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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아호 야아호 야아호오
  • 인문교양책 만드는 법
  • 이진
  • 9,000원 (10%500)
  • 2021-02-04
  • : 417

오랜만에 잘 기억해두고 싶은 문장들을 많이 만난 책. 어디 하나 특출나지 않고 그나마 장점으로는 성실을 쑥스럽게 내밀 수 있을 뿐인 보통의 직장인으로서, 편집자의 공부 책 시리즈 중 이 책이 가장 현실적인 롤모델이 되어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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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렇게 돌고 돌아 [삶 자체를 '편집자로 살아가기 위한 몸'을 꾸준히 만]들어가야 하는, 아니 이미 그러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는 뒤늦은 깨달음도. 그것이 좋을 때고 있고 당연히 싫을 때도 있지만, 사실 좀 무섭기도 하지만 이미 나는 그 세계에 들어왔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다음 스텝을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그것이 아주 싫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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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SNS 운영에 대해서도 좀 다르게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다. 그간 어떤 권유 앞에서도 속마음은 '결국 회사 좋으라고 하는 일 아니냐'로 귀결되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데 처음으로 설득되었다. 아마 그사이 내 상황이 바뀐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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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업계의 일원으로서 넓은 범위의 동료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말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했는가 하면, SNS 운영은 둘째로 놓고 우선 저자께 좋은 책 잘 읽었다는 인사를 직접 보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것까지는 현실이 되지 않겠지만. 이곳에라도 남겨둔다. 잘 읽었습니다. 어려운 시간에 놓을 때마다 두고두고 찾아볼 책을 만나 기쁜 마음이에요. 감사합니다.

자기 일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시작되는 일이 있다. 누군가의 퇴사로 내게 좋은 원고가 오기도 하고, 우연히 작업한 몇 권의 책이 마치 내가 그 분야의 전문 편집자인 것처럼 보이게 해 뜻밖의 큰 기회를 가져다줄 수도 있다.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한 권 한 권을 성실하게 만들며 자기 자리를 지킬 뿐이다. 원치 않는 원고라 하더라도, 까탈스럽기 이를 데 없는 저자라도, 다소 번거로운 작업이라도 나름대로 수완을 발휘해 잘 마무리한다면, 그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인맥과 퍙핀이 분명 더 나은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다. 책이 책을 낳는 영화 같은 일은 당연히 더 오래 일한 사람, 더 많은 책을 만들어 본 사람에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한 권만 더 만들어 보자. 우직함이 우리를 도울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P38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 글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무리 뛰어난 야구선수라도 타율이 채 4할에 이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앞으로도 줄기차게 ‘실패로 기록될 책을 만들 거라는 점이다. 한 권 한 권을 아무리 성실하고 꼼꼼하게 만들어도, 심지어 그 책의 완성도가 대단히 뛰어나더라도 상품으로서는 실패할 수 있다(책이 지닌 상품 이상의 의미를 여기서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실패의 과정을 곰곰이 반추해보며 다음 책이 실패할 가능성을 조금씩 줄여 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P64
반대로 함께 일한 파트너가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을 만큼 최악이었다 해도, 마감을 하고 인쇄를 넘긴 나의 수완과 예의와 인내심 역시 내 안의 어딘가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완벽하게 ‘쓰잘머리 없는‘ 작업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 때로는 내가 꾹 참고 그 책들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그 책들이 편집자 하나를 키우기 위해 참 고생이 많았구나 싶기도 하다. 그러니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쉬워할 일도, 소홀히 할 일도 아니다.- P70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각자가 일상의 빈틈을 최대한 활용해 이번 책과 다음 책 사이를 채워 나가는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우리에게 다음 작업을 위해 공부할 시간을 따로 줄 리도 없고, 또 우리가 하는 일이 ‘하루에 100쪽씩 읽으면 다음 업무에 투입될 준비 완료‘ 같은 식도 아니니 정말로 이 일이 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삶 자체를 ‘편집자로 살아가기 위한 몸‘을 꾸준히 만드는 과정으로 생각하자고 말하고 싶다.- P84
‘많이 읽는다고 그런 게 다 보이나?‘라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보인다고 믿는 편이다. 적어도 세 번 보았을 때보다 네 번 다섯 번 보았을 때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가려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조차 없다면 이 일을 어떻게 해 나가겠는가.- P114
이렇게 어떤 한 책에서 시도했던 일이 다음 책으로 연결이 되기도 하니 손익분기 표에 나오는 숫자만으로 어떤 일의 진행 여부를 결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절한 한계 안에서, 때로는 그 한계를 살짝 넘게 되더라도 책의 품질을 높일 다양한 방법을 찾아보는 일은 눈앞의 바로 이 책뿐 아니라 이후의 책에도 크고 작은 도움이 된다.- P141
그럼에도 편집자 일이 나에게 잘 맞고 이 일을 오래 하겠다는 확신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드러내며 일하는 쪽을 권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책을 많이 팔라거나 회사에 기여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부차적인 일이다. 어느 회사 무슨 팀에서 일하는 누구라는 사실에 앞서, 편집자로서 이 업계에서 꾸준히 경력을 쌓아 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자리매김하라는 뜻이다. 내가 누구와 함께 어떤 책을 만들고 있고, 어떤 고민과 노력을 통해 성과를 냈으며,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드러내며, ‘책‘이라는 세계 안에서 함께 일하는 많은 사람과 꾸준히 교류를 해 나가는 것이다. 무슨 대단한 콘텐츠를 올린다기보다 이 업계의 일원으로서 넓은 범위의 동료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P191
그뿐 아니라 우리가 회사 계정에 쓰는 수많은 글과 카피는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나와 무관한 콘텐츠가 되지만, 내가 내 계정에 기록해둔 이야기는 고스란히 내 것으로 남는다. 퇴사와 함께 내가 만든 책의 판권에서 내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내가 그 책을 만들며 했던 고민, 저자와 나누었던 시간, 디자이너나 마케터와 협력했던 이야기는 내 글 속에 남아 누구도 함부로 지울 수 없다. 그러니 자기 계정을 갖는 일은 자신의 경력, 자신이 일해 온 역사를 스스로 관리하고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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