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조하면 지는거다, 나는 침착하다, 라고 거듭 새기며 읽기 시작하였는데 제목을 볼 때마다 초조해지는 거다. 본문 첫 장인 17페이지에 처음 나온 ‘초조한 마음’은 27페이지에 두 번째로 등장하였고, 제목이 반복되는 게 특이해서 번호를 매기며 읽다 결국 중단하고 말았다. 작가는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끈질기게 동어반복하며 경종을 울린다. 시작부터 끝까지. 『초조한 마음(이유정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3, 1939, 479면 분량)』은 슈테판 츠바이크가 생전에 완성한 유일한 장편 소설로 25세 현역장교 호프밀러의 심리에 현미경을 대로 인간의 보편적 욕구와 관계 맺기의 역학을 분석한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최고의 전기 작가이자 심리소설의 대가로 <마리 앙트와네트>, <발자크>등을 썼으며 시, 중.단편 소설, 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다. ‘유럽 정신의 대표’라고 불린 츠바이크는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이민을 떠난지 4년 만에 “나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시대는 내게 불쾌하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기병대 현역 장교인 안톤 호프밀러의 소대가 헝가리 국경의 주둔지가 위치한 소도시에 정착하고 몇 개월이 지나서다. 그는 모든 것이 익숙해지자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케케스팔바의 가족이 궁금하다. 만찬에 초청받아 낯선이들 가운데 앉기까지도 수습해야 할 일들이 돌출했으나 멋진 저택의 호사스런 환대는 다른 세상에 입성한 듯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황홀한 시간은 살같이 흐르고 일어나야 할 때가 되어서야 케케스팔바의 딸, 에디트가 기억난 그는 마지막 춤을 청한다. 곧이어 경악하는 눈빛, 경련과 울음이 터지며 소란이 이어지고 사촌 언니인 일로나는 그녀가 걷지 못한다며 “그 가엾은 아이에게 춤을 청했다고요?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p.36)하고 질책한다. ‘마법의 성’(p.31)은 ‘저주스러운 집’(p.37)으로 변하였고 도망치듯 저택을 나서는 그에게는 첫 번째 탈출이 된다.
“모든 일은 어리석은 행동에서 비롯되었다.”(p.19)는 본문의 첫 문장이 첫 번째 사건을 지칭한다. 민감한 그는 어리석은 행동이 잊히지 않고 회자되며 영원한 웃음거리가 되리라는 걱정에 사로잡혀 사과하는 의미로 꽃을 보낸다. 다시 화해의 초청을 받으며 관계는 진척을 보인다. 날듯이 달리던 딸이 기구에 묶인 몸이 되던 날부터 아버지는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에디트의 사촌 언니 일로나를 곁으로 불렀고, 콘도어 박사를 주치의로 모셨다. 케케스팔바는 소위가 제 3자 입장에서 박사에게 에디트의 치료 가능성과 완치 시기를 확답 받아 달라는 특별한 청을 하고 호프밀러 소위는 거절하지 못한다.
소위의 배웅을 받으며 콘도어 박사는 케케스팔바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레오폴드 카니츠’라는 유대인 소년, ‘착한 카니츠’라 불리던 그가 귀족 ‘라요스 폰 케케스팔바’가 되었는지의 짧고도 긴 역사다. 투철한 목적과 속임수로 한 번의 서명으로 성을 빼앗데 성공한 유대인 카니츠는 느닷없는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자신의 상황과 닮아있는 그녀를 아내로 맞는다. 그 후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향한 두 번의 비극이 차례로 케케스팔바를 강타한다. “케케스팔바의 우울한 눈빛이 헝가리 귀족의 것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비극적인 투쟁을 치르면서 강렬해진 동시에 지쳐버린 유대 민족의 눈빛임을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인가?”(p.187)라고 소위는 뒤늦게 일가의 비밀을 알아차린다. 케케스팔바 가족을 통해 유대인 문제를 짚고 있다. 소위는 치료 가능성에 매달리는 케케스팔바를 보면서 매번 그를 ‘무력하게 만드는 그 저주스러운 뜨거운 물결’(p.203)인 연민을 느끼고 책임질 수 있는 선을 넘고 만다. 의사의 경고를 무시한 행동은 혹독한 댓가를 치르게 된다. 연민에서 비롯된 거짓말 때문에 에디트가 행복해하지 않았던가 라며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일은 결코 죄나 불의가 될 수 없었다!”(p.216)는 자기만의 결론은 책임회피와 만났을 때 불행의 전조일 뿐이다.
작가는 콘도어 박사의 입을 빌어 양날의 칼을 가진 ‘연민’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연민은 무관심보다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통찰은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다. 두 가지 종류의 연민이 있으며 그 중 하나는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으로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에서 가능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진정한 연민은 감상적인 것과 거리가 먼 창조적 연민으로, 마지막까지 함께 갈 수 있고 어떤 비참한 최후도 기꺼이 동행할 끈기를 동반한다.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로 콘도어는 치료 실패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된 환자와 결혼함으로 책임을 감당하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은 극단에 있는 연민의 증거인 호프밀러와 콘도어 박사를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소설은 장악력 최고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줌으로 작가의 기량에 감탄케 한다. 장편 소설이 부나 장 구분도 없이 연속되고 있음에도 한 장면의 마지막 문장과 호흡이 전환되는 첫 문장은 드라마의 다음 편처럼 독자를 빠져들게 만든다. 말 그대로 읽어야 한다는 초조한 마음이 고조되어 인물에, 사건에, 위기와 갈등에 긴장하고, 잠깐씩 맞는 화해 분위기에 함께 젖어들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를 반복한다. 작가는 심리소설의 대가라는 칭호에 걸맞게 작중 인물의 감정 변화를 뭉뚱그리는 일 없이 세밀하게 파고들고 낱낱이 분해한다. 호프밀러는 그리움이나 상심보다도 더 쓰디쓴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바로 원치 않는 사랑을 받는 고통, 그 집요한 열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p.281)이다. 불행한 사람이란, 하고 자문할 때 성별에 따라 차이를 두는 관점은 동의하기 어려우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수용되는 부분이다.
작가가 살아냈던 시대와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 소설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기에 한편으로는 페이지 터너 급의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어떤 의미를 감추었을지를 더 묻게 된다. 당연히 흥미가 주는 아니었고 가독성까지 탁월하게 시대를 기록하고 있는 작품임을 발견한다.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몇 달은 소설 후반에 전쟁 발발로 이어지고 주인공은 개인의 잘못과 그로인한 죄책감을 집단적 고통이라는 더 큰 비극 아래에 묻지만 결국은 “그러나 그날 이후로 나는 양심을 기억하는 한 그 어떤 죄도 잊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p.463)로 소설을 맺는다. 불리한 증언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하여도 ‘마음의 짐’(p.461)을 덜어주지 못한다는 깨달음이다. 소설은 액자식 구조로 작가가 우연히 만나게 된 주인공 호프 밀러의 과거 회상을 책 속 이야기로 전달하는 형식이다. 그는 온몸으로 경험한 끝에 두려움에서 비롯하는 집단적 용기의 본질을 깨닫는다. 한 치 앞도 바라보지 못하는 무력한 개인의 분투, 위선과 허상이 역사의 수레바퀴와 맞물려 들어가는 아이러니를 숙고하게 한다. 작가가 쏟아내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매끄러운 문장으로 펼쳐내는 츠바이크의 유일한 장편을 추천한다.
책 속에서>
나는 전쟁에서 주로 집단적 용기만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대오 속에서 나오는 용기 말입니다. 이 용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특이한 요소들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허영심, 경솔함, 심지어는 무료함에서까지.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그렇습니다. 낙오될 것에 대한 두려움, 조롱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단독행동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단적으로 고취되어 있는 이들과 반대 입장에 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p.13)
하지만 당신들은 언제나 그 거짓 배려로 나를 보호해야 한다고 여기고 심지어 그 빌어먹을 배려가 나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죠.(중략) 당신들이 나를 짐승의 시체처럼 침대에 눕혀놓고 방을 나서면서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 나도 잘 알고 있어요. 눈을 위로 치켜뜨고 ‘저 불쌍한 것!’ 이라고 하면서 한숨을 짓겠죠. 그러면서 당신들이 한 시간, 두 시간을 ‘불쌍하고 아픈 아이’를 위해 희생했다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겠죠. 하지만 나는 희생을 바라지 않는다고요! 나는 당신들이 날마다 나를 동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싫단 말이에요. 연민은 필요 없어요. 그러니 앞으로 연민은 거부하겠어요! 오고 싶으면 오고, 오고 싶지 않으면 오지 마세요! 하지만 군마 심사 같은 엉터리 이야기를 꾸며대지 말고 솔직하게 말하란 말이에요! 나는······나는 당신들의 거짓말, 당신들의 그 끔찍한 배려심은 더 이상 못 견디겠어요!“(p.102)
그 일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그에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의 내면에서 그가 어릴 때부터 신봉하던 ‘돈’이라는 신이 죽어버린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오로지 ‘자식’뿐이었습니다.(중략) 그동안 돈을 모으는 데 쏟은 열정을 그때부터는 돈을 쓰는 데 쏟았습니다. 어쩌면 소위님이 그를 점잖은 귀족이라고 말한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그때부터 놀라울 정도로 금전적 이익이나 손실에 무관심해졌거든요. 아무리 많은 돈으로도 아내를 구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는 돈을 경멸하게 되었던 것입니다.(p.184~185)
“(전략)성인이라면 어떤 일에 관여하기 전에 자신이 어디까지 함께 갈 건지부터 먼저 생각해봐야 합니다. 남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죠! 물론 당신이 좋은 의도로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해준 건 압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강경책을 쓰건 회유책을 쓰건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입니다! 연민이라······좋죠! 하지만 연민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인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은 그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으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합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는 것이 아닌 남의 고통으로부터 본능적으로 자신의 영혼을 방어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연민이란 감상적이지 않은 창조적인 연민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힘이 닿는 한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견디며 모든 것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연민을 말합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만이, 비참한 최후까지 함께 갈 수 있는 끈기 있는 사람만이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p.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