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편지 (H에게)
호호미 2025/08/0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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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일기
-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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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 2025-07-11
: 30,222
🕊
내 친구 H님 안녕
잘 지내고 있어요?
서로 연락하고 안부 물었던 게 오래됐단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갑자기 H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엊그제 황정은 작가님 새 책이 나왔어요
예약 주문으로 결제하고 두근두근 기다렸는데 사실 '작은 일기'라는 제목만 알고 내용은 모른 채 받아서 읽어보려고 책 소개 글을 안 봤거든요
내란 사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가님이 분명 그간의 기록을 책의 형식이든 기고문이든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실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계엄 사태에 대한 책이 나올 줄은 몰랐어요
책을 읽는 동안 울컥울컥 눈물이 나더라고요
나는 사실 거의 매일 뉴스를 보고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나 실시간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다룬 책을 읽는다고 해서 감정이 크게 동요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막상 다시 12월 3일로 돌아가서 그때부터의 일을 곱씹어 보니 참 정말 엄청난 무서운 일을 겪었구나 그런 생각도 들고요
읽으면서 이런 말을 용기 있게 해주고 책으로 기록을 남겨주는 작가님이 나와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감사하고 자랑스럽단 생각이 들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작가님도 빛의 혁명에 참여한 분들에 대해서 동시대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단 표현을 하셨길래 또 뭔가 이심전심
역시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 그런 생각이 들면서
황정은 작가님에 대한 이야기는 H님이랑 그동안 제일 많이 해왔고 얘기가 통하고 공감대가 가장 크고 그랬었기 때문에 가까이 살았다면 어느 조용한 카페에서 만나 우리가 또 같이 흥분을 하며 독후 소감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도 들고
페이지를 넘기는 중간중간 뉴스에서 보았던 장면들도 생각났지만 H님이랑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때 몇 월 며칠에 이런 일이 있었을 때 그때 이랬다, 무서웠다, 분노했다, 내 감정이 그랬었다, 그런 얘기를 나누고 싶더라고요
그렇게까지 예상은 못 했었는데 작가님이 그간 내란의 시간을 겪으며 굉장히 많이 아프셨더라고요
내가 작가님과 감히 뭘 동일시하는 건 아니지만 나 또한 모든 상황에 예민해지고 몸도 마음도 굉장히 아팠어요
근데 그런 말을 참 아무하고나 나눌 순 없더라고요
다들 힘들고 똑같이 화나는 상황인데 뭘 너만 그렇게 유난이냐 이런 말 들을 거 같고요
근데 나보다 더 많이 아프셨던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죄송한 마음이지만 그 자체로 위안이 됐어요
그런 게 또 문학의 힘이고 예술이 주는 치유의 힘이겠지요
H님은 잘 지내고 있나요?
여기에 없어도 마음은 여기에 있을 거라는 거
누구보다도 걱정하고 함께 분노하고 있을 거라는 거 알아요
가까이 있었다면 서로 마음을 나누고 함께 분노하고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가까이가 얼마큼인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한국에만 있다고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H님이 서울에 온다고 또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자주 볼 수 없고 멀리 있어서 더 애틋하고 소중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언제든 내가 힘든 일을 말하면 이야기를 다 들어줄 것 같고
내가 기쁜 일이 있을 땐 제일 먼저 축하해 줄 것 같고
그런 믿음이 있어서 내내 생각나고 궁금한 그런 친구예요 나에겐
여기는 요즘 무척 더워요
공기층이 아래 위로 이중 열돔이 생겼다나 뭐라나
정말 체감온도 40도에 살인적인 무더위라 집에선 전기 요금 폭탄이 무서워 에어컨도 아껴 틀지만 그래도 작업실은 상업용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라 조금은 여유 있게 생각하고
일할 땐 시원해야지!라며 편한 마음으로 에어컨을 켜고 있는데 이제 다음 달에 전기 요금 고지서를 확인해 봐야 알겠죠
6개월이 넘게 몸이 너무너무 많이 아프고 지내다 보니 참 당연한 얘기지만 건강이 제일 중요 하구나 새삼 느끼게 돼요
이제 보기 싫은 얼굴도 수감됐으니 나도 얼른 기운 내서 정신 건강을 되찾는데 좀 힘을 써보려고요
몸이 아프니까 재미있는 책도 다 필요 없고 맛있는 것도 다 필요 없고 그렇더라고요
책 읽은 후기를 생각나는 대로 적고 보니 H님에게 보내는 편지가 되었네요
그만큼이 책을 읽으며 오래 못 본 친구 얼굴이 많이 떠올랐어요
나라가 안정되면 뉴스 이야기 말고 또 재밌는 책 이야기를 여유롭게 나눌 수 있겠죠
다시 만날때까지 꼬옥 건강히 잘 지내요
안녕 :)
2025년 7월 12일
그리운 친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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