄하는 것이 그 시대 필요한 정신이었다. 사죄가 없고 용서가 없기에 불의는 반복되는 것이다.
작가는 “예술 창작의 최고 임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예술가의 현실에 대한 인식, 태도, 감정을 있는 그대로 형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이 추구하는 최고의 진실은 생활의 정확한 묘사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도 생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태도 및 그에 대한 생생한 표현이어야만 한다“(「작가의 말」)고 말한다.
작가는 문화대혁명의 당시 시인 원제를 조사하고 심사하는 그룹의 일원이었던 그녀가 1년 후 그를 다시 만나 그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결혼을 당에서 허락하지 않자 그로인해 상심한 원제는 자살한다. 이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이 『시인의 죽음』이다. 인간, 인간성, 휴머니즘이 빠진 혁명에 대한 회의를 읽게 된다. 작가는 리얼리즘적 소설을 썼지만 그가 느끼는 감정, 의문,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을 도입하여 쓴 것이 『사람아, 아! 사람아』이다. 계급투쟁만 남고 인간은 황폐화된 상황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 담겨있다. 어떤 사상이든 철학이든 인간을 위하지 않으면, 허공을 칠 뿐이다. 쑤웨가 괴로워하는 것도, 허징푸가 글을 쓰는 것도 다 같은 이유이다.
루쉰은 신해혁명과 그 이후의 실패를 겪고 있는 중국을 비판하면서도 인간애를 놓치지 않는다. 신랄한 잡문에서도 역시 그 정신을 읽게 된다. 루쉰에 이어 다이 호우잉을 다시 읽으면서 새로운 책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심지어 시인의 죽음은 읽었던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이 허우잉의 3부작을 다시 읽고 있는 중이다. 중국의 근현대사와 인물들에 대한 독서가 도움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