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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의 서재
  • 예언자의 노래
  • 폴 린치
  • 16,200원 (10%900)
  • 2024-11-20
  • : 18,160

우리가 사는 세상엔 설마 하던 일이 언제든지 일어난다.


아침에 출근한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감시 당하고, 생존 위협을 받고, 통행을 금지 당하고, 내전(內戰) 의 한복판에서 두 아들을 잃고, 필사의 탈출을 한다. 주인공 아일리시 스택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다. 그녀가 설마 하던 일이다. 설마 했기에 그 땅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이라면 난 내가 새처럼 자유롭다고 말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이런 기괴한 일에 휘말렸는데 어떻게 자유의지가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한 가지 일이 다른 일로 이어지고, 결국 그 빌어먹을 사태가 스스로의 동력을 찾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352p)”

 

아일랜드를 탈출하기 위해 바닷가 공장 건물에 머물 때 만난 모나가 한 말이다. 그녀 역시 아일리시와 다를 바 없는 고통을 겪고 떠나는 중이다. 일찌감치 떠나라고 권하는 말들을 무시한 것은 이렇게 생존의 탈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속히 떠나라는 예언자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복 경찰관이 집을 다녀갔을 때 아일리시는 “무언가가 집 안으로 들어온 느낌이 든다.” 여기서 나는 숨을 멈추고 읽어 내려갔다. 그 “무언가”는 두 남자와 함께 서 있다가 현관으로 들어왔고, 살금살금 집안을 걸어 다닌다. 집 밖 어둠의 일부가 들어왔다. 두려움 혹은 불행일까? 아일리시가 겪는 현실과 마음은 서로 대비를 이루며 묘사된다. 사실적인 서술과 환상적 표현으로. 시를 읽는 것 같다.

 

교원 노조원인 남편 래리 스택이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는 그에게 “해야 돼, 이제 당신이나 내 문제가 아니야, …… 교사가 규탄하지 않으면 우리의 헌법적 권리를 위해서 들고 일어날 사람이 달리 어디 있겠어?(41p)”라고 말할 때에도 그가 그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집을 나서는 래리에게 “가서 해치워.”라고 말했던 그 시간에서 그녀는 떠나오지 못한다.

 

“문 앞에서 주저하던 래리, 녹색 부츠에 발을 집어넣은 다음 비옷을 입으려 애쓰던 래리를 생각한다.(53p)”

 

아일리시는 네 아이를 돌보며, GNSB에 체포된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녀는 ‘보안 위험인물’로 간주되고, 직장을 잃고, 사람들로부터 소외되며,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정부군과 혁명군의 내전이 발발하고, 그녀의 삶은 급변한다.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작가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그러나 그것은 상상으로 보여준 실재이다. 그가 보여준 시적 표현들에 공감되어서 더욱 슬프다. 나의 공감은 이 세상엔 이런 비극이 실재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므로.

 

작가는 아일랜드에 독재 정부가 집권하고, 감시와 통제와 폭력으로 통치하는 전제국가에서 저항, 체포, 죽음, 탈출의 연속적 사건을 겪어내는 아일리시의 삶을 그리고 있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가상의 허구지만, 시리아 내전이나, 우리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의 실재성을 전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을 때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나의 느낌은 다르다. 


불면의 밤을 지나고, 시간이 흐르며 드러나는 진실 앞에서, ‘설마’와 ‘만일’ 사이에서 몸서리를 친다.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고 지속되었다면, 국지전이 일어나고 전쟁으로 확대되었다면, 내란이 성공했다면…… 하는 가정들이 일으킨 각성들 때문에 나는 여전히 잠을 설친다. 지금은 시위대에 참여하기 위해 시간을 내지만, 만일 아일리시와 같은 상황에 처하면, 불의와 압제에 저항할 용기도 내 남편과 아이들을 독려할 수 있는 순수함도 나에겐 없음을 발견하고 수치심의 바닥으로 추락한다. 아일리시가 그렇듯 “헌신과 사랑의 세상 들어가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공포의 세상에 살도록 저주받는 것(354p)”을 본다. 차라리 내 아이들 나이 때 가졌던 무모함이라도 되갖는 게 마음 편할까?

 

실제일까 하는 의심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 그것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몇 분의 오차로, 몇 사람의 소극적 행동으로, 다수의 적극적 저항으로, 다행히 피해간 사악함들, 그것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는 예언들이 소리치고 있다. 꿈인가 싶은 시간들은 지나갔다. 추스르고 직시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이 일어 이 글을 쓴다.

 

“세상은 꿈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달아날 방법이 없는 꿈일 뿐이고 그러한 삶의 대가는 고통이다, ……예언자가 노래하는 것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과 어떤 사람에게는 일어났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은 일의 종말이다(355p)”

 

더 이상 이 글을 이어갈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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