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교열자의 업무는 지옥에서의 밭 갈기와 같은 것이다. 아무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일을, 전혀 가능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 감히 가능하게 하려고, 무한한 책임 영원한 책임으로 홀로 떠맡는 것이다.- P25
‘나를 좆되게 하려는 뭔가(들)가 있어서 내가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런 식의 생각은 그대로 두기 어렵다. 정말로 저 교정공을 좆되게 하려는 뭔가가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 ‘저 사람(또는 무엇)이 나를 해치려 한다‘는 느낌, 악의 가운데 던져졌다는 느낌은, 그가 정말로 악의 가운데 던져졌는지 아닌지와 무관하게 그를 망친다. 두 번이나 반복해서 지적할 정도로 그러하다. 그것은 위험한 도식이다. 사자의 아가리 속에 손을 넣은 상상만으로 그는 어깨를 쓸 수 없다.- P45
미끄럼틀에 스스로 다시 오르는 것은 그다.- P45
내가 쓴 거 내가 고칠 때 제일 지친다. 그에 비하면 다른 일은 고통은 있을지언정 행복한 편이다. 내 꺼 고칠 때 내가 상대해야 하는 놈은 도무지 만족할 줄도 모르면서 나한테 전권을 위임한 개 같은 저자 새끼, 바로 그 개새끼다. 하지만 다른 편으로는 그 새끼가 상대해야 하는 교정공에 대한 원망도 있다. 정말로 그걸 고쳐야 하는 거냐? 남이 쓴 거 고치는 걸로는 부족한 거냐? 그냥 여기에서만이라도, 내가 그냥 되는 대로 지껄이게 두면 안 되나? 굴레를 벗어 두면 안 되냐? 굳이 애를 써서 뭘 고칠 이유가 있냐? 뭐가 옳은지 그른지, 누가 어떻게 읽을 것인지, 그런 걸 고민해야 한다고? 진짜로? 여기에서까지 내가 그래야 된다고?- P51
그리고 둘째 감상은, 내가 느끼기에 이것은 문자 그대로 필부의 소설이라는 것이다.(극찬) 이것이 소설이라고 되뇌며 읽어야 좋아지는.(욕) 필부의 소설이라는 것은, 나, 정신이 병든 교정공으로선 먼저 문장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거는 좋은 문장도 아니고 미문도 아니며 두고두고 읽을 만한 문장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손댈 수도 없다는 뜻이다. 보십시오, 친구의 편지를 고쳐 줍니까? - P106
책이 다 무엇이관데…… 뭐가 너무 많다(보고 듣고 할 너무 많은 것들…… 특히 읽을 것이), 많아도 너무 많다는 기분이 줄곧 이어지는 중. 좋은 것이 너무 많다. 너무 많다는 점이 싫고, 점점 많아진다는 점이 견디기 어렵다. 생각을 다른 식으로 해야 할 것이다. 또는 행동을.- P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