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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zinga님의 서재
  • 이중 하나는 거짓말
  • 김애란
  • 14,400원 (10%800)
  • 2024-08-27
  • : 131,816

초중등 독서 교실에서 학생들과 만나는 첫 시간, 진진진가 게임으로 자기소개를 하곤 했다. 네 개의 문장에서 하나의 거짓을 찾아내기 위하여 아이들은 귀를 기울이고 나름대로 가늠해 본다. 불쑥 호기심을 드러내는 경우도, 지루함을 내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세 개의 옳은 문장과 하나의 틀린 문장은 거울처럼 가장 먼저 자신을 비춘다. 나를 반추하는 짧은 시간 후 가볍고 재미있게, 어색함을 녹이며 넘어가는 활동이었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에서 다섯 개의 문장은 부유하다 사라지지 않는다. 각각의 문장이 지금까지의 시간을 요약하고 나의 상징물을 만들어낸다. 명확하고 단순하게 정렬한 문장에 소설은 노크한다. 명백한 진실 안에 어떤 거짓이 침묵할 수 있는지, 거짓 안에 어떤 갈망이 웅크리게 되는지, 애초에 규칙을 위반하고 약속을 흩트리는 일은 없는지 살핀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 2024, 240면 분량)』은 김애란의 두 번째 장편 소설로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13년 만에 출간되었다. 23년 전 데뷔하는 순간부터 주목받으며 젊은 거장이라 불려온 작가는 네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 소설과 산문집에 더해 또 하나의 선물을 독자에게 전한다. “빛과 거짓말 그리고 그림에 관한 이야기”라고 언급했던 소설은 생각보다 가뿐한 분량으로, 그러나 기대 이상 묵직한 화두로 독자 손에 들린다. 후기에서 작가는 <바깥은 여름>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물들의 남은 삶을 응원하는데 그 응원은 인물을 넘어 독자에게 뻗어온다. 삶은 가차 없을지언정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주인공인 지우, 소리, 채운이 차례로 등장한다. 지우의 첫 장면은 선호 아저씨를 기다리는 파출소다. 소리는 전입생 채운이 자기 소개하던 교실에서, 채운은 현재 머무는 사촌 동생의 방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난하고 무탈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은 잠시고 나쁜 일은 계속 일어난다는 지우는 그림 그리기라는 ‘할 일’을 자신에게 준다. 엄마 지연이 해주던 이야기를 재생하면서. 지우는 도마뱀 용식이가 자라는 과정을 그려서 카페에 올린다. 제법 반응이 좋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연히 이를 보게 된 채운은 신경이 쓰인다. 채운은 사건이 일어난 그날 이후 이모 집에서 지내고 있다. 부상으로 축구를 그만 둔 채운은 영어 공부 앱에 따라 문장을 만들면서 자신의 마음을 기록한다. 자기 대신 교도소에 있는 엄마와 깨어날까 두려운 아버지, 불확실한 내일을 생각할 때 마음을 의지할 대상은 반려견 뭉치 뿐이다. 독립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지우는 도마뱀 용식을 소리에게 맡긴다. 소리도 입시 미술을 준비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지금은 그 손이 다른 걸 감지하는 특별한 손이 되었다. 특별함이 빠져나갈 때까지 소리는 만나고 떠나보내고, 다시 진실의 모양을 가진 오해를 바로잡는 순간을 맞는다.

 

소설은 고등학교 2학년인 세 아이와 그 가족을 중심으로 방학 기간 중에 일어난 일을 담고 있다.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지우, 채운, 소리가 번갈아 등장하고, 현재와 과거를 왕래하며 사건과 감정을 서술한다. 막이 빠르게 바뀌는 연극을 보는 듯도 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어떤 어른은 아이들에게 길잡이나 바람막이 역할보다는 길에 서서 위협할 뿐 아니라 길을 막고, 벼랑 끝에 세우는 역할을 한다. 또 다른 어른 역시 아이 곁에서 함께 고통받을 뿐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한다. 결국 채운의 엄마 태선은 ‘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된다’(p.180)며 지금 이대로가 서로를 구해준 거라고 현실을 선택한다.

 

아이들이 처한 현실은 감당하기 수월하지 않아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소설은 이야기 안에 두 번째 이야기를 품은 겹 구조로 만화(지우)나 영어 문장(채운), 회상과 고백(소리)으로 삽입된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이야기란 무엇이고 어떤 쓸모를 가지는지 거듭 변주하며 주제를 견인한다. 이야기의 원형은 처음에 지연이 어린 지우에게 읽어주던 옛이야기에서 “빛이 새어나왔습니다”(p.11)라는 구절의 빛과도 같은 숭고함이나 완전함을 간직한다. 소설은 이 빛을 빼앗겼다가 서서히 회복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엄마(지연)를 잃은 지우는 이야기를 지으며 그리움을 달랜다. 만화를 그리는 지우에게 이야기는 ‘끝이 있어서’가 중요한 이유고 소리는 ‘늘 시작되기 때문’(p.66)이라고 다른 미덕을 꼽는다. 끝이 없는 이야기의 암담함과 시작조차 안 되는 이야기의 허무 중에서 두 아이는 마음을 잡지 못한다. 그래도 이야기가 가장 무서워질 때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때라고, 그 안에 갇힌 듯한 채운을 향해 소리는 손을 내민다. 둘 만의 비밀을 간직하고서.

 

겹구조는 다시 한 번 층을 만든다.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고, 만화의 마지막 화가 올라오면서 작은 빛이 드리운다. 스스로를 속이고 회피했던 내 안의 진실을 인정하는 일도 필요했다. 감춰두었던 마음을 아프게 고백할 때 그에 대한 답신처럼 빛은 하늘에서조차 신호를 보낸다. “그 빛은 마치 옛 화가들이 누군가의 눈동자에 빛을 새겨넣을 때 붓 끝에 묻힌 아주 적은 양의 흰 물감 같았다. 소량이지만 누군가의 영혼을 표현하는 데 꼭 필요한.”(p.196) 그렇게 조금씩 조명 받으며 아이들은 걸어 나가고 자라 나가게 될 것 같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읽기 위한 최소한의 예로 서둘러 <달려라, 아비>와 <바깥은 여름>을 읽었다. 여름이 끝나면서 읽던 소설이 가을 초입 새로운 작품으로 멋진 매듭을 지은듯하다. 청소년 성장 소설 같은 인상이 강하지만 부모 세대의 해결하지 못한 상처도 진지하게 다루고 있어 공감의 폭은 확대된다. 책을 덮으며 회전무대 팝업 북을 떠올린다. 좋아하는 팝업 북에 회전무대까지 장착되어 기쁨을 배가시켜서 아끼지만, 삶은 신비로운 오르골 소리를 배경음 삼지 않는다. 무대가 돌아갈 때 빈정거리고 비웃는 말들, 속이고 타협하는 말들, 학교나 가정이라는 공간을 조금씩 무너뜨리는 일상의 공격이 어느 순간 재현될까 조마조마했다.

 

간결하게 농축하는 작가의 문장은 소설 속 시간과 공간으로 단번에 끌어들인다. 그들의 마음이 전이되어 함께 아슬아슬하고 같이 괴롭다. 그래도 결말 이후에 계속될 이야기는 독자 마음에 말줄임표로 찍히는데 점들은 어두움 보다는 빛으로 기운다. 살아있는 만큼 남아있는 과제를 직면해갈 때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갈 것만 같다. 규칙에 따라, 규칙에 반하여 발설된 문장들이 이야기가 되었고, 마치 게임처럼 다른 문장, 다른 마음에 닿기 위해 바통을 들고 달렸다. “게다가 어떤 이야기는 한 번에 몰아들으면 안 될 것 같았다.”(p.228)는 말처럼 숨 고르게 하는 작품, 때로 벅차서 한 번에 몰아읽기 어려운 이 소설을 추천한다.

 



책 속에서>


-그냥······이야기가 좋아서?

순간 소리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래? 넌 이야기가 왜 좋은데?

지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끝이······있어서?

소리가 신기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난 반댄데.

-뭐가?

-난 시작이 있어 좋거든. 이야기는 늘 시작되잖아.

지우가 잠시 먼 데를 봤다.

-이야기에 끝이 없으면 너무 암담하지 않아? 그게 끔찍한 이야기면 더.

소리도 시선을 잠시 허공에 뒀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시작조차 안 되면 허무하지 않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잖아.

-그런가?

-응.(p.66~67)

 

‘이야기가 가장 무서워질 때는 언제인가?’

소리가 슬픈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때.’

그런데 채운은 지금 무서운 이야기 속에 갇혀 있는 모양이라고, 거기서 잘 빠져나오도록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리는 곧 채운과 만날 예정이었고, 그건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다는 뜻이었다.(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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