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을 바라볼 때의 내 눈빛에는, 비록 불타는 적의를 담으려고 애썼지만 안타깝게도 실제의 내 눈빛에는 애원과 공포가 담겨 있었을 것이고, 전경은 그것을 제대로 읽었던 것이다.- P133
나는 내 꿈이고, 내 과거이고, 내 현재이고, 내 모든 것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정작 그 와중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고유한 나 자신이다. 혹은 내게 고유한 것이 있기나 했다면. 설혹 없었다면 그 고유한 없음조차도 이 와중에 흔적없이 사라진다. 나는 ‘내 모든 것‘이 되고자 하지만 남은 것은 ‘내‘가 떨어져나간 것, 즉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일 뿐이다.- P167
이야기는 자신의 상처만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있는 불행한 인간을 임시로 치유하는 장치이다.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내 과거의 불행도 그다지 엄청난 것은 아니로군, 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끄덕이는 순간에 불행했던 왕은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 속의 한 불행으로 환치하고는 거리를 두고 그 불행을 바라보게 된다.- P189
청춘에게 실패란 기대와는 다르게 성숙하고 진지한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번번이 초라하고 우스워지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는 모르고 있었거나 부인해왔던 자신의 초라하고 우스운 상처를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계속 갈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처 때문에 찢겨서 열린 틈새를 통해 과거로부터 쏟아지는 빛을 계속 바라보는 것이다. 살아 있는 채로. - P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