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102p.
이데올로기의 격류에 휩쓸렸던 형과 아우가 죽음 앞에서라도 평범한 형과 아우로 화해할 수 있기를, 나는 아무래도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105p.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 137p.
"교복 입고 담배 피우다가 할배헌테 들케가꼬 꿀밤을 맞았그마요. 양심 좀 챙기라대요. 최소한 교복은 벗고 피우는 것이 양심이라고……" 139p
아버지가 이 작은 세상에 만들어놓은 촘촘한 그물망이 실재하는 양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났다. 239p.
먼지가 인간의 시원이라 믿었던 아버지가 지금 먼지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어머니가 내 손을 꼭 쥐었다. 그러고는 내 귀에 속삭였다.
"아이, 쫌 대줄 것을 그랬어야."
한참 만에야 대준다는 의미를 이해했다. 남사스러운 말을 뱉어놓고 어머니는 태연하게 눈물을 훔쳤다. 247p.
아버지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 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26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