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까지 연대할 수 있을까. 답을 찾기 위해 나의 무지를 채우기 시작했다. 시작은 비우는 것부터였다. 무지가 오롯이 무(無)의 공간이라면 부족한 것을 찾아 채워 넣기만 하면 됐겠지만 내 머리는 편견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자리를 다른 것들에게 내어주려 하지 않았다. 주목받지 못했고, 소외되었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삶들이 만들어간 역사와 흔적들을 온갖 이유로 거부했다. 내가 무심코 했던 말과 행동들이 차별이었고, 그 무관심 또한 기득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채운다고 채워봤지만 연대의 이유를 내 것으로 소화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차별과 혐오는 사방에서 쏟아졌다. 그래서 당위에 기댔다. 노동, 페미니즘, 채식, 통일 등에 대한 연대의 기반은 ‘그래야 한다’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렇다 보니 결정적인 순간에 뒤로 한 발 물러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채식을 시도했다가 음식을 준비하는 번거로움과, 메뉴 선정과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불편함, 비용의 증가 등을 이기지 못하고 며칠 만에 포기했다. 연대한다고 말하지만,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점에선 타협하기를 반복했다.
무력하고 우울했다. 나 하나도 못 바꾸면서 타인을 설득하고,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말을 하는 나의 모순을 견딜 수 없었다. 권리를 주장하되 타인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말에도 반박하지 못했다. 내 행동에 대한 근거가 내 안에는 없었다. 누군가를 자유롭게 하겠다는 다짐은 내 삶을 점점 얽매었다. 당위에 구속된 나는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문학은 쓸모없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는 김현의 말을 되새겼던 시간과,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겠다는 나의 생각은 이상에 불과했구나. 치기 어린 생각은 그만둬야겠다. 나도 사회가 말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울면서 다짐했다.
그때 전범선은 “이상과 현실, 신념과 행동의 부조화를 인정할 용기가 필요하다. 절대적인 기준은 고수하되, 때에 따라 타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p.157)라는 말을 건넸다. 완벽해야 하고, 절대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채찍질하다 전부 놓아버리는 것보단, 작은 것 하나라도 실천해나가는 삶을 살아갈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조금이라도 동물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나의 모순은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다. 전범선의 말처럼 “동물해방운동은 동물이 느끼는 고통의 총량을 줄이기 위한 것이지 비건의 도덕적 숭고함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의 신념과 행동 간의 일관성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받는 동물들(p.158)"이기 때문이다.
지구는 지나친 소비와 생산으로 비상등을 깜빡이고 있다. 인간이라는 종에게만 한정해도 적신호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전염병과 이상기후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위기는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게 더 치명적이었다. 집이 없는 사람, 일당으로 삶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살기 위해 집을 떠나야 했다. ‘집에 머물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했다. 우리는 접촉을 줄이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움직일 수밖에는 없다. 자생력이 소멸된 사회는 동력이 소멸되어 멈추는 순간부터 곪은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코로나는 새로운 시대를 만든 게 아니라, 애써 감춰왔던 진실이 드러나는 시기를 앞당겼을 뿐이다.
나는 이런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덜 쓰고 덜 버는 거라 생각한다. 물론 소비사회에서 소비하지 않으며 삶을 유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더 벌고 더 쓰는 것만큼이나, 덜 벌고 덜 쓰는 것도 어렵다. 끊임없이 타자와 나를 비교하고,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에서 소비 자체가 정체성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상태에서도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멈추지 않으면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모두 소진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건 인간이라는 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 또한 동물에 대한 인간의 개입이 지나쳐 발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자유는 더 많은 존재의 자유를 위해 연대할 때에 확장이 가능하다.
동물해방운동과 채식은 동물을 포함한 수많은 존재와 자유를 위해 연대하겠다는 삶의 태도다. 당사자가 아니라 해도 연대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나는 비겁한 인간이라 지금 당장 나의 식단을 전부 채식으로 바꾸지는 못한다. 다만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나의 삶으로 가져올 것이다. 투명 플라스틱은 비닐을 제거해 분리 배출하고,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한민족이이 아닌, 평화를 위한 통일을 지지할 것이다. 태도가 삶의 일부가 되도록, 지치지 않도록 조금씩이나마 실천할 것이다. 나의 연대가 우리의 자유와 삶의 방식을 점점 더 확장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자유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범선이 던진 질문 하나를 남긴다.
“모두가 해방되지 못한 세상에서 나만 자유롭다면, 그 자유란 정당한가?” (p.73)
* 본 리뷰는 한겨레출판을 통해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