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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zinga님의 서재
  • 바이마르 문화
  • 피터 게이
  • 18,000원 (10%600)
  • 2022-10-16
  • : 1,143

피터 게이의 『바이마르 문화(조한욱 옮김, 교유서가, 2022, 1968, 344쪽 분량)』 는 시민이 주권자인 공화국은 왜 몰락하게 되었는지 독일의 찬란한 시기를 소환하여 질문하는 책이다. 바이마르 헌법 제정은 독일 문학의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괴테와 실러의 바이마르 고전문학 시기로 돌아가고자 하는 염원도 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이상적이라고 여겼던 헌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기대하던 미래는 현실화하지 않는다. 문화적 융성과 정치, 경제적 몰락은 곧바로 연결되고 급하게 막을 내린 부흥기 이후 처참한 역사를 기록하게 된다. 14년간 지속된 괴테의 독일, 즉 바이마르 공화국의 독일과 히틀러의 독일은 두 개의 전혀 다른 독일이고 그 파급력은 국가 차원을 넘어선다.

 

피터 게이는 당시 망명가들이 남긴 업적, “고국을 혐오하면서도 그리움에 뒤돌아보며 외국 땅에서의 강요된 생활 속에서 최대의 업적”(p.14)을 찬양한다. 예술가 자신이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이 내재되어있는 모더니즘과, 그 안에서 탄생한 “새로운 미적 감수성”에 주목한다. “외부로 밀려난 내부자”(p.17)중 한 명인 저자 또한 이를 민감하게 포착한다. 피터 게이는 역사학자이자 유럽 근대 사상사와 문화사 분야의 권위자로서 특히 계몽주의 연구, 부르주아 문화 연구에서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이 인간과 역사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 역사 연구에 접목한 저작들을 남겼다. 저자는 서문을 “바이마르공화국은 짧고 열에 들뜬 것 같지만 매혹적인 삶을 살았다.”(p.23)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공화국은 1차 대전 이후 독일 제국이 붕괴한 1918년 탄생하여 1933년 히틀러가 수상으로 임명되면서 살해된다. 책은 문화사를 중심으로 시대를 조명하면서 부족한 정치사를 말미에 부록으로 첨부한다.

 

1장 <탄생의 진통: 바이마르에서 바이마르로>은 패망 속에서 탄생해 혼란 속에서 존속했으며 재앙 속에서 사멸한 공화국(p.38)의 자취를 따라간다. 책은 바이마르 역사에서 공화국에 해가 되었던 베르사유 평화조약을 언급한다. 가혹하고 보복적인 조약, 치밀하게 계획된 모욕에 속수무책인 파견 대표단, 증오하는 조약에 서명하면서 비겁자이자 반역자라는 낙인을 받게 된 이들에게 조약이 파기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반유대주의자와 나치 선전의 핵심이 된다. 2장 <이성의 공동체: 절충자와 비판자>는 나치를 증오했지만 공화국을 사랑하지 않았던 수천의 교수, 기업가, 정치가를 이야기한다. 저자는 그들을 열정적 신념이 아닌 지적 선택에서 출발한 ‘이성적 공화주의자’(p.73)라고 부른다. 탁월한 젊은 예술가 에카르트 케르에게서 내부자에서 외부자가 된 예를 살피고 공화국 연구소, 특히 바르부르크 연구소의 추구와 업적을 다룬다. 사회 전반으로 영향을 끼치고 변화의 동력이 되지 못하는 엘리트 주의의 한계는 자명하다.

 

“바르부르크 방식의 엄격한 경험주의와 학문적 상상력은 1920년대에 독일의 문화를 야만화시키려 위협했던 천박한 반지성주의와 통속적 신비주의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이마르의 전성기였다. 아테네는 알렉산드리아의 손에서 거듭 회복되어야만 한다는 바르부르크의 유명한 표현은 연금술이나 점성술과 고투를 벌이던 르네상스를 이해하기 위한 예술사가의 처방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것은 비이성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 세계 속 삶을 위한 철학자의 처방이었다.”(p.88) 심오했지만 제한적이었던 바르부르크 연구소 외에 베를린의 정신분석 연구소와 프로이트, 프랑크푸르트의 사회조사 연구소 등의 업적과 한계를 차례로 살핀다.

 

3장 <비밀스러운 독일: 힘으로서의 시>에서는 현대판 소크라테스인 슈테판 게오르게로 문을 연다. 그에게 “비밀스러운 독일의 왕이었으며 비영웅적 시대에 영웅을 찾고 있던 영웅이었다.”(p.113)는 설명을 덧붙이고, 영향력에 있어 그와 견줄 수 있었던 단 한 명의 살아있는 경쟁자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언급한다. 최고급 서정시인(토마스 만의 표현), 청년운동 신비주의(무쉬크의 표현), ”수천의 우둔한 존재들 속에서 어떻게 단지 한 존재만이 시인이 되는가를 세속적 인과관계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지만“ 실지로 그러한 시인이 되었던(슈테판 츠바이크의 표현) 릴케에게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는 장은 릴케 숭배자의 한 사람으로써 꽤 인상 깊었다. 바이마르 공화국과 시의 연관성은 주목할 만하다.

 

4장 <전체성의 갈망: 현대성의 시련>에서 저자는 정치를 추구하는 것이 모든 습관과 마찬가지로 연습으로 강화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위축되는 하나의 습관이라고 말한다. 유력한 독일 지식인들이 “비판은 물론 일반적인 정치 행위조차 자제”(p.152)하였는데 특히 토마스 만은 “비정치적 인간의 고찰”이라는 책을 출간한다. 그 반대편에 에밀 졸라가 위치한다. 바이마르에서의 비정치적 경향은 인식의 왜곡을 발생시키고 15년이 못되는 바이마르 역사에서 내각이 17번 바뀌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리고 “경영에 있어서는 완강하리만큼 독립적이지만 정치 기사 처리에 있어서는 신뢰할 만큼 편파적”(p.157)이었던 신문이 등장하고, 단지 ‘프랑크푸르트 신문’만이 예외적 위치를 차지한다. 책은 편집장이었던 하인리히 지몬의 연설을 “자신이 여전히 외부자라는 것을 알고 있던 외부자, 다른 독일의 대변인, 최고의 바이마르 정신”(p.158)이라고 평한다. 그 밖에 청년 사이에서 두드러지던 전체성을 향한 갈망에 주목하고, 그들 사이에 만연한 반이성주의가 반사회적 행위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이 장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는 마르틴 하이데거다. 1933년 프라이부르크대학 총장 취임 연설은 그에게 나치 부역자라는 라벨을 붙이고 비난하는 근거가 된다.

 

5장 <아들의 반역: 표현주의 시기>에서는 바이마르공화국에서 바우하우스 다음으로 꼽히는 표현주의 사조를 영화, 회화, 연극 등의 예술에서 확인한다. 새로운 인간성에 대한 부정적 전망과 희망은 그대로 작품에 반영된다. 특히 연극에서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는 “부권에 대한 반역”(p.221)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권위주의적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반항은 카프카에서도 두드러진다. 6장은 <아버지의 보복: 객관성의 성쇠>에서는 1924년의 문학적 사건인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해설한다. 부자갈등과 둘 사이 경쟁을 다루는 문학을 비롯해 정치화된 청년운동(p.262)등 바이마르공화국 내 가장 통절한 요소로 청년의 정치사를 꼽는다. 청년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한 나치에게 청년들은 거대한 잠재적 표(p.263)였고, 우편향은 심화된다. 책의 마지막 문단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막을 정리하는데 지금까지도 그 영향은 계속 회자된다.

 

『바이마르 문화』는 양차대전 사이에 만개했던 바이마르 공화국의 탄생과 몰락을 다룬다. 책의 부제인 “내부자가 된 외부자”는 “바이마르공화국의 내부자들은 언제나 독일제국에 충실했던 보수주의자들이고, 공화국의 문화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외부자들이었는데 역사적 정황에 의해 내부로 들어오지만 결코 내부자가 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시인들을 불러내는 3장이었다. 말테에게 열광하던 때가 생생하다. 나는 바보인가 자괴감 들며 읽었던 릴케, 두이노의 비가 첫줄을 무한히 반복하며 릴케를 우러르던 시기가 있다. 그는 천사인가, 무엇인가. 그런데 모국어로 읽는 그들도 난해하다는 부분에 소심하게 후련하고 안도한다. 저자는 350쪽 내외(정치사 제외하면 270쪽)의 간결한 분량 안에 방대한 문화사를 추리고 연결한다. 밀도가 확연히 높아져 느슨한 문장이라고는 없고 독자는 행간의 숨은 의미를 찾아서 스스로 주석을 매기며 읽어나가게 된다. 등장하는 인물이나 예술의 각 분야는 따로 한 권의 책과 맞먹는 무게로 독자를 압박한다.

 

그럼에도 저자가 집필한 흥미로운 역사는 과거에 묶이지 않고 끊임없이 현재로 밀려온다. 지금 이 순간과 곧 다가올 미래를 근심하게 만들고, 반복되는 역사의 패착을 두렵게 바라보도록 한다. 화려하게 피어난 문화 직후에 연결되는 정치적 내리막길은 예기치 못하는 가파름을 보여 날개를 필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면 무시무시한 추락을 우리는 막아낼 수 있을까, 위험 신호나 전조에 민감할 수 있을까, 이쯤부터는 더욱 깨어있어야 한다고 서로를 믿고 돕고 변화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작년 2월에 로쟈 이현우 선생님의 강제독서 겨울 학기에서 읽었다. 지금 다시 읽으며 그 사이에 일어난 변화의 폭에 놀란다. K문화의 정점을 누렸고, 노벨 문학상 수상에 한껏 고무되는 찰나에 문화 외적인 부분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우리는 잠식당한다. 고난 끝에 새로운 희망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요즘이다. 방대한 사례와 자료를 재조직하여 매력적인 비유와 직관으로 통찰하는 중요한 저작 『바이마르 문화』를 추천한다.

 

 



 책 속에서> 


몇 달 후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의 수상이 되었고 바이마르 사람들은 흩어졌으며, 그들과 함께 바이마르 정신은 내적으로 변화하여 이솝 우화가 되거나 강제수용소에서 죽음으로 소멸했다. 다른 이들은 베를린에서 문 앞의 노크 소리 뒤에, 또는 스페인 국경에서, 파리의 임대아파트에서, 스웨덴의 어떤 마을에서, 브라질의 도시에서, 뉴욕의 호텔방에서 자살로 바이마르 정신을 소멸시켰다. 그러나 또다른 자들은 바이마르 정신을 실험실에서, 병원에서, 언론에서, 무대에서, 대학에서 소생시켜 위대한 발전과 지속적인 영향력을 얻게 하여 망명지에서 이 정신의 진정한 고향을 찾아주었다.(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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