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 니더작센 주의 주도인 하노버의 자치구인 린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유대인으로, 부친은 그녀가 일곱 살이 되던 해에 사망했습니다. 모친은 열렬한 사회민주당원으로 매우 진보적인 인사였습니다. 베를린에서 중등 교육을 마친 아렌트는 독일 마르부르크에 위치한 공립 연구 대학인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그 유명한 마르틴 하이데거의 지도를 받았고 특이하게도 그녀는 자신의 지도 교수인 하이데거와 연애를 시작합니다. 1929년이 되자, 그녀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하이델베르크에 소재한 공립 연구 대학인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 당시의 지도 교수는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 카를 야스퍼스로, 그에게도 역시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4년 뒤인, 1933년에 아렌트는 '반유대주의'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혐의로 당시 비밀 경찰인 게슈타포에 의해 투옥되기는 했으나, 곧 풀려나왔고 이때 그녀는 독일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향하게 됩니다. 유럽의 급격한 정치적 변화로 말미암아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고 이때 바로 독일군에 의해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구금되지만, 곧 그녀는 탈출하게 됩니다. 그녀가 수용되어 있던 강제 수용소는 프랑스 남부의 캄프 베르네로, 당시 프랑스 남부 지역에 들어선 비시 정권의 혼란으로 그녀는 극적인 탈출을 감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툴루즈와 몽토방을 거쳐, 1941년 5월 22일 그녀는 거의 맨몸으로 미국 뉴욕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이 시기의 곤궁한 생활을 경험한 그녀는 계속 글쓰기에 매진하고 싶어서 독일계 유대인 공동체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게 되는데요. 이런 활동으로 1941년 11월, 뉴욕의 독일어 유대인 신문인 아우프바우 (Aufbau)에서 일하게 됩니다. 1950년대에 들어서자, 아렌트는 1951년에 '전체주의의 기원'을, 1958년에는 '인간의 조건'을 출판하고, 1963년에는 '혁명론'을 연이어 내보냅니다. 이 즈음에 아렌트는 우연히 마르틴 하이데거와 재회하게 되고 이로부터 2년 동안, 그를 만나게 됩니다. 1961년에는 그녀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아이히만의 재판'을 보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했고, 뉴요커 (The New Yotker)에 실린 그녀의 보도 기사는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1970년에 심장마비로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한나 아렌트는 미국 사회에서 독특한 이방인으로 이는 독일인과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한데 섞지 못한 결과이기도 했는데요. 이렇게 제3자의 입장에서 그녀는 미국 사회를 비평할 수 있었고, 또한 신대륙에서조차 유대인이라는 이방인의 정체성은 스스로 학문적 성취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 책은 원제, "Responsibility And Judgement"로 지난 2003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에 초도 번역되었습니다. 제가 구입한 판본은 2022년에 출판된 3쇄본입니다.
서두에 소개된 옮긴이의 설명대로 한나 아렌트의 이 논저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은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유 불능'에 대해, 그녀 스스로 오랫동안 숙고하고 성찰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뒤에 본격적으로 나오겠지만 어떤 한 인간이 자발적으로 성찰하지 못하는 그런 '도덕적 불능'에 대해 한나 아렌트는 누구보다 큰 관심을 기울였던 철학자였습니다. 그런 이 책은 한나 아렌트 생전의 열렬한 조교였으며, 현재 미국 뉴스쿨 대학의 한나 아렌트 센터 소장인 제롬 콘이 그녀의 생전 마지막 10년의 시기, 여러 강연록과 논문 등을 묶은 일종의 선집이기도 합니다. 이 선집은 아주 단순하게, 1부 '책임'과 2부 '판단'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여기에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소위 '서구 사회의 도덕적 성찰'의 부재와 그것의 역사철학적 연유, 그리고 그러한 배경에서 독일 제3제국의 나치즘과 유대인들에 대한 잔혹한 인종 살해는 과연 우리에게 무슨 의미인가를 고찰해보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미리 약간의 개인적 감상을 늘어놓자면, 이 책의 후반부인 7장인 '심판대에 오른 아유슈비츠'와 8장 '자업자득'에서 드러난 '히틀러 졸개들'에 의한 잔혹하고 충격적인 유대인들의 학살 증거들이 낱낱이 드러날 때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말았는데요. 저는 이 대목에서 악인들은 보이는 대로 멸절시키는 수밖에 없다는 어느 유명인의 언급이 떠올라 복잡한 심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인류의 죄악인 아우슈비츠를 비롯, 이들 '절멸 수용소'의 동시대 독일인들은 역사에서 결국 배운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이러한 크나큰 죄업이 어떤 연유로 비롯되었는지 명확히 알고자 하는 노력이 전무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는데요. 여러분이 이 글의 7장을 끈질기게 일독하다보면 제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쉽게 알게 되실 겁니다. 아렌트의 이 글로 인해 일전에 읽었던 하랄트 얘너의 서사는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잔혹한 독재 정권에서 삶을 영위한 일반 사람들에게 어떠한 책임도 물을 수 없다는 인지적 가능성은 어디에서나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일 겁니다.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자신들의 '게르만주의'를 분리한다면 특히 슬라브인들과 여타 유대인들, 이들이 분류한 국적 불명의 수많은 무고한 피해자들에게는 순수한 악(惡) 그 자체였을 겁니다. 이 대목에서 한나 아렌트는 1장의 논증들을 통해, 사실상 수많은 독일인들이 '도덕의 붕괴' 상태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증명합니다. 이때의 많은 사람들이 "나치의 성공에 감명을 받았고 자신들의 판단을 스스로 독해한 역사의 평결"을 고려해 볼 수 없었다는 점이 이를 명확히 드러내는 부분이라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도덕의 총체적 붕괴'는 한나 아렌트가 자신의 글에서 좀 더 첨언되지는 않지만, 이는 나치 수뇌부와 소수인 그들을 추종하는 독일의 일반 시민들을 모두 포함하는 내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제 개인적인 의견을 보태자면, 나치에 부역했던 마르틴 하이데거나 카를 슈미트와 같은 엘리트 지식인들이 나치즘 자체를 어떤 정치적 돌파구로 여겼고, 이러한 민족적 범주 안의 배타적 인식을 방패 삼아, 국가와 민족 그리고 나치즘이라는 삼위일체를 최소한의 양심 없이, 전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입니다. 나치즘 이전의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이질적인 뼈대와 그것이 초래한 모든 사회정치적 이행 - 혹자들이 자유주의의 역겨운 껍데기 라고 말한 - 이 앞선 이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양심의 자유'라는 것이 근본적인 사유와 성찰이 배제된 채, 그저 사전적인 의미나 단편적인 심상으로만 이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음 2장에서, 저자인 한나 아렌트에 의해서 충분히 고찰 되지만 인간의 이성을 발견한 근대 유럽의 몇 세기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그 역사가 결국에는 도덕적 성찰의 황무지와 다름 없었다는 결과물은 시대와 인종을 넘어 뼈아픈 진술로 이해됩니다. 저는 이를 마약과도 같은 합리주의의 산물이라고 싸잡아 몰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사유를 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체는 어쩌면 합리성이라는 단어가 아우르는 손쉬운 개념 하에 더욱 조장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후반부인 7장에서 여실히 논증 되겠지만 아우슈비츠에서의 조직적인 독일군이 그 과학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 체계적이고 실용적인 유대인 절멸이 여러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진술은 그만큼 저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이것은 경우에 따라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혐오를 갖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이에 저자는 "2500년씩이나 된 서구의 문학, 철학, 종교 사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양심이라는 것이 현존한다는 사실에 관해서 한 목소리로 얘기하는 모든 과장된 구절들과 설교들"이 세대를 거쳐 이어져 왔다는 것을 분명한 목소리로 밝히고 있었는데요. 오래전에 소크라테스가 "불의를 행하는 것보다 불의를 당하는 게 낫다"는 소위 말하는 '실재적 악'을 거부했던 의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연유로 '나와 세계와의 관계'를 면밀히 성찰하지 못한 자들이 이룩한 정부라는 것이 어떤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짐작할 만합니다. 이를 달리 해석해 보자면, 바로 양심이 누구에게나 실존한다는 그 허구성을 애써 대변하는 듯 보이는, "상당수 인간에게 양심은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는 극적인 메타포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누군가에 의해, 예를 들면 히틀러와 같은 자들과 같이, "인간종의 생존" 혹은 "자신을 포함한 민족의 생존"을 위해, 유럽의 암세포와 같은 유대인들을 멸종시키겠다는 그런 생각이 실제로 실행되었다는 점에서, 유럽에서의 허울 뿐인 양심이라는 문제를 아주 근본적으로 고찰하게 만드는 대목이었습니다. 특히 4장에서, "그 전체주의의 통치자들이 서구 도덕의 기본 계명들을 뒤집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이었던가"라고 진술하는 장면은 그만큼 몰락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역시나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한나 아렌트는 그 당시를 돌아보며, 소위 독일 사회의 주요 엘리트들이라 볼 수 있는 지식인들과 경제인들, 혹은 사법 관료들이 자신들의 숙고된 성찰이나 의견 없이, 오로지 "총통이 원하시는 것", "총통이 일관되게 내리는 명령"이라는 전제 하나 만으로 이들은 자신들의 양심을 고려하지 않게 되었다고 진술합니다.
2장 도입에서 추동되는 이 "도덕적 질서의 총체적 붕괴'를 과거 유럽 철학의 근간에서 찾아봐야 하는지는 어느 정도 설득력을 답보하고 있습니다. 도덕의 총체적 붕괴를 거의 온 몸으로 표상하는 이 신종 살인자들이 일반인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으며, 같은 동기에서 일반적인 척 행동하고 말을 하고 있다는 전범 법정에서의 증명은 어쩌다 20세기의 유럽이 그렇게 되었는지를 되내기에 만듭니다. 아렌트의 분석처럼 오로지 참혹한 범죄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이들 '살인마들'에게만 향하는 것은 면밀한 분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도덕 법칙 내에서, 행위의 일관성과 충분한 근거 이유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국가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이에 그녀는 "정치 질서는 도덕적 고결성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 만을 필요로 한다"는 전제와 함께, 이마누엘 칸트의 입을 빌어, "한 국가를 조직하는 것의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와 상관없이 악마와 씨름을 하는 형국에서라도 그들이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기만 한다면 해결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고 있었는데요. 이는 전반적인 사유에서 철저하게 이성에 기댔던 칸트의 학문적 결과물들을 차치하더라도 저 최소한의 지적 능력이 기반이 되는 전제 조건이 존재한다면 설사 악마 뿐만 아니라 국가가 패망하는 순간에 놓이더라도 최소한 대안을 찾아볼 수는 있을 겁니다. 그래서 종교가 국가의 도덕적 질서의 구축에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한 연유에는 이것이 지식이나 진리와는 상당히 다른 조건이기 때문일 겁니다. 유럽의 가톡릭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여기에 한 장면을 대입해 본다면 히틀러의 제국이 전유럽에 확장하고 그와 더불어 유대인들이 곡소리를 내며 죽어갈 때, 로마 교황청의 주인인 비오 12세의 행적은 아침 호숫가의 뿌연 안개처럼 유럽과 가톨릭에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물론 아렌트가 평생 연구한 칸트의 내력을 빌려서, 히틀러의 나치즘이 어떤 종교적 신봉과 같은 비이성적 귀결에 이르렀다고 아주 직접적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총통'이 당시 독일인들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종교이든 정치이든 간에, 거의 거스를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그녀가 진술하는 칸트의 철학이 무엇보다 '올바른 이성'에 근거한 도덕적 법칙을 어느 정도는 옹호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모든 인간이 이런 합리성 유형, 즉 과거 칸트가 말한 바 있는 그 도덕법칙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다고 가정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물론 자신을 "졸개"와 다름없다고 밝힌 아이히만과 같은 나치의 졸개들은 이를 현실에서 여실히 부정 당했지만 어찌됐든 이들 살인자들의 예는 오로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이 대목에서 칸트가 말하는 양심의 기능이 "자기 경멸의 형태로 자신에게 위협을 가한다"는 해석은 실로 놀랄만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이는 명백히 자기 기만에 빠진 인사가 아니라면 도덕적 문제에 대한 소위 "인식과 결단"에 있어, 이 양심이 작용하는 바는 매우 의미심장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앞선 나치 졸개들과 이들에게 전무해 보이는 도덕적 법칙 내지는 양심의 결여가 단순하게 설명될 수는 없겠지만 이것이 내포하고 있는 바는 결국 정치적 질서 혹은 법칙과 도덕과 양심의 문제는 여실히 다르게 작용한다는 진실입니다. 아렌트는 이에 대해 "아무리 나치 정권이 합법적이라고 해도 그들의 죄는 남는다."고 밝히고 있었는데요. 저는 이 대목에서 왜 유럽의 정치적 유산과 그에 반하게 되는 도덕적 법칙 내지는 견제가 왜 함께 갈 수 없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매번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정치와 도덕은 다르다고 말하는 그 내심을 어느 정도는 스스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매번 도덕적 기만 위에 정권과 정부가 세워져 있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을 차치하더라도 "정권의 개"가 되는 저들. 그러니까 부역자들의 양심이 왜 보이지 않는지는 이로써 명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자인 아렌트는 앞선 논증들을 기반으로, 왜 진정한 성찰과 사유를 하지 않는 인간들이 왜 그토록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4장에서, 밝혀내고 있었습니다. 흔히 작금의 시대에도 "철학과 형이상학이 죽어버렸다"고 자주 언급되기도 하지만 칸트를 반증하여 언급되는 "사유함이라는 정신 능력"의 결과가 불확실하고 입증이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어떤 인생의 책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저자인 그녀 역시 이미, "사유가 소수만의 특권이 될 수 없다"고 명백히 진술하고 있었는데요. 아렌트의 말마따나, 자신이 철학자임을 전제하지 않고서도 이미 사유하고 있다는 고백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이 고백이 담겨 있는 대목에서, "모든 시민이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그저 권리 만을 요구하는 것은 그저 자가당착을 넘어, 이런 자들을 시민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유가 없는 자칭 시민"이라는 어구에 저는 존 듀이와 로널드 드워킨을 떠올렸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이는 사유를 하지 않는 자들에게 도덕적 양심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을 거의 확신하게 만듭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 지점에서, 왜 아렌트가 아돌프 아이히만이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깊이 숙고하지 않아 보이는 인상에 왜 그토록 의문을 갖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런 '죄악의 유산'을 이어 받은 당시의 독일인들의 그 특유의 행태를 보면서, 마찬가지로 2차 대전 이후의 일본인들의 의식 구조를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후반부 7장은 바로 그러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연합군에 항복하여 탄생한 독일의 아데나워 정권은 태생적으로 나치 부역자들을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나치에 복무한 적지 않은 자들이 정권의 구성원이 되기도 했는데요. 이점은 아렌트가 명확히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제가 가장 충격적으로 여겨진 부분이 뉘른베르크 재판과 이어지는 프랑크푸르트 아우슈비츠 재판에서 수많은 독일인들이 그 재판 과정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이것이 그저 역사의 그늘 안으로 묻혀지기를 바랐다는 대목이었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평생 자신이 독일인과 유대인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여겨 왔는데요. 그렇다면 이 장면을 목격한 그녀에게 있어 이 "독일인들"이라는 집단에 갖는 복잡한 심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유대인들이 "즉각적인 가스 주입에 죽음을 맞이하거나, 몇 달이나 지나 지독한 육체 노동에 이르러 죽음에 이르는 사례" 이외에, 역시나 모두가 짐작하듯이, 그저 재미로 사람을 살해하는 "나치의 졸개들"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입니다. 아마도 적지 않은 분들은 이들 나치의 졸개들 가운데 그래도 양심을 갖고 행동한 자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는데요. 하지만 양 재판에서 드러난 자들 가운데 그런 자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이 7장에는 무고한 유대인들이 어떻게 재미와 성적 추동에 의해 순식간에 살해되었는지 역사적 증거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유대인과 어린 소년, 소년들에 대한 충동적이고 쾌락적인 살해 동기에서,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과 동시에, "정교하게 구축된 송장 제조 공장"을 운영한 "그 아무것도 모른다는" 저들은 그야말로 악마들 그 자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서류에 싸인을 했던 자와 그런 명령을 여지없이 수행하는 부속품과 같은 그런 자들로 구분해 볼 수도 있겠지만 저 부속품과 같은 자들이 태연히 인간의 탈을 쓰고 있었다는 점에서, (대전 중이나 종전 이후에도) 인간이 어디까지 죄악을 범할 수 있는지 이들은 생생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렌트는 양 재판(뉘른베르크와 프랑크푸르트) 에서 마치 판사들이 도덕적 책임을 회피하는 듯 보이는 여러 장면과 저 나치의 졸개들이 자신들의 무고를 스스로 증명을 해야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히틀러 부역자들이 별다른 제재 없이 무사 방면 되었다는 점은, 이 재판의 복잡하고 난해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여실히 드러난 참혹한 전쟁 범죄조차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그 정교하게 고안된 사법 체계가 스스로 모순에 빠졌다는 것을 드러내는 재판이기도 했는데요. 그럼에도 나치 독일의 그 철저한 합리성과 자신들이 스스로를 추앙하는 게르만 민족 이외의 다른 인간을 그저 절멸의 대상과 도구로 삼은 것은 이제는 역사의 과오, 그 이상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만약 이 시대의 역사적 유산을 작금의 독일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이어받았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판단한다면 참혹한 전쟁 범죄의 파급물을 단순히 정치적으로 해석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데나워 이후의 독일 정권이 역사를 뼈저리게 반성했는지는 여전히 불명확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장의 철학적 논증들은 꽤나 놀랄만한 부분들이 있었는데요. 도덕적 양심을 큰 틀로 놓고 왜 과거의 유럽이 '반유대주의'와 같은 도덕과 양심을 거스르는 뿌리 깊은 증오로 귀결되었는지. 쉽게 말해, '인간의 배신'을 철학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유약한 영혼을 위해, 철저하고 근본적인 사유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사유가 만능이 아님을 아렌트는 밝히고 있었는데요. 하지만 사유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인간들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이 우리가 처한 씁쓸한 '현실'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 20세기 "국제적 인사들" 가운데 어느 누구 한 사람도 1930년대의 연대성에 대한 자신들의 집합적인 기대치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당시 벌거벗은 악마성에서 비롯된 공포 자체가 나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모든 도덕적 범주들을 초월하고 모든 사법권의 기준들을 파괴했던 것으로 보였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새로운 형태로서의 현대적 독재 양태들을 알고 있는데, 그것의 우선적인 양태는 군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민간 정부를 무너뜨리며 시민들에게서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박탈하는 경우다.
이제 국가의 통치 행위 공식의 이면에 놓인 그 이론은 주권 정부들이 비상시국하에서 국가의 존립 자체와 권력 유지가 달려 있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범죄적 수단을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비합법성은 눈이 멀지 않고 심장이 돌처럼 굳지 않고 부패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명확하게 보이며 그의 심장에는 거부감을 일으킨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도덕적 행위가 비합법적이고 모든 합법적인 행위가 모종의 범죄가 되는 조건 아래서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와 정반대로 우리의 모든 경험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나의 시대 초기 단계에서 지적, 도덕적 대변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존경할 만한 사회 구성원들이 제일 먼저 굴복한 자들이라는 사실이었다.
무제약적인 양심의 자유라는 것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데, 이유는 그것이 모든 공동체 조직의 파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20세기 초입까지도 여전히 "영구적이고 필수적"일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많은 것들 중에서 도덕적 이슈를 택하여 우리의 관심을 집중해 보려고 한다.
본래 양심은 모든 언어에서 옳고 그름을 알고 판단하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 즉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고 또 자각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금껏 들어왔던 바에서 추론하건대 도덕적 처신은 일차적으로 사람이 자신과 더불어 수행하는 상호작용에 좌우되는 듯하다.
양심은 인간이 자신의 말보다 신의 말씀을 경청하는 기관으로서 이해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의 구체적인 도덕적 성격을 획득했다.
그 결과 그는 다른 이들을 좀 더 "도덕적"으로 만들기보다는 {기존의} 도덕을 손상시키고 절대적인 신념과 무조건적인 복종 양자를 산산조각 내버린다.
소크라테스는 지금 우리가 도덕적으로 부르는 것이 정말로 단독성 상태에 놓인 인간과 관련이 있으며 또 한 시민으로서의 인간을 향상시킨다고 믿었다.
누구든 사유하는 일 없이 그리고 그 사유하는 과정 자체에 진입하지 않은 채로 소크라테스식의 검토 내용을 경청한다면 그는 당연히 [기존 도덕의 관점에서] 타락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