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언젠가는 일기 쓰기를 멈출 수 있게 되는 날이 올까, 라고 내내 생각하며 읽었다.
내게 일기 쓰기는 (한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지긋지긋한 숙제 같은 것이 아니다. 운동을 하거나 돈이 되는 일을 하거나 불운한 사람들을 돕는 데 시간을 쓰는 대신 나는 일기를 쓸 따름이다. 하나의 악습인 셈이다.- P14
하루 이상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고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다면, 두렵지만 그렇게 해본다면, 나는 그 시간에 휩쓸려 사라질 것이고, 무언가를 지속하는 행위의 목적을 더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P15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일만 기억하고, 그 일이 전부였다는 확신을 품고 싶다.- P25
내 행동은 시간에 완전히 휩쓸리기 전에 시간을 멈추려는 시도였다. 안전하게 지내려는 시도, 삶과 시간이 글로 써낼 수 없을 만큼 서로 뒤얽히기 전에 초연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내게 벌어진 일을 분리해 두려는 시도였다.- P27
내가 혹독한 시절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엄마가 된 것과 연관이 있고, 엄마가 된 것은 내가 질적으로 늙은 것과 연관이 있고, 내가 질적으로 늙은 것은 매분, 매시, 매일을 인식하고 곱씹으며 일기에 기록할 시간과 삶이 바닥나 버린 것과 연관이 있다.
이것은 내가 어느 정도 시간의 흐름에 익숙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더 이상 내게 일어나는 일에 특별히 신경쓰지 않는다. 어제와 비교해 달라진 점을 더 이상 결연하게 관찰하지 않는다.- P76
그때는 몰랐지만 진짜 문제는 질병, 지금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그 질병이 아니었다. 질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문제였다.- P86
일기를 통해 나는 흘러가는 시간을 꼭꼭 씹어 소화하고 차곡차곡 정리해, 그 시간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게 만든다. 만일 내가 모든 시간을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데 써버린다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P89
이제 나는 망각이 내가 삶에 지속적으로 관여한 대가임을, 시간에 무심한 어떤 힘의 영향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 P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