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연수가 되길 [모두의 연수- 김려령]
열다섯의 연수는 명도단의 유명한 아이다. 어린 시절 부모 밑이 아닌 이모에게 키워진 아이. 한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연수는 그렇게 키워졌다. 이모의 시댁, 그러니까 사돈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슈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의 몫을 잘 챙기며 살아가고 있다. 연수를 그렇게 만든 것은 모두 자상한 어른들의 울타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나는 한동안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고민이 된 적이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할 수 있을까. 혹은 누군가를 위해 애써 주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미로 같은 명도단의 골목에서 길을 한 번도 잃은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연수가 길을 잘 찾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연수를 잘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나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유, 자신을 낳다가 죽은 엄마를 대신해서 키워준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을 위해서 연수는 모두의 연수가 되었고 그렇게 열다섯이 되었다.
문득 나의 열다섯은 어떤 삶이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정말로 까마득한 옛날이라 생각이 잘 나진 않지만 나의 열다섯은 암흑기 같은 시간이었다. 자신의 생부를 알 수 없었던 연수가 느꼈던 그 불안과 공포가 나에게도 있었다. 그 깊이가 서로 달랐을 뿐. 연수의 친구들도 그랬다. 모두 자시만의 우물에 깊은 비밀 하나쯤은 던져 놓고 살고 있었다.
나에게는 그때 시작된 첫사랑의 열병에 엄청 힘들었던 시기였었다. 나와 사귀었던 남친이 나도 모르게 본인만 겨울 캠프를 신청하고 그곳에서 바람이 났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건 어느 유투브에서 나오는 그런 내용일까 싶지만 2000년도도 아닌 90년도에도 있었던 상투적 사랑싸움이 한창이었다. 남친은 캠프서 여자 친구가 있음에도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와서는 한 달 후 환승 이별을 선택했다. 그때가 중1, 열 네 살 때의 겨울이 그렇게 쓸쓸 할 줄 몰랐다. 남녀 공학이었던 나는 2학년 때 남친을 다시 같은 반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 바람피우고 환승 연애한 여자애도 나랑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학급 반장이 되었고 남친이 부반장이 되었다. 남친의 환승 연애 한 여자애는 체육부장이 되었다. 학급 회의때가 제일 힘들었다.
나는 환승 이별을 선택한 남친과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별을 고할 때도 그냥 알겠다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열다섯, 2학년이 되었고 같은 반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과의 관계를 다른 친구에게 듣고 나서도 전남친을 따로 불러 큰 소리 내며 싸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학급회의 때는 반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정말로 호랑이처럼 굴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매일 펑펑 울었었다. 왜 내가 아닌 저 여자애였을까를 일 년 동안 고민하다가 나의 사랑의 대상이 바뀌었다. 그렇게 나의 열다섯의 시련이 사라졌고 그때 나는 나도 몰랐던 나를 발견하는 때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으로 이렇게 사람이 유치해 질 수 있다는 것, 사랑 때문에 이렇게 옹졸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비록 환승 이별로 나를 더 슬프게 했지만 두 사람의 안녕을 빌어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한번 정도 이별을 했다가 다시 만나서 결혼 했다는 얘기를 동창회에서 들을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둘에게는 그 열다섯의 처음 맞았던 겨울이 첫 사랑이 아니었을까. 나의 열다섯은 이런 일들로 힘겨웠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해 놓고선 막상 그해의 날들을 떠 올려보니 30년 전의 과거가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이 다시 나다니.
나는 김려령의 작품을 좋아한다. 소소한 즐거움을 좋아한다. 때로는 상투적 내용이라도 그 즐거움을 놓치지 않고 읽어 나갔다. 그런데 처음 <완득이>로 나를 홀리게 했던 김려령의 소설들을 그동안 읽으면서 안타까운 것은 두 번째로 꼽히는 것이 더 없다는 것이다. <모두의 연수> 또한 그랬다. 나의 흑역사인 열다섯을 기억해 내고 말았지만 열다섯 연수가 조금 특수한 상황에 있다고 해도 전혀 불해해 보이지 않는다. 연수를 지켜줄 친구들도 있고 그들의 응원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연수가 부러웠다. 모두에게 사랑 받는 연수가 나만의 연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래서 나는 그토록 좋아하는 그녀의 두 번째로 빛나게 될 소설을 또 기다려 본다.