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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zinga님의 서재
  • 저에게 재능이 있나요?
  • 김경욱
  • 15,120원 (10%840)
  • 2025-08-15
  • : 1,845

본격적이지 않아서 좋다. 본격적인 작법서도 글쓰기 책도 아니고, 본격적인 리뷰 모음집도 아니다. 강의록을 묶어서 내 강의의 진수를 보여주겠노라고 초대한 자리도 아니다. 김경욱의 『저에게 재능이 있나요?』 (마음산책, 2025, 216쪽 분량)는 쓰기와 읽기, 살기와 걷기를 적당한 간격의 징검다리 돌처럼 놓아 계속 가보게 만드는 산문집이다. 글이 본격적이라 온통 빨강인 책(빨간 볼펜 밑줄과 별이 그득한)도 필요하지만 이처럼 거울이 되고 창이 되는 편안하면서도 적절하게 치열한 책도 감사하다.

 

적절하게 치열한 책이란 뭘까. 다음에 나올 이야기가 쉽게 예측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면서도 그의 성실과 진심이 짐작 가능해서 저절로 지지하게 되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사실은 뽐낼 만도 하다. 수많은 문학상 수상과 아홉 권의 소설집과 아홉 권의 장편 소설을 낸 한국 소설가이며 ‘진화하는 소설 기계’라는 별칭까지 소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예종 교수로 20년째 창작을 설파하는 분이니 말이다.

 

소설가의 첫 번째 산문집 『저에게 재능이 있나요?』는 <예술과 학교>, <예술과 인생>, <예술과 기술>까지 세 장에 각각 아홉 편의 글을 본문으로 실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여러 가지 키워드가 여운처럼 남는데 그중 하나가 숫자 9다. 한 꼭지당 분량은 여섯 페이지 내외라 한 호흡으로 읽기에 편하다. 편할 뿐 아니라 내용이 솔깃하고 흥미롭다. 재미있다는 말이다. 표제작이라고 할 수 있나, 첫 번째 <저에게 재능이 있나요?>에서는 작가가 되고 싶다면 우선 편지를 쓰자고 말한다. ‘이야기’란 그리거나 적는 게 아니라 들려주는 것이라는 근거와 함께. 첫 문장을 쓰지 말고 첫마디를 ‘건네야’ 한다는데, 목소리를 입혀야 한다는 데서 그렇구나! 버튼을 새삼 누른다.

 

작가는 고흐의 그림을 보고 그림이 목소리인 것과 같이 글 또한 목소리라고, “이미지가 아니라 소리다.”(p.18)라고 보탠다. 공감 버튼을 연거푸 누른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거듭 읽는 중이라 ‘소리’는 나에게 단어를 넘어 탐구할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첫 장은 재능이란 어떠어떠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통찰로 마친다. “자신을 아끼는 데 게을러서는 안 된다.”(p.20) 혹한이냐 싶은 가을에 온기를 전하는 말로 마무리한다.

 

‘소리’라는 말을 듣고 포크너를 생각하였는데 두 번째 글에서는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언급하며 문학도 예술일 수 있었다고 전한다. 독자는 상상의 강의실에 학생들과 함께 앉아 고흐의 그림을 보고, 메리 올리버의 시 <기러기> 낭독 소리를 듣는다. 내면의 자화상과 외면의 자화상을 함께 그리고 써본다. 토니 모리슨과 필립 로스에게서 분노도 연민도 없이 정확한 소설을 쓴다는 의미를 생각하며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내로라하는 세계문학의 첫 문장 중에서 <모비 딕>의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를 오랜만에 상기한다.

 

이 책의 장점을 ‘어쩌면 잊고 있던, 책꽂이에 붙박이처럼 결박된 빼어난 고전에 공기를 통하게 하고, 새로 만날 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는 데서 찾는다. 읽지 못한 작가들에 대한 다급함도 일깨운다. 물론 글쓰기 요지도 배울 수 있다. 플롯의 정의를 자꾸 다시 확인하곤 했는데 “순서가 바뀌면 관계도 바뀌고 사건의 의미도 달라진다. 스토리가 선택이라면 플롯은 배치일 것이다.”(p.186)라는 설명은 꼭 기억하려고 마음먹는다.

 

즐겁게 읽다 보면 제법 밑줄이 한가득이고 메모도 눈에 띈다. 이대로만 해도 훌륭해질 듯하다. 이대로 못해서 문제지. 책은 짧은 소설도 두 편 담았다. 작가의 다른 소설도 만나보고 싶어진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는 <황소가 하는 일, 전갈이 하는 일>이었다. 글쓰기 책을 낼 수 있을 만한 아이디어 메모 노트 분실 경험은 생생하게 와닿는다. 정말 소중한 걸 잃어버리는 경험에서 나아가 되찾기까지. 그런데 그 안에 있어야 할 내공의 진수이자 진리는 평범했다는 아이러니. 내 안의 전갈이 두려워한 것은 두려움 자체였다는 성찰은 내 생각이 짧았다는데 이른다. 소설만이 아니라 산문도 아름다운 초대일 수 있다는 깨달음에(‘깨달았다’ 금지) 앞으로 나올 작가의 새로운 산문을 벌써 기다리기 시작한다.

 

나의 독서 여정을 3초 안에 훑어볼 때 지금은 윌리엄 포크너 시대다. 재독 도서, 삼회독 도서, 초회독 도서를 한꺼번에 읽다 보니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때로 분노도 솟구친다. 대체 왜 이러시는 걸까요, 나한테 왜 이러시는 건가요, 이런 문장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 건가요, 포크너 승! 혼잣말하며 소리 내거나 분노하고 감탄하던 와중에 읽은 <나에게 재능이 있나요?>는 책이 이렇게 친절해도 되는 거야? 이렇게 다정할 수 있는 거야? 단비 같은 시간이었다. 본격적이지 않아도 좋은 김경욱 소설가의 산문집 『저에게 재능이 있나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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