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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기의 곡들은 참 감각적이다.
그의 곡들은 영혼을 떨게 하진 않는다. 대신 귀를 떨게 하고, 마음을 떨게 한다. 가령 황병기의 `침향무`라든지 `밤의 소리` 같은 곡을 이성천의 가야금 곡들과 비교해 보라. 황병기의 곡들은 이성천의 곡이 지닌 무거움이 없다. 대신 달착지근한 떨림을 준다.
수록곡 중 `밤의 소리`만 살펴 보면.
12현 가야금을 `e-g-b-d1-e1-g1-a1-b1-d2-e2-g2-b2`로 조현해서 타는 곡인데, 1현부터 12현까지 한번 드르륵 긁으면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답고도 서정적인 화음이 울린다. 한 사내가 밤에 뜰을 서성이는데, 바람에 머리가 흩날린다. 이런 내용의 동양화를 보고 악상을 얻어 작곡했다는데, 전체 4악장이 이를 충실히 형상화하고 있다.
1악장은 왼손 농현이 없다. 왼손은 베이스 미를 충실히 뜯는다. 오른손은 바쁘다. 손의 살을 현침 위에 대고 뜯는 콘소르디노(약음) 기법을 사용하여 밤의 신비스러움과 적적함을 살린다.
2악장에 와서야 왼손의 전통적인 농현 기법이 나타난다. 그러나 농현은 가볍게 해야 한다. 중중모리 장단을 써서 흥겹다. 임이 오지 않을까 하는 사내의 기대감이 나타난 듯.
3악장. 비록 나는 아마추어지만, 가끔 지인의 요청을 받고 가야금을 쑥스럽게 연주하는데, 이 곡을 연주할 경우 3악장을 제일 인상적이라고들 한다. 가야금 하면 흔히 떠올리는 연주 모습(왼손으로 농현하고 오른손으로 뜯고)에서 파격적으로 일탈하기 때문이다. 왼손은 베이스 화음을 담당하거나 미분음을 처리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오른손은 3연음, 4연음, 6연음을 내느라 정신 없다. 격렬하게 하행했다가 4연음을 내며 상행한다. 1현 `하이 시`를 `하이 도`로 만들며 정점에 달했다가 6연음을 내며 하행. 이때 왼손은 안족 왼쪽의 현들을 일정한 주기별로 드르륵 긁는다. 그러면 불협화음이 나는데, 이는 바람소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임이 오는 소리인가 싶어 뜰에 나섰는데, 바람만이 요란한 풍경이다.
4악장. 임은 안 오고... 그러니 허탈하면서 안타깝고 우울할 수밖에. 진양조 장단. 다시 왼손의 농현 기법이 등장하는데, 전체 악장 중 4악장에서 가장 농현을 잘해야 한다. 그래야 사내의, 아니 연주하는 나의 마음을 잘 드러낼 수 있다. 종지부로 갈수록 소리는 약하게, 콘 소르디노 기법을 써서 마음의 여운을 남기는 듯. 그러고 나서 마무리.
매력적이면서 감각적인 곡이다. 이외에도 수록된 곡들이 황병기의 작품들 중 대표적이라 할 만큼 모범적이면서 다양하다. 작곡가 본인이 직접 연주했으므로 곡의 해석 또한 가야금 연주자들의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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