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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호 야아호 야아호오
  • 하이퍼그라피아
  • 앨리스 플래허티
  • 16,200원 (10%900)
  • 2006-02-20
  • : 194

정신병을 앓는 이들이 쓴 글은 혼란스런 행동, 못 지킨 약속, 계속되는 고통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다른 환자들이 쓴 이런 글들은 나를 두렵게 했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내보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느냐 마느냐가 정상인과 환자를 구별하는 잣대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P54
시걸이 말했듯 "모든 창작품은, 한때 사랑하고 전부였지만, 이제는 잃어버리고, 파괴되고, 폐허가 된 자신의 내적 세계를 다시금 일으켜 세워 형상화한 것이다. 우리 안의 세계가 파괴되었을 때, 모든 것이 죽고 사랑이 사라졌을 때, 사랑하는 이가 조각조각 해체됐을 때, 우리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절망에 빠졌을 때 비로소 예술 작품이 탄생한다. 우리는 바로 이때 우리의 세계를 새롭게 재창조해야 하고, 조각을 다시 맞춰야 하며, 죽어버린 조각조각에 생명을 불어넣어 다시 부활시켜야 하는 것"이다.- P91
"난 카프카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고, 쓰고, 또 쓰게 만드는 절망감은 과연 어떤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파멸에 대해 쓸 수 있다면 파멸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직 파멸하지 않은 상태다. 절망하는 작가는 결코 이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파멸이 아직 완전히 다가온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P177
사실 산후 휴식기를 가지면서 나는 미스터리를 발견했다. 나는 내 슬픔을 사랑했던 것이다. 마치 그 사건을 위해 평생 동안 준비를 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원 시절 남편과 나는 두꺼운 포도덩굴이 있는 아파트에서 살았다. 포도덩굴은 구불구불 휘며 올라와 내 방 창까지 닿을 정도였다. 밤이견 난 침대에 누워 어둠 속으로 손을 뻗은 뒤 포도를 따서 먹곤 했다. 내 슬픔도 이와 같았다. 슬픔은 아주 가까이 놓여 있는 그림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내게 통로를 열어준 것 같았다. 팔을 뻗기만 하면 꿈의 열매를 따먹을 수 있도록. 그곳은 아름다움과 고통이 결코 분리되지 않는 세계였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P281
걸국 사건에 인지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불명료한 존재에 감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인생에 어떤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아마 작가가 더 강할 것이다. 작가는 직업 성격상 의미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폴 발레리의 말처럼 그것은 "혼란이라는 이름의 바닷가에 언어라는 조그만 기념비를 세우고 싶어 하는" 욕구이다.-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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