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의 20대는 학교와 동기들, 그리고 술 보다는 오로지 '헌책방'에 있었습니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는 서울에도 제법 많은 헌책방들이 존재했습니다. 제가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좀 특별한 사연이 있는데요. 당시에 헌책방 모임에서 만난 어느 분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서울대 사회학과에 재학중으로 저보다도 그저 몇 살 위였지만 정말로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아주 다방면의 지식을 갖고 있었죠. 그래서 그때는 "저 형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헌책방을 다니기 시작한 초기에는 다 읽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책을 사 모았습니다. 알바비와 용돈의 거의 대부분이 책을 사모으는데 쓰였죠. 덕분에 옷도 면 티셔츠 한장과 면바지 딱 하나로 충분했고, 돈 천원도 귀한 그 시절에 매우 궁핍한 시간을 웃으며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끔찍합니다. 후후.
갓 성인이 된 무렵부터 책을 잡다보니 쉽게 그만 둘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책을 읽으셨던 것도 아니고 가정 분위기도 책과는 거리가 멀었죠. 그때 친구들이 책 좀 그만 읽고 밖에 좀 나가라고 핀잔을 주던 기억도 나고, 군 입대를 했다가 훈련 중 부상으로 군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조정래의 아리랑 전권이 눈에 보여 반가운 나머지 미친듯이 읽었던 기억도 납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그럼에도 책은 항상 저와 함께였습니다.
얼마전 부산 여행을 갔을 때, 보수동 책방 골목을 들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헌책방은 20대의 젊은 시절을 고스란히 바친, 집보다 가까운 존재였죠. 그렇게 퀘퀘한 냄새와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책방의 서가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책 주인장 분들께 몇 권의 책을 보여주며 책값을 여쭤보니, 알라딘 중고서점의 책값과 별반 차이가 없더군요. 보수동을 처음 방문했던 2003년만해도 만원이면 몇권이나 살 수 있었는데, 실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판매하는 책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예전에 경험했던 헌책방의 모습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비즈니스적 측면의 그 자체였기 때문일겁니다. 그러니까 그 돈이면 그냥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주문을 해야겠다는 현실적 절충이라고 해야할까요.
예전에 주변 지인들이 저에게, "그렇게 많은 책을 읽어 너의 삶이 바뀌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제법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무엇보다 세상에 눈이 떴다고 해야할까요. 누군가에 이익으로 이용당하는 지식과 그 본질에 대해 이제는 그 실체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머리가 명민하고 영리한 자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지도 익히 알게 되었죠. 무엇보다 어느 사람의 기름칠이 된 언변에 쉽게 넘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교적 친밀한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정중하고 겸손을 표명하며,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일겁니다. 요약하자면 그동한 읽었던 글줄 때문에 저는 그야말로 음흉한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 SNS를 하지 않으니 카페에서 책을 읽던 중에, 스치듯 지나가는 생각들이 있어 제 서재에 몇자 적어 보게 되었습니다. 글을 다 쓰고 읽어보니 얼핏 부끄러운 마음도 듭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지금보다 더 낯뜨거운 생각이 들면 글을 없애 버릴 수도 있지만 옛 추억을 떠올리는 기분으로 올려 봅니다. 저의 20대가 따뜻하고 아름다웠는지는 불확실하지만 헌책방을 다녔던 기억 만큼은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기억을 반추하며 오랫동안 단물을 빠는 것이 인간의 고집적인 측면이라고 하지요. 저 역시 그런 범주에 하등 벗어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