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논리적이고 정연한 이론의 세계와 다르다. 오차를 최소화하고 검증을 마친 이론은 고고하게 자신을 넘겨준다. 근사한 활공을 허락한다며. 명백한 이론은 우리를 안심시키는 동시에 위축케 한다. 이론이 일 더하기 일의 답을 구할 때 정답에 미치지 못하리라는 우려는 때때로 죄책감으로 변해 심정에 낙인을 새긴다. 오래되어 무늬처럼 익숙하나 애초에 흉터였던 낙인이다. 앤드류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김이선 옮김, 문학동네, 2008, 2019, 280면 분량)』은 이상과 현실, 이성과 본능, 정상과 비정상, 다른 각도의 시선과 각자가 구축한 이론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충돌하였고 견디어냈는지 그려 보인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앤드류 포터의 데뷔작으로 단편소설 부문 플래너리 오코너상을 수상하였다. 작가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단편 작가’, ‘단편 소설의 진정한 마스터’, ‘타고난 스토리텔러’ 등 많은 찬사를 받았으며 올해 15년 만에 두 번째 소설집 『사라진 것들(2024)』을 출간하며 기대를 높이고 있다.
돌아보면 지나온 날들이 마냥 평탄했던 적이 있었나. 시간은 물 흐르듯 흐르는 법이 없다. 격류에 튀었던 물방울은 지금, 그리고 내일에 고스란하다. 못본 척 해도 마찬가지이며 무의식 깊이 묻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그 시간을 불러내어 말을 거는 게 나을지 모른다. 말을 거는 톤은 태연하기도 담백하기도 하며 때론 예를 갖추듯 정중하다. 그래서 원망하거나 미화하는 차원을 넘어서고 흰 천에 얼룩이나 습기가 베어 나와 흔적을 남기듯 상황 자체, 사건 자체, 또는 시간의 지문을 찍는다. 그렇게 찍힌 이야기들이다. 자신이 판 구멍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가는 아이러니와 고통, 구멍은 벌을 닮았는데 벌은 주변으로 번지고 죄와 벌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 퍼지고 확장되는 통증이다.(구멍) 도처에 있는 구멍을 아슬아슬 피해야 하는 삶이다. 우리는 구멍과 싸워 이길 수 있나, 요즘은 대놓고 싱크홀인데, 송두리째 먹어치우기도 하는데. 첫 단편 <구멍>은 지금도 삼키고 있는 구멍이다. 구렁텅이와 같은 구멍도 있다. <폭풍>에서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p.246) 바로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기쁨이라고 했다. 이런 기쁨을 잃은 가족은 “느리고 꾸준한 종말의 과정”을 겪는데 들여다보자면 그곳엔 달라진 삶이 있다. “즐거움은 덜해졌고 고통은 그 구렁텅이의 깊이가 한없어진 듯”(p.240)하며 혹시 빠지지 않을까 늘 경계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마침내 빠져버리기로 마음먹을 수도 있을 구렁이다. 이럴 때 구렁은 함정을 닮았는데 곁에 있는 한 사람이 구원의 줄을 건넬 때 결말은 달라진다. 한 사람이 필요치 않은 이가 있을까.
누구나 정상이고자 안간힘 쓴다. 다른이의 시선이야 관심 없다는 듯 자못 무심한 외양을 취할 경우에도 ‘비정상’은 주홍글씨이며 시대불문하고 무언의 고발이 아우성이다. 뜨거운 아우성과 차가운 시선을 나로 인해 가족이, 가족으로 인해 내가 감당하는 경우를 본다. 감당한다 생각했는데 아직 어렸기에 보여지는 것과 실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코요테를 길들여 방에서 키울 수 있으리라 낙관한다.(코요테) 지금껏 참아준 보답이라며 “우리 이제 된 거지?”(p.153)라고 작별인사를 건네는 더그 형과 죽은 강가의 개들을 보러가곤 했던 때를 회상하며 이웃의 위로가 위로인지, 위로의 방향은 안착하지 못한다.(강가의 개) 선택하지 않았지만 굴레에 갇혔던 아미쉬 아이들 레이철과 아이작 킹도, 그들을 대하는 자신도 비정상임을 자각하지만 ‘믿음과 타이밍’(p.166)이 아무리 잘 받쳐줄지언정 궤도 변경은 실패한다.(외출) 비정상이어도 좋다. 현 상태로 충분하다고 여길 때 축복은 선택하는 자의 몫이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p.215)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하는 <머킨>의 마지막 문장들은 감동을 준다. 그는, 그들은 대체 왜 그랬을까 하는 비판이나 판단을 하기는 쉽지만 가리키는 손끝에 누가 있을지도 내가 없으리라고도 장담하기 어렵다. 두려움과 불안, 회피와 합리화가 결국은 직면케 하는 현실은 결말에서 다시 시작할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아술)
선남선녀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도다, 라는 설정에 독자는 안도하지만 운명이라고도 일컫는 불가항력적인 힘은 한잔의 차로 마법을 일으킨다.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내적 알람이 울린다. 표제작인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에서 헤더는 시험을 끝낸 유일한 학생, 풀이를 제출한 유일한 학생이며 시험을 통과한 유일한 학생이다. 물리학과 교수인 로버트는 물리학자에게 가장 큰 방해요인은 “자만심”이라며 “뭔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발견의 기회를 없애버리게 되니까요.”(p.92)라고 덧붙인다. 소설은 헤더가 이해하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응시하고 선택함으로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게 되는 여정을 그린다. 이 짧은 분량으로 이토록 심도있게 삶을 반추할 수 있다니, 독자는 “가장 고통스럽고 내밀한 상실들이 저장되어 있는 마음 한편”(p.126)까지 다다른다. 소설집에서 가장 손꼽는 명작이다.
작가는 열 개의 단편 모두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한다. 연령도 성별도 다양한 “나”는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더는 묻어둘 수 없는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는 독자를 상정하지 않은 일기나 독백과도 같지만 그때 그 순간의 진실에 최대한 밀착하겠다는 의지를 실현한다. 그런 용기는 최소한 한 발 나아가기, 명명하기, 그렇게 함으로 로버트가 지적했던 자만심의 반대편에 위치한 겸손한 발견의 기회를 획득한다. 작가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시종일관 간결하게 전한다. 긴밀하고 아름다운 문장은 거듭 멈추어 생각하게 만들고 인물간 감정이 충돌할 때조차, 상황이 안타깝게 치달을 때조차 넉넉한 여백을 확보한다. 가상과 실제, 소설과 현실, 이야기와 삶은 경계를 지우고 녹아든다. 단편의 제목을 주의깊게 보면서 작가가 화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방향을 살펴보는 것, 제목이 본문에 등장하는 방식, 함의와 압축, 반복과 상징을 헤아리는 과정은 독자에게 각별한 인상으로 남을 것이다. 모든 것이 비쳐 보이는 듯 투명한 소설이 독자를 보듬는다. 우리에게 소설이 필요한 이유, 문학의 효용을 일깨우는 작품이기에 거듭 추천한다.
책 속에서>
죄의식은 우리가 우리의 연인들에게 이런 비밀들을, 이런 진실들을 말하는 이유다. 이것은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며, 그 이면에는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떻게든 일말의 되의식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는 추정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죄의식은 자초하여 입는 모든 상처들이 그러하듯 언제까지나 영원하며, 행동 그 자체만큼 생생해진다. 그것을 밝히는 행위로 인해, 그것은 다만 모든 이들의 상처가 될 뿐이다. 하여 나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다. 그 역시 내게 그러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요사이엔 문득 로버트를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나는 간신히, 그에 대한 기억을 나의 가장 고통스럽고 내밀한 상실들이 저장되어 있는 마음 한편에 놓아둘 수 있게 되었다.(p.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