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을 펼쳤을 때 마지막 시를 읽었을 때 시간 지나 다시 펼쳤을 때 모두 좋았다.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선생님과 함께한 시간들이 떠오른다. 시인의 살가운 성격처럼 오랜 시간 공들인 작품에서 재미있고 뭉클하고 따뜻함이 배어나왔다. 남은 페이지 줄어드는 게 무척 아쉬웠다.
두 시부터 네 시 사이
고양이처럼 웅크린
새벽 두 시의 편의점
건성으로 켜 놓은 형광등 아래
메마른 눈꺼풀 견디는 미생이
두 시에서 네 시 모퉁이를 몽상인 듯
건너고 있어요
벽면 차지한 도시락 종류만큼
두근거리는 모서리,바코드를 읽는 동안
초침이 척척 등뼈를 밟으며 지나가요
고양이처럼 달아날 수 있다면
빳빳한 수염을 아스팔트 위에 쏟지만 않는다면
재빠른 속도로, 원하는 만큼 사뿐
날아오를 수 있을까요
출입문에 눈 디밀어 보는 회색 고양이가
저 닮은 눈동자에 화들짝 놀라는
새벽 네 시
한길 건너에는 편의점이 있고
새벽은 구부러진 골목을 돌아 천천히 도착해요
당신의 미명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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