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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의 서재
  • 푸른 들판을 걷다
  • 클레어 키건
  • 15,120원 (10%840)
  • 2024-08-21
  • : 44,162

『맡겨진 소녀』로 만난 키건의 문장은 간결함과 그 함축성 때문에 충격을 주었다. 읽어가면서 만나는 단서들은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게 하고, 지나쳐버린 조각을 찾아 퍼즐을 완성하게 했다. 그렇게 반복되는 되읽음으로 말들은 억양을 갖고 감정을 드러낸다. 단순하고 짧지만 한 문장도 허투루 읽을 수 없다. 그렇게 작가를 만났기에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는 작은 자취에서도 누군가의 비극을 읽어내는 남자의 시선을 놓치지않고 쫓으려 했다. 그리고 그의 심상에 일어나는 파문에 함께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단편집 『푸른 들판을 걷다』는 『맡겨진 소녀』 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 비하면 노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작별 선물」에서 모호함으로 가려져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은 범죄다. 묵인이 있었고 입에 올리지 않는 그것,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집과 아일랜드를 떠나는 딸이 공항 라운지 화장실 “칸막이에 안전하게 들어가” 문을 잠그고서야 울음을 터뜨리는 마지막 장면은 두 작품 『맡겨진 아이』 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짐작한 가정 내 비극은 폭력, 학대, 성 착취 혹은 그 이상이었을 수도 있음이 드러난다. 또 다시 책장 펴 다시 읽게 된다. 고통의 현장은 가정이고 그 테두리 안에서 비극의 주인공들은 주로 여성과 아동일 수밖에 없다. 가정이기에 이 고통은 비밀이 된다. 이 비밀이 외부로 은밀히 알려지더라도 그들을 둘러싸는 것은 수군거림과 따돌림 혹은 방관이다. 그들은 생존에 대해 불안할 수밖에 없고, 실존은 없다. 그러기에 떠나는 것이다.

 

“당신 문제 있어요.(「푸른 들판을 걷다」)” 중국인의 반복된 말에서 키건을 읽는다. 결혼식, 신부, 파티를 벗어나 사제는 자신의 죄의식, 욕망, 후회를 동반하는 산책을 한다. 들판을 걷다가 만난 중국인—병을 치료한다고 소문난—이 사제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는 치료 전후로 하는 이말! 영어가 미숙한 중국인의 반복된 이 말은 사제의 몸 뿐 아니라 영혼의 고통을 지시하는 것으로 사제가 받아들이고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의 산책은 이어지고 들판의 풍경은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생각으로 그를 이끌어 간다. 글쎄, 사람은 모두 비슷한가? 그가 서원을 한 사제일지라도, 욕망에 몸을 맡겼던 격정을 잊지 못하고, 그 기억을 맴돌고, 사제로서 일상의 일들은 생각함으로 그의 죄의식을 덮는다.

 

키건이 그리는 세상은 범죄가 받아들여지는 곳이다. 가정이기도 하고 작은 시골마을이기도 하다. 선량한 사람들은 그것을 관습과 질서 속에 은폐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비밀이다.

 

「삼림 관리인의 딸」마사와 디건 사이의 그들의 문제는 아이들이 툭 내뱉는 말들 속에서 드러난다. 아이들이 따라하는 “질투해요?”, “누가 신경이나 쓴대요?”는 부모의 관계를 드러내는 일상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침묵의 뚜껑이 덮여”있는 집에서 마사의 권태와 생각, 그리고 마사의 외도로 태어난 빅토리아에만 초점이 맞춰지던 부부의 문제는 불타는 집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대화에서 그 근원이 드러난다. 부부의 내밀한 공간에서 행해지는 폭력과 그렇게밖에는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던 남자의 무지와 독선에 대해 확인하게 된다. 떠날 준비를 해 왔던 마사의 허탈한 마음조차 이해하지 못해서 불타는 집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이제 미안해?”라고 하는 디건의 원망은 빗나간 화살처럼 힘없이 땅에 떨어진다. 상대방의 마음에 무지하고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한 연인이나 부부의 말과 행위는 폭력적이다.

 

「물가 가까이」에서는 그런 폭력적인 말들이 등장한다. 새아버지의 말은 청년에게 상처를 주는 듯하다. 바다수영을 하다가 익사할 뻔한 경험은 새로운 가정에 대한 공포를 상징하는 듯하다. 강에서 수영을 잘했던 할머니가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를 몰라서” 바다에 들어가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린다. 떠나려고 항공사에 전화하던 그는 어머니를 보고 잠시 머뭇거린다.

 

어떤 이들에게 가정은 벗어나고 싶은, 그러나 한편 묶여 있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가족이 병(病)”인 사람들은 “가족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되묻는 존재가 될 것이다. 나는 예외일까? 유년기로부터 시작된 이 이중적인 욕망과 오래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았는가?

 

키건의 작품 곳곳에서 얼룩을 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멍이고, 깊게 베인 상처이고, 흉터다. 간결한 문장들 속에 담긴 서사는 그 상처와 흉터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 동요하게 만든다. 공항 화장실 칸막이 문을 닫아 걸고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유년기를 어둠속에 가뒀던 가족과 이별하는 소녀, 걷고 있는 푸른 들판 어딘가에서 신음하고 있는 자신의 분신을 보는 사제, 불타는 집을 바라보는 허망한 눈의 여자, 여전히 떠난 여인을 기다리며 그녀의 검은 말을 생각하는 침대 위에 움츠린 남자…. 그들의 슬픔은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그것이 키건이 남겨 놓은 얼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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