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정에 잔뜩 부푼 자아를 위한 공간은 없다.
- P96
나는 공공연히 망가져 있었고, 더는 순수하지도, 자각이 없지도 않았다. 내게는 할 이야기가 있었다. 말할 준비가 필연적으로 되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 희미한 주름 하나하나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고, 내 경험을 배우고 번역하는 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 도달하기 위해서. 원고를 통해 아버지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그를 살아 있게 하기 위해서. 그 길고 불가능한 시간 동안 죽은 사람 모두를, 할머니와 삼촌 두 사람을 포함해 전부 살아 있게 하기 위해서. 언어는 내가 항해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 모든 언어로 나는 심연에서 조금 멀리 벗어날 수 있었다. 이 모든 문장으로 내 초점은 예리해졌다. 이 모든 이야기로 나는 안에서부터 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P124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는 숨을 참고 잠수해 들어간다. 그리고 헐떡이면서 빈손으로 수면 위로 나온다. 숨을 참고 다시 잠수한다. 아마도 이번에는. 나는 물속 풍경에서 보물들을 찾아낸다. 내가 볼 수 있는 것들만을. 내가 발견해야만 하는 것은 내 것이 될 것이고, 오직 내 것이리라. 이런 일에는 특정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짐작한다. 하지만 용기와 두려움 없음은 같지 않다. 용기란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어찌되었든 하는 것이다.- P134
축복은 상처 옆에 있다는 말이 있다. 살아오는 동안 나는 그 피막들을 벗겨내려고 시도해왔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차오른다. 분노하는 마음이나 비난하고 싶어서, 복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모든 막 아래서 약한 아기 새처럼 잡을 수 있고 부드럽고 진실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서 그렇게 한다.- P139
인생은 귀중한 글쓰기 시간을 가지라며 멈추는 법이 없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삶은 멈추지 않고, 우리는 협상한다. 안정되거나, 보통이거나, 고정된 날 같은 건 없다. 방법을 찾으려고 시도할 뿐.- P146
"삶에서 가장 심각하게 공격당할 때는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술조차도. 특히 예술이."- P153
사랑과 잠재적으로 수반되는 끔찍한 상실은 오랫동안 나의 유일한 주제였다. 나는 파국의 고비를 겪으면서 영원히 바뀌었다. 몸에 새겨졌다. 도구가 바뀌었다. 이제는 변화가 이어지리라는 걸 안다. 이전과 이후가 앞으로도 여러 번 있으리라는 것을. 맞서 싸우기는 부질없고, 불가능하다. 받아들이는 일, 심지어는 너그럽게 감싸는 일이 진정한 작업이다. 작가여서만이 아니라, 살아 있으므로.- P154
나는 작업중인 책이 끝나갈 때마다 내가 선택한 서사 구조 때문에 제약이 생겼다는 걸 느꼈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한계 혹은 세계가 우리에게 부여한 한계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P286
우리는, 우리 각자는 언어 그리고 어떤 유형의 인간적 열변을 헛되이 찌르려고 하는 시도와 씨름한다. 우리는 고독하게 타고났지만, 원고란 다른 이들의 눈을 거치면서 좋아지므로 다른 이들과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자기 작품을 투명하게 볼 수 없으니까.- P294
이런 이유에서 나는 이제 막 첫걸음을 내딛은 작가들이 대체 언제쯤 쉬워지느냐고 물어볼 때마다 그럴 인은 없다고 대답한다. 절대로 쉬워지지 않는다.- P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