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낭만적인 제목이라니. 『밤으로의 긴 여로』, 제목이 보여주는 서정적인 이미지는 사랑과 설렘, 기대를 간직한다.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행복한 연인의 한 때도 상상케 하듯, 길지 않은 분량을 아름다움으로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읽어나갈수록 제목은 변주되고 마침내 선명해진다. 작품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인 인생을 아침부터 깊은 밤, 하루라는 시간으로 요약한다. 타이론 일가의 일상적인 하루가 가져본 적 없는 집 대신 잠시 머무는 용도의 여름 별장에서 펼쳐진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집이 없는 삶, 부유하는 삶이 끝없이 피로를 누적한다. 평범한 듯 맞은 아침은 시간이 흐르며 전조와 복선을 쌓고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면서 고통스럽게 전진한다. 작가는 자기 삶의 맨얼굴을 기꺼이 직면한다. 감히 엄두내기 어려운 치열한 기록으로 작가는 애도의 서를 완성한다.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민승남 옮김, 민음사, 2002, 1956, 244면 분량)』는 죽음으로 향하는 길고 고단한 여행길을 압축한다. 선택한 적 없는 여행이나 그 끝에 놓인 건 밤, 불통, 절망, 죽음이다. 침몰하는 배에 앉아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결기도 보인다. 두려움에 맞서며 나아져야 한다고, 잘못을 번복하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애원한다. 그들은 폭발하듯 분노를 내지르다가도 이내 자신이 더 상처받으며 사과한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사랑하는 이들을 눈앞에서 잃어가는 고통을 작품은 처연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희곡은 총 4막으로 타이론의 여름 별장 거실에서 시작한다. 가장인 제임스 타이론과 아내 메리, 맏아들 제임스와 막내아들 에드먼드가 보내는 하루는 가족이 통과해 온 과거와 짐작 가능한 미래를 동시에 비춘다. 타이론은 아내가 다시 돌아와 사랑스런 예전 모습을 되찾았다고 기뻐하며 한 마디 더 보탠다. “그러니 계속 노력해 줘요.”(p.19)라고. 일상적인 말, 사소한 언급에도 메리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에드먼드를 낳고 진통제로 몰핀을 투여받은 후 중독자가 된 메리는 집에 돌아왔으나 염려하고 의심에 사로잡힌 가족들의 시선을 받는다.
그녀는 남편을 원망한다. 사랑에 빠져 이른 나이에 시작한 결혼생활은 순회공연을 다니는 남편을 따라 호텔을 전전하며 이동하는 삶이었고, 병으로 한 아이를 잃고 중독이 되는 등 불행은 연거푸 다가왔다. 타이론의 돈에 대한 집착, 극단적 인색함은 아일랜드 이민자의 자식으로 혼자만 되돌아간 아버지 때문에 고생했던 어린 시절 기억의 상처에서 비롯했다. 결핵에 걸린 에드먼드를 위해서도 그는 최대한 치료비용을 아끼고 싶다.
형인 제임스는 무력하고 방탕하지만 에드먼드의 우상이다. 내세울 것 없이 술에 의지하지만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한결같다. 그러나 스스로 한결같은 사랑의 베일을 벗기고 진심을 노출한다. 넌 나의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내가 너를 만들었다고 하던 제임스는 내가 너를 타락시켰다고, 일부러 그랬다고 밝힌다. 읽고 또 읽은 흔적을 간직한 책들 곁에서 시를 간직하고, 시를 쓰고, 시로 말하던 에드먼드는 그 밤, 병에 갉아 먹히고 있는 그 밤, 애증의 가족과 함께다. 질투, 원망, 분노가 한없는 사랑 아래에서 들끓고 있다.
그들은 모두 이유가 있다.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는지 아연하다. 대적하는 동시에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마약이, 술이, 돈이나 또 다른 대상은 현실을 견디게 하는 도피처가 된다. 패배를 인정하듯 운명을 생각한다. “운명이 저렇게 만든 거지 저 아이 탓은 아닐 거야. 사람은 운명을 거역할 수 없으니까. 운명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써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을 하게 만들지.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진정한 자신을 잃고 마는 거야."(p.72)라고.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가 인장과도 같은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작가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일들”(p.72)이 어떻게 일어나고 말았는지 기록으로 남긴다. 작가 자신과 가족을 일대일로 대응시킨 인물들은 영원히 상영되는 활동사진처럼 끝없이 고통 받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아서 밀러는 작가의 마지막 희곡이자 리얼리즘이 가장 뚜렷하게 구현된 작품이 가족과 자신의 삶에 대한 “위대한 용서”를 담고 있다고 평했다. “미국 현대 연극의 아버지”라 불린 유진 오닐은 새로운 극작 기법과 끊임없는 실험으로 후배 극작가들의 영원한 영감과 영향력의 원천이 되었다. 『밤으로의 긴 여로』는 미국에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극작가이자 사후 3년째 되던 해에 수상한 것을 포함하여 총 4회 퓰리처 상을 받은 작가 유진 오닐의 대표작이다.
책에서 안개의 비유는 특히 인상 깊다. 어머니 메리는 “안개가 얼마나 자욱한지 길이 안 보이는군. 세상 사람들이 전부 지나가도 모르겠어. 항상 이랬으면 좋겠다. 벌써 어두워지고 있어. 곧 밤이 될 거야. 다행히도.”(p.120)라고 안개와 밤을 구한다. 작가의 대변자인 에드먼드는 “전 안개 속에 있고 싶었어요. 정원을 반만 내려가도 이 집은 보이지 않죠. 여기에 집이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거죠.”(p.158)라고 말한다. 『밤으로의 긴 여로』를 탈고한 작가는 자신의 사후 25년 동안은 발표하지 말고, 그 이후에도 절대 무대에 올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하는데 ”여기에 집이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그렇게 산정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책은 인물의 눈빛과 표정, 몸짓과 떨림까지 마치 눈앞에 보이듯이 생생하게 전달하기에 아름다운 은유와 적확한 문학 인용문들까지 더해 비극의 색조를 짙게 만든다. 작품을 읽고 작품 설명을 마치고 나면 비극을 두 번 읽은 듯 마음이 아프다. 마침내 작품은 고통을 고통으로 승화시켜 비로소 편안하게 놓아주고 달래는 애도가 된다. “빌어먹을 호텔 방에서 태어나 호텔 방에서 죽는군.”이라는 작가의 마지막 탄식은 삶 자체가 연극과도 같았던 거장의 대사로 들린다. 밤이 다가오기 전에 읽어야 할 작품, 『밤으로의 긴 여로』를 추천한다.
책 속에서>
에드먼드 (앞을 응시하며) 전 안개 속에 있고 싶었어요. 정원을 반만 내려가도 이 집은 보 이지 않죠. 여기에 집이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거죠. 이 동네 다른 집들도요. 지척을 구 분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도 만나지 않았죠.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들렸어요. 그대 로인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바로 제가 원하던 거였죠. 진실은 진실이 아니고 인생은 스 스로에게서 숨을 수 있는, 그런 다른 세상에 저 홀로 있는 거요. 저 항구 너머, 해변을 따라 길이 이어지는 곳에서는 땅 위에 있는 느낌조차도 없어졌어요. 안개와 바다가 마치 하나인 것 같았죠. 그래서 바다 밑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오래전에 익사한 것처럼. 전 안개의 일부가 된 유령이고 안개는 바다의 유령인 것처럼. 유령 속의 유령이 되어 있 으니 끝내주게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아버지가 걱정스러우면서도 못마땅해하는 눈길을 보내는 걸 보고 조롱하듯 히죽거린다.) 미친놈 보듯이 그렇게 보지 마세요. 맞는 말이니 까. 세상에 인생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어딨어요? 인생은 고르곤 셋을 하나 로 합쳐놓은 것과 같아요. 얼굴을 보면 돌로 변해 버린다는 그 괴물들 말예요. 아니면 판 이거나, 판을 보면 죽게 되고-영혼이 말예요-유령처럼 살아가게 되죠.(p.157~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