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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zinga님의 서재
  • 남아 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 12,600원 (10%700)
  • 2021-08-06
  • : 7,360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송은경 옮김, 민음사, 2021, 1989, 348쪽 분량, 원제_The Remains of the Day)』은 달링턴 홀의 집사 스티븐스가 엿새 간 생애 첫 여행을 하며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이야기다. 대를 이어 집사 일을 하고 있는 스티븐스에게 일은 곧 삶의 목적이며 유일한 가치다. 당시 완벽한 집사 되기는 ‘근무 시간’을 한정하고 명시된 요구에 부응하는 업무 수행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달링턴 가문이 200년 넘게 소유해 온 저택에, 저택의 주인이었던 달링턴 씨에게 한때 열일곱 명의 직원을 거느리며 완벽하게 복무함으로 사명을 다했다.

 

집사 스티븐스는 맡은 일을 조율하고 통제하였으며, 발생 가능한 경우의 수를 헤아리고 민첩하게 대응함으로 저택의 주인이 도모하는 일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해낸다. 드러나지 않을수록 훌륭하다는 직분의 속성상 공로와 과실은 달링턴 씨에게 속하는 게 마땅한 이치다. 또한 그가 헌신하는 대상인 사려 깊은 달링턴 씨에게 과실은 있을 리 만무하다. 너무도 당연해서 의심할 수 없는 전제조건이다. 이 조건에 돌이킬 수 없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면?

 

새 주인 패러데이 씨 덕분에 집사 스티븐스는 생애 첫 여행을 떠나게 된다. 전쟁도 끝났고 저택의 상황도 달라진 지금, 켄턴 양의 편지는 오래전 열정적인 총무였던 그녀를 상기시킨다. 그는 새로 봉착한 인력 관리 문제 해결에 그녀가 꼭 필요한 ‘요소’임을 확신한다. 그는 여행과 일 두 가지 목적을 한 번에 이룰만한 만족스런 여정을 시작한다. 첫날 저녁 그는 솔즈베리에서 본 것들 중에서 성당이나 도시 건물보다 “일렁이는 영국의 전원을 품은 그 놀라운 경치”(p.40)를 최고로 꼽는다.

 

그는 영국의 최고 절경이 주는 깊은 만족에서 ‘위대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위대함을 정의 내리면서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나아간다. 소수 정예의 일류급 집사만을 회원으로 수용하면서 당시 런던에 영향력을 끼치던 단체 헤이스 소사이어티의 기준을 예측해 볼 때, ‘위대한’ 집사는 유능보다 품위에 중점을 둔다. 그리고 화자는 품위의 화신을 자신의 부친에게서 찾는다. 그는 부친의 예를 들어 ‘품위’란 사적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 여긴다. 즉 전문가적 실존이 월등한 우위를 넘어 삶의 유일한 가치임을 증명하는 매 순간의 합이 ‘품위’를 떠받친다.

 

스티븐스가 거듭 읽는 켄턴 양(결혼한 20년 전부터는 벤 부인)의 편지는 화자를 과거로 회귀하게 만드는 타임머신 키다. 소설은 현실에서 여행 중인 패러데이 어르신의 집사 스티븐스와 과거 주어진 임무에 매진하던 월링턴 씨의 집사 스티븐스를 엇갈려 배치한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켄턴 양은 총무로, 로버로 하우스에서 역할을 마친 스티븐스의 부친은 집사 보조로 월링턴 홀에 입성한다. 회상은 스티븐슨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위해 희생했던 사적인 가치와 잠재했던 가능성 위에 내려앉은 먼지를 불어내는 작업과 맞먹는다. 비로소 희미하게 드러나는 기억의 응달, 무의식에 근접해 있는 진심, 오래 단련되어 딱딱해진 감정, 그중에서도 놓쳐버린 사랑을 그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지나치게 가까이에서 하나의 대상에 몰입했던 그는 전체로서의 진실을 통찰하지 못했다. 상황을 왜곡했다. 그는 알아차릴 기회를 놓쳤고 어쩌면 외면했다. 만찬장의 아마추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의 논쟁을 지켜보았으나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그날을 아픔보다 성취감으로 기억한다. 진실과 떨어져 있어도 ‘관습’(p.169)이라면 허용하고,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합리화한다. 월링턴 씨의 반유대 행보도 ‘사적인 의구심을 부적절하게 표현’하지 않고 ‘품위 있게 처리’(p.193)하기 위해서 따른다. 판단에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주장에 켄턴 양은 동의할 수 없지만 실행하며 괴로워한다. 오래 보았던 카디널은 자기도 모르게 도구로 전락하는 월링턴 씨를 염려한다. 카디널의 직접적인 경고에도 스티븐스는 이면의 진실을 각성하지 못한다.

 

“말해 보세요, 스티븐스 씨. 당신은 왜, 왜, 왜 항상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살아야 하죠?”(p.201) 경종을 듣지 못했던 그의 각성은 늦은 감이 많다. 그는 품위 즉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지키는 자로, 집사로서의 품위를 고수함으로 ‘세상의 저 위대한 중심축에 거의 도달했’(p.300)다는 승리를 맛보았다. 그러나 곧 여기에 무슨 품위가 있단 말인가 하는 성찰로 결론 맺는다. 그는 한 번 뿐인 자신의 인생으로 대가를 지불했으며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림으로 책임을 감당한다. 여행의 끝날,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라는 저녁을 혼자 맞으며 스티븐스는 다시 시작할 날들을 계획한다. 더 잘 해보겠다고 마음먹는다.

 

『남아 있는 나날』은 노벨 문학상 수상(1917년)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대표작이며 1989년 부커상 수상작이다. 일본계 영국인 소설가인 그는 인간과 문명에 대한 비판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잘 녹여 낸 작품들로 현대 영미권 문학을 이끌어 가는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소설은 1993년에 동명 영화로 제작되었다. 소설은 1950년대 현재와 20여 년 전 양차 세계 대전 사이 과거의 영국과 당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베르사유 조약과 히틀러 등장, 반유대주의 등 굵직한 당시 흐름과 그로 인한 반향을 기록하고, 그와 함께 집사 스티븐스와 켄턴 양 등을 통해 개인의 문제를 질문한다.

 

시대적 배경을 덜어낸다면 일과 삶의 균형, 인간은 무엇을 선택하고 책임지는지 생의 가치를 묻는다. 가지 않은 길과 가지 못한 길 사이의 통찰과 회한은 어떻게 보면 일회성 삶을 사는 찰나적 존재인 우리 모두에게 틀과 매너리즘, 합리화와 구속의 굴레에서 어떻게 잠들지 않을지를 숙고하게 만든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화자의 내적 갈등과 감정을 독자에게 오롯이 전달한다. 스티븐스의 회한과 아픔, 수고와 허무, 상실과 당황은 흐르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그의 눈물만큼이나 속수무책으로 전이되어 온다.

 

잘 하고 있고 이게 최선이다 싶은 현재, 혹시 잃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잘못한 결정은 번복할 수 있는지, 비일비재한 아이러니 앞에서 어떻게 생의 여정을, 아니 하루의 일정을 수정할 수 있을까 책은 묻는다. 이탈한 경로를 바로잡고 떨어진 연료를 보충할 수 있을지, 푯대와 대전제와 명제는 믿을 만한지 소설에서 치열하게 행동했던, 또는 관조했던 이들을 다시 불러본다. 삶은 고통스런 시간이나 만끽할만한 시간 모두 숨 쉬듯이, 물 흐르듯이, 알아차릴 새 없이, 경고도 없이 전진한다. 석양이 내리기 전에, 깊은 어둠이 사방을 덮기 전에 성찰하게 하는 작품이다. 여행지와 달링턴 홀이 포개지듯 겹치고 현재와 과거는 순식간에 자리 바꾸는 소설이다. 소설처럼 한 순간에 삶도 훌쩍 흘러가버릴 것만 같아 긴장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될 작품을 추천한다.

 

 




책 속에서>


따라서 이제 나는 다음과 같이 단정하고 싶다. 즉 ‘품위’는 자신이 몸담은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집사의 능력과 결정적인 관계가 있다. 모자라는 집사들은 약간만 화나는 일이 있어도 사적인 실존을 위해 전문가로서의 실존을 포기하게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집사로 산다는 것은 무슨 팬터마임을 연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슬쩍 밀거나 약간만 비틀거리게 만들어도 가면이 떨어져 내려 가면 뒤의 배우가 제 모습을 드러내고 만다는 점에서 말이다. 위대한 집사들의 위대함은 자신의 전문 역할 속에서 살되 최선을 다해 사는 능력 때문이다. 그들은 제 아무리 놀랍고 무섭고 성가신 외부 사건들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점잖은 신사가 정장을 갖춰 입듯 자신의 프로 정신을 입고 다니며, 악한들이나 환경이 대중의 시선 앞에서 그 옷을 찢어발기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 그가 그 옷을 벗을 때는 오직 본인의 의사가 그러할 때 뿐이며, 그것은 어김없이 그가 완전히 혼자일 때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품위’의 요체다.(p.61)


그러나 당시에는 물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나와 켄턴 양의 관계에서 엉뚱한 것들을 솎아 낼 수 있는 날이, 달이, 해가 끝없이 남아 있는 줄만 알았다. 이런저런 오해의 결과를 바로잡을 기회는 앞으로도 무한히 많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들이 모든 꿈을 영원히 흩어 놓으리라고 생각할 근거가 전혀 없는 것 같았다.(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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